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위원/ 여민동락 공동체 대표 살림꾼, 영광신문 편집위원

어르신들의 읍소와 분노가 심상치 않다. 요새 하루 종일 수십 분의 어르신들이 관장실 문을 두드리신다. 정부에서 제공하는 노인일자리합격자 발표 뒤끝이라서 그렇다. 쓰레기 줍는 일부터 학교 앞 안전관리까지 주당 16시간을 봉사하면, 한 해 중 9개월 동안 월 20만 원 정도의 용돈벌이를 할 수 있는 소득보전형 일자리다. 농촌도 그렇거니와 도시는 더욱 더 경쟁률이 치열하다. 당연히 일 하려는 어르신은 많고 제공하는 일자리는 턱없이 부족한 탓이다. 소득과 자산, 부양의무자의 부양능력을 타산해서 선발하되, 특정 일자리를 제외하고는 주로 생활이 어려운 어르신들이 신청을 하기 때문에 불합격된 어르신들의 사정이 딱하기 그지없다. 젊은 관장과 직원들에게 눈물부터 보이며 신세한탄을 하시는 어르신들부터 다짜고짜 언성을 높이며 불합격 이유를 설명하라고 다그치는 어르신까지, 눈물과 고성이 오가는 진풍경이 매년 반복되고 있다. 읍소든 분노든 어르신들을 바라보는 사회복지사들의 맘이 아프기는 매 한가지다. 왜 저 백발의 어르신들이 머리 조아리며 읍소해야 하는가. 왜 저 원로들이 목소리 높여가며 따져 물어야 하는가. 국가는 오늘의 풍요를 위해 일생을 바쳐왔던 어르신들을 보다 인격적이고 존엄하게 예우할 수는 없는 것인가. 생각할수록 참담하고 통탄스럽다.

그래서다. 사정이 이렇게 딱하게 꼬일수록 박근혜 대통령의 복지공약 사기가 떠오르지 않을 수 없다. 대선 하루 전까지 TV 토론회에 나와 마치 새로운 세상이나 만들 수 있을 것처럼 야무지게 공약하더니, 선거 끝나자마자 도루묵이고 취임 1년 뒤 지금은 미안해하는 눈빛조차 찾아볼 수 없다. 완벽하게 국민들이 사기를 당한 셈이다. 작심하고 표를 볼모로 국민들에게 사기를 쳤다는 얘기다. 자 생각해 보라. 기초연금, 고등학교 무상교육, 반값등록금, 사회보험료 지원, 공공임대주택, 4대 중증질환 공약이 전부 파기 혹은 후퇴했다. 특히 어르신들 모두에게 예외없이 20여만 원씩 연금을 주겠다했던 기초연금 공약은 애초에 해 줄 마음이 없으면서도 해 줄 것처럼 이야기한 대표적인 사례다. 기초연금 공약만 지켰어도 쓰레기 줍는 어르신들이 노인일자리에 목을 매고 눈물 흘리진 않을 것 아닌가. 오죽하면 복지단체와 노인단체들이 모여 공직선거법상 허위사실 유포죄, 형법상 사기죄로 대통령을 고발하겠는가. 대선 전에 경제가 좋다가 갑자기 상황이 어려워져 파기했다면 그나마 수긍이라도 갈 것이다. 공약 이행 시늉조차 하지 않고 곧바로 약속을 어기고 재정상황을 거론하는 건, 애당초 공약이행 의사가 없었거나 실정도 살피지 않은 채 당선부터 되고 보자는 식이 아니었겠는가. 정신적인 피해와 배신감은 뒤로 하고, 그 자체로 국민들에게 재산상의 손실과 불이익을 심대하게 입힌 것이다. 그것이 허위사실 유포와 사기죄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공약 사기 정치인은 퇴출시켜야 마땅하다. 전 국민을 상대로 통제와 처벌없이 무분별하게 반복적으로 자행된다는 측면에서, 정치인의 공약사기는 4대 악이라 불리는 성폭력, 가정폭력, 학교폭력, 불량식품과도 비할 수 없는 더 큰 죄악이자 중대범죄다. ‘민주화를 위한 변호사모임의 의견처럼, 이번 기회에 공직선거법을 개정해 공약은 성실히 이행되어야 한다는 규정과 공약은 소요재정과 이행시기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을 제시해야한다는 규정을 신설해 후보자 공약에 대한 법적 책임을 물어야 한다. 공약을 평가하고 배포하는 과정에서 이를 규제할 기관이 바로 중앙선거관리위원회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공약 발표 기한 준수여부, 공약의 내용에 구체적 실현계획이 포함되었는지의 여부, 그 계획의 재정적 적절성 등을 평가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게 해야 한다는 주장이 타당성을 얻고 있다. 그래서 공약 이행 평가 지수를 개발해 적용하고, 당선 후 공약 이행을 위한 재정확보 노력, 관련 법률의 발의정도 등 공신력 있는 지수를 개발해 공약 준수도를 국민들이 객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공약 사기를 통제할 수단이라는 것이다.

지방선거가 채 100일도 안 남았다. 또다시 도처에서 공약 사기정치인들이 창궐할 것이다. 매번 당하고 살면서도, 또 다시 집안이라고 찍고 동문이라고 찍고 얼토당토않은 헛공약에 속아 투표하는 경우도 비일비재 할 것이다. 제대로 검증하자. 뭘 하겠다고 허풍떠는 정치인이 아니라, 뭘 해왔는지, 어떻게 살아왔는지 후보자의 역사와 실력과 인격을 바로 보자. 그래서 지역에서만큼은 박근혜의 아바타들이 공약 사기를 또 다시 자행하는 걸 막아야 한다.

그래야 눈물과 한숨으로 읍소와 분노를 자아내는 저 어르신들의 아픔을 조금이나마 위로할 수 있질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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