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일근/ 언론인, 프리랜서

성탄절 분위기 조차 가라앉았다. 불경기, 캐롤 송 저작권료 등이 원인으로 꼽힌다. 가장 큰 원인은 정부의 불관용때문이 아닐까. ‘법대로는 쉽다. 예수님은 왜 고난의 길을 선택하셨을까. 정부가 을()의 눈을 가지고 고난의 길을 선택해야 한다

그럭저럭 살다가도 이맘때쯤이면 생각이 많아진다. 뒤도 돌아보고 앞일도 생각해 본다. 가슴이 뭉클하거나 서늘해지기도 한다. 한숨도 나오고 웃음도 나온다. 그중 가장 진하게 몰려오는 감정은 아쉬움이다. 후회다. 하고 싶은 일을 하지 못하고, 보고 싶은 사람 보지 못한 채 또 해를 넘길 수밖에 없게 된데 대한 자책감이다. 12월 초순이 지나면 망년회를 핑계 삼아 아쉬움과 자책감을 달래느라 바쁘다. 사회 분위기가 지난 11개월과 사뭇 다르다. 달아오른 분위기는 성탄절인 25일을 전후해 안정을 되찾아 간다.

올 성탄절 전후의 사회 분위기는 예년과 사뭇 달랐다. 조금은 조용했다. 캐럴과 화려한 트리가 들뜬 분위기를 만들던 예년의 거리가 아니었다. 천년이 넘는 역사를 지닌 불교의 축일인 석가탄신일을 훨씬 넘어서는 축제 분위기가 50년 이상 계속됐는데 올해는 아니다. 불경기 때문이란다. 캐럴 송을 틀고 장사를 하면 저작권료를 지불해야 하기 때문이라고도 한다. 나라 안 상황이 전반적으로 가라앉아 있기 때문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예수님께서는 인류에게 믿음·소망·사랑의 메시지를 주셨다. 믿음·소망·사랑. 얼마나 좋은 말씀인가. 즐거움과 희망이 솟는 말씀이다. 그야말로 즐거운 세상, 살만 한 세상, 행복한 세상으로 만드는 말씀이 아닌가. 그 말씀만 실천한다면 어두움과 고통은 사라진다. 천국을 건설해 우리가 그 속에서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다. 그런데도 우리는 그 가르침을 외면하지는 않았는지 되돌아보아야 한다. 믿음이 아니라 불신, 선한 마음으로 구하지 않고 억지로 빼앗으려는 마음, 사랑이 아니라 미움만을 키운 것은 아니가 반성해야 한다.

성탄절 아침. 신문을 집어 드니 무관용이란 단어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정부가 불법에는 관용을 베풀지 않겠다고 했다는 내용이다. 기독교가 어느 종교보다 신도도 많고 영향력도 큰 나라의 성탄절 아침 신문에서 가장 눈에 먼저 들어온 단어 치고는 고약하기 짝이 없다. 믿음·소망·사랑과는 거리가 멀어도 너무 멀다. 이 나라의 현실이 예수님의 가르침과 너무 다른 길을 가고 있다는 생각을 금할 수 없었다.

예수께서는 회개하는 모든 죄인에게 천국의 길을 약속 하셨다. 우리 정부가 결코 관용을 베풀지 않겠다는 말을 반복한 것과는 반대의 길이다. 관용이 없으면 믿음과 소망, 사랑이 자랄 수 없다. 화해와 용서, 평화도 없다. ‘불법이라는 단서가 있기는 하다. 하지만 법이 무엇인가. 귀에 걸면 귀고리, 코에 걸면 코걸이가 아니던가. 돈 있으면 무죄, 돈 없으면 유죄라는 것이 일반적 인식이다. 합법과 불법은 관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정부의 관점만이 합법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만이 정의라고 주장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송전탑 공사를 막는 밀양 주민들은 불법이고 보호관찰소 건립을 막는 분당 주민들은 합법인가. 왜 밀양 주민들과 분당 주민들에 적용되는 법은 다른가. 납득할 만 한 설명을 들어본 기억이 없다. 역사는 방침혹은 지침을 정하고 그에 따라 일방통행을 강행하는 정권에 대해 경고를 되풀이하고 있다. 타협과 설득이 법이나 지침보다 역사 발전에 도움이 된다는 가르침이다.

예수께서는 왕이 되어 달라는 민중의 요구를 듣지 않으셨다. 대신 인류가 지은 죄를 용서 받도록 하기 위해 자신의 목숨까지 바치는 고난의 길을 선택 하셨다. 인류의 30%가 위대한 신으로 받드는 이유다. 정부에 반대하면 불법으로 간주, 처벌하는 길은 쉽다. 설득과 타협, 관용의 길은 예수의 길처럼 고통스러울 수 있다. 쉬운 길은 아무나 갈 수 있다. 어렵고 고통스러운 길일수록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다. ()의 눈을 가진 정부를 원한다. 내년 크리스마스에는 축제 분위기가 한층 고조될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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