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범진/ 향리학회 회원

진내리 947번지 일원에는 옹성이라 부르는 옛 성이 있다. 축성의 형태가 옹기모양의 성()이기 때문에 법성진성(法聖鎭城)이라는 본명 대신에 오랜 세월 옹성(甕城)으로 통용된 성이다.

고종 32(1895)에 간행된 법성진 진지성지 조에는 포백척을 기준으로 󰡒돌로 쌓은 성으로 빙 둘러 3,062척에 높이가 87치인데, 중간 중간 무너져 훼손된 상태.(石城 周回以布帛尺三千六十二尺高八尺七寸間多頹毁)󰡓라고 기록되어 있다.

원래 이 성은 조선 중종 9년에 법성창의 수세지역 군현 사람들이 둘레 1,688척에 높이 12척의 규모로 쌓은 성(新增東國輿地勝覽 卷36 靈光郡 關防 法聖浦營 ... 正德甲戌始築 石城周一千六百八十八尺高十二尺)으로, 영조 때에는 성의 절반이 무너지고, 훼손된 상태(輿地圖書 全羅道 靈光 鎭堡 法聖鎭 .... 今半頹毁今)’였고, 순조 7(1807) 11, 법성진 대 화재 후, 재정비되어, 앞의 법성진 진지에서 보듯이 부분적으로 훼손(間多頹毁)되었지만 한말까지 그 형상은 그대로 남아 있었다. 그러나 법성진이 폐진되고, 1897년에 지도군이 신설되어 이 성안에 남아 있던 관아 건물 중 형방청을 제외하고 지도군 객사와 향교를 짓기 위해 모두 철거하여 지도(智島)로 옮겨감에 따라(독립신문 1897101일 자 31단 기사) 성안의 관아자리는 일제강점기에 이르러 집들이 들어차고, 밭으로 경작되어 옛 위용이 완전히 사라졌다. 그러나 그 성 터 안에서 1908년에 법성포초등학교 전신인 사립 법성포 보통학교가 문을 열었고, 1918년에 법성포청년회가 창립되어 신문화의 보급과 문맹퇴치에 앞장섰으며, 교회가 자리하여 선교활동을 펼치기도 했다. 현재 이 성은 두 차례에 걸친 지표조사를 거쳐 지방문화재로 지정(전라남도 제205, 2002. 11. 27)되어, 5천여 평의 성 터가 관리되고 있다.

법성진성에 관하여는 비록 일부 오류는 있으나, 여러 고문헌을 참고하여 법성향지에 비교적 많은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이 향토사지는 1980년대에 신명희(申明熺), 김일록(金一鹿) 선생이 남기신 유고(遺稿)를 저본으로 장재필(張再必) 영광군수와 임선혁(林善爀) 번영회장 등 지역 주민들의 헌성에 힘입어 김영남(金永南) 선생이 집필하여 1988년에 그 빛을 보았다, 그리고 4년 후인 1992년에 김영남 선생이 재 집필하여 홍성수(洪性銖) 회장을 중심으로 재경법성향우회에서 법성조창 천년기념사업의 일환으로 증보하여 출간되어 애향(愛鄕)의 씨앗이 되었고, 법성포단오제의 국가지정문화재 지정과 법성진성의 지방문화재 지정 등, 우리고장 역사서로 그 사료적 가치를 널리 인정받고 있으며, 말단 면단위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유일무이한 향토사지로 재경법성향우회의 크나 큰 업적으로 널리 평가받고 있다.

최근에 재경 향우동문회에서는 이와 같이 훌륭한 선배들의 정신을 이어받아 ‘2014년 법성진 축성 500주년 기념사업의 일환으로 기존 향지의 내용 가운데, 일부오류를 개삭하여 증보하고 1985년 이후의 향토사를 추록하여 집대성하는 문제를 숙고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영광군이나 법성면 그리고 의회와 사회단체들은 아직까지 공론화 하지 않고 있는 듯하다.

법성진성의 복원은 지역 국회의원의 영광군 9대 공약사항가운데 하나다. 여러 어려움이 있겠으나 재경 향우들의 숭고한 뜻과 지역민들의 열의에 힘입어 임기 내 꼭 이행되리라 믿는다.

가까이 고창읍성은 오래전에 복원되었고, 무장읍성도 짤끔 찔끔 더디나 서서히 그 모습이 드러나고 있다. 날로 빈집이 늘어나고, 황량하기까지 한 옛 성 터가 하루빨리 복원되어 우리고장의 활력소로 자리하였으면 하는 바람이다

 

 

해남 70성 돌

성벽상태가 가장 좋은 서쪽 성벽에 남아있는 성돌이다. 축성연대는 파괴되었으나 “...... 910일 해남현에서 70척을 쌓았다. 감관(監官)은 임회(任會)고 도색(都色)은 강영호(姜英浩)(...九月十日 海南 七十尺 監官 任會 都色 姜英浩)”라고 명문 각자되어 있어 파괴된 부분은 正德 甲戌 9이라 새겼을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 남아있는 무장, 진원, 창평, 광양, 장성, 보성, 해남의 지명이 새겨진 성 돌이 남아 있는데, 무장을 제외하고 모두 1512년에 영산창에서 법성창으로 이관된 수세지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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