한도숙/ 전 전국농민회장, 한국농정신문 대표

쌀은 평화다. 무릇 인류의 생명을 지탱하는 모든 먹거리가 평화일 터이지만 우리에게는 쌀이 평화를 가져다준다. 평화를 한문으로 平和라고 쓴다. 자는 벼즉 쌀이 목구멍()으로 넘어간다는 뜻이다. 자는 골고루라는 뜻이다. 사람들 입에 골고루 쌀이 들어가는 것, 이것이 평화다. 그런데 우리는 쌀의 의미를 잘 모른다. 세상 사람들에게 골고루 나누어져 평화를 실현할 쌀인데, 그 생산량이 많다고 우격다짐으로 농민을 죽여서라도 생산량을 줄여야 한다는 것이 박근혜 정권이다. 우격다짐은 민주주의가 아니다.

일찍이 농민운동가 천규석 선생은 쌀은 민주주의라고 외쳤다. 평화로움을 만들어내는 쌀의 자치적 나눔 문화가 사라진 사회에서 민주주의는 없다고 선생은 강조했다.

쌀은 민주주의다. 민주주의는 농민들이 스스로 쌀값을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는 누천년 쌀농사를 지으며 가을이 되면 민주적 원칙에 따라 쌀의 가치를 결정하고 쌀을 나누었다. 최근 농민들은 쌀 목표값 인상이 지지부진하자 곳곳에 쌀가마니를 야적하기 시작했다. 마침 온 나라는 민주주의를 포기하고 독재의 시절로 돌아가고 있고, 농민들은 생존과 평화 민주주의를 위해 볏가마를 야적하고 있는 것이다. 농민들은 농촌의 자치와 민주주의를 정치인들에게, 관리들에게 한 수 가르치고 있다. 적재투쟁은 쌀이 농민의 것이고 쌀값이 농민들에 의해 결정되어야 함을 선언하는 것이다.

흰밥은 쌀밥이다. 북에서는 이밥이라고도 한다. 이밥에 고깃국! 김일성이 북한 주민에게 늘 약속했다는 바로 그것이다. 어디 김일성뿐인가 박정희도 쌀밥에 고깃국을 실컷 먹게 해주겠다고 했다. 그것이 희망의 절대치인 시절, 사람이 행복해지는 건 간단하고 명료한 것이었다. 흰 쌀밥을 고봉으로 올리고 변변치 못한 그 음식들을 대식구가 함께 먹으며 행복해하는 모습이 머릿속에 남아 있는 건 이제 50대 이상일 뿐이다.

그것을 기억하는 50대 이상의 농민만이 나락을 적재하고 있다. 50대 이하는 바빠서 같이 하지 못한단다. 그들에게 그런 기억은 사치일지도 모른다. 신자유주의 경쟁 속에서 살아남는 길은 오로지 규모를 확대하고 가공하고 판매하는 벅찬 일들을 견뎌내는 것이다. 밤이 두 개라도 모자랄 판에 적재하고 거기 시간을 쪼개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런데 나락 적재는 쌀값 몇 푼을 올리고 내리는 데 있는 것이 아니다. 농민이 쌀의 주인이라고 선언하는것이다. 쌀은 생명이고 민족의 문화정신이며 정서라고 외치는 것이다. 그래서 그것을 온 국민이 지켜내야 할 책무가 있다는 것을 상기시키는 것이다. 모두가 함께 손잡고 해야 할 일이고 박수받아야 할 일이다.

직불금 100만원인상, 쌀 목표가격 현실화, 농정은 대통령이 직접 챙기겠다.’는 박근혜 대통령의 공약은 비행기 타고 오가며 잊어버렸는지. 어디에다 두고 온 지도 기억하는 사람이 없다. 이 가을의 사단은 이렇게 시작된 것이다.

밀레의 이삭줍기라는 그림이 있다. 넓은 들에 아낙들이 허리를 굽힌 채 이삭을 줍고 있는 그림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프랑스를 방문해서 오르세 미술관에 들러 이 그림을 보았단다. 박 대통령은 이 그림이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생각이나 해봤을까?

멀리 높다랗게 쌓인 노적가리와 전면의 한 줌의 이삭을 줍는 사람을 대비했다. 부와 가난의 대비다. 게다가 멀리 작게 말을 타고 감시하는 지주가 손에 채찍을 들고 있다. 자본과 노동의 대비다. 학교에서 이 그림을 가르칠 땐 이삭을 줍는 사람들의 남루함과 지친 듯한 모습은 말하지 않았다. 밀레의 전반적인 그림에 남겨진 의미를 애써 외면하고 사실주의 작가로 평화로운 농촌의 모습을 주로 그렸다고 가르친 배경에는 엄청난 저의가 숨어있다.

박 대통령이 그런 갈등구조를 파악한 것에 대한 보도는 없어도 문화외교를 하고 계신다는 계비어천가(鷄飛御天歌)는 수두룩하다.

충청도 지방에서는 이삭줍기를 뒷목이라고 한다. 타작하면서 빠진 것을 뒤에서 줍기에 그런 말이 생겼을 법하다. 그런데 뒷목은 내 몫도 네 몫도 아닌 제삼의 몫이다. 추수하면서 빠진 것들은 자연의 몫이다. 새나 들쥐나 벌레들이 먹어야 할 몫이란 말이다. 거기에는 배고픈, 가난한 사람들까지 포함한다.

요즘은 뒷목을 하지 않는다. 뒷목을 하는 품삯이 뒷목으로 거둔 것보다 크기 때문이다. 제삼의 배고픈 자도 거들떠보지도 않는 싸가지가 된 것이다. 싸가지도 이삭이 변한 말이다. 싸가지가 없다는 말은 이삭이 옳게 될 성 싶지 않다는 말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그렇다. 농업문제를 애당초 옳게 풀어낼 싸가지가 없었다. 농민들이 바보지. 구체화한 수치 하나도 제시하지 않고 뭘 어떻게 하겠다는 것도 말하지 않았는데 덜컥 그네를 밀어버린 것이다.

22일은 장날이다. 청와대로 쌀 팔러 간다. 박근혜의 농업정책을 끝장내고 평화와 민주주의 복원을 위해 호남펄의 쌀이, 김해 펄의 쌀이, 내포펄의 쌀이 우르르 일어난다. 쌀이 제대로 일어나면 평화롭다. 쌀이 제대로 일어나기만 하면 민주주의도 일어난다.

본 칼럼은 민중의 소리에도 게재됐음을 알려드리며 영광군농민회도 한도숙 대표의 뜻과 함께 할 것임을 천명하고, 주경채 회장의 농민의 소리 칼럼은 한도숙 대표의 뜻과 같다는 것을 전하며 오늘(22) 청와대로 쌀 팔러 갈 것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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