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종원/ 전 영광군한우협회장

지난 주말 찬바람에 영광 읍내 사거리 주변의 노란은행잎이 우수수 떨어지고 진눈깨비가 몹시도 내리던 밤 군청 광장에는 비닐하우스 천막 속에서 민족농업사수 쌀값보장이라는 구호를 내걸고 밤샘 투쟁하는 농민회원들의 고생하는 모습을 보면서 매년 이맘때쯤이면 연례행사처럼 되풀이 되는 쌀값 투쟁에 쌀은 과연 우리 민족에게 무엇이며 유독 쌀값만은 생산자인 농민이나 농업단체가 아닌 정부가 일방적으로 결정해야 하는 것인가? 하는 회의를 느끼며 쌀에 대한 무지의 상상력으로 1960년대 어릴 적을 회상해 보았다.

우리 집은 소농이었지만 아버지는 가을이 되면 수확한 벼를 마당 한가운데에 노적가리를 해놓고 한 스무(20)섬 될 것이라며 흐뭇해하시면서 혹 쥐라도 먹을까 조석으로 노심초사 살피시던 기억과 어머니는 장날만 되면 쌀 한두 되 머리에 이고 장에 가서 할아버지가 좋아하시는 곰거리(소내장)와 명태 등을 우리 남매들이 졸라 됐던 사탕, 옷가지며 생필품을 가득 이고 오시는 모습이 보이면 기다렸다 마중 나가 신나게 메고 왔던 기억이며, 우리 동네는 물론이고, 인근 마을의 애경사에도 쌀 한 되로 축, 부의하며 희로애락을 같이 했고, 스무 섬 남짓한 쌀로 일곱 식구 일 년의 생계를 꾸렸던 쌀이었다.

그야말로 그 시절의 쌀은 우리민족에게 생명이었고 영혼이자 정신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어떤가. 식당가는 물론이고 가정에서까지도 쌀밥이 음식물 쓰레기가 되어 지자체의 예산을 탕진하고 쌀 한 되로도 족하던 축, 부의금이 작금의 와서는 벼 한 가마니(40kg)값으로도 서운한 곳이 많아졌으니 민족의 쌀을 과연 쌀이라고나 할 수 있겠는가. 주식인 쌀을 경시했던 결과로 이미 식량비상사태를 맞은 나라도 많다. 대표적인 예로 필리핀은 열대성 기후로 1년에 3모작까지도 쌀농사가 가능하다. 이러한 나라가 쌀 수출은 고사하고 국내수요도 채우지 못해 2010245만 톤의 수입으로 세계최대의 쌀 수입국이 되었다 한다.

1978년까지만 해도 수출하던 나라가 1984년을 고비로 도시화가 진전되면서 농촌의 젊은 사람들이 도시로 빠져나가고 독재자인 마르크스 대통령이 추진했던 각종농업지원 정책들이 민주화 이후 구조조정을 내세워 농업 관련 예산을 축소한 결과라 한다.

금년은 쌀 목표 가격을 정하는 해다. 쌀목표가격은 2005년 정부가 쌀 재협상을 계기로 추곡수매 제도를 폐지하면서 도입한 것으로 올해 정기국회에서 8년 동안 1738원으로(80kg) 동결했던 목표가격을 결정해야하는데 정부입장과 농업단체의 요구가 워낙 차이가 커 지난달인 10.29일 국회 농림축산식품위원회의 농,축식품부의 국정감사가 파행으로 끝내면서 한 달 동안이나 대책 없이 허송세월만 보내고 있으니 답답할 노릇이 아니겠는가.

정부는 쌀값목표가격으로 기존에 제출한 174,083원이 생산비보다 높은 수준이라고 고수하고 있는 반면 농민단체들은 쌀한가마니 생산비가 20만원 가량이며 물가 인상 등을 감안해 23만원까지 인상해야한다고 강력 요구하고 있다. 이에 새누리당 의원들의 미온적인 태도에 민주당 위원들을 중심으로 한 국회차원의 의견은 생산비 상승과 국가 재정 등을 감안해 1959원을 제시하며 절충을 모색하고 있지만 정부의 입장이 워낙 확고하여 생산자인 농민의 요구 수용은 어려울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다한다.

하지만 박근혜정부는 우리 민족의 주식이고 생명인 쌀을 경시하고 포기하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고 위험하다는 것을 필리핀의 경험을 반면교사(反面敎師)로 삼아 사고의 틀을 전환해야 할 것이다.

저작권자 © 영광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