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봉주/ 전라남도다문화가족지원센터연합회장

아들을 잘 부탁합니다.

201010, 열한 살의 장애인 아들을 둔 일용직 노동자 윤모씨(52)가 자살을 했다.

당시 윤씨는 "아들이 나 때문에 못 받는 것이 있다. 내가 죽으면 아들이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동사무소 분들께 잘 부탁한다."라는 유서를 남기고 목숨을 끊었다.

일용직 근로자로 하루 벌어 하루를 먹고 사는 고단한 처지에서 장애인 아들을 키우기가 막막했던 윤씨, 그는 결국 아버지로써 아들을 위해 해 줄 수 있는 마지막 선물(?)로 자살을 선택했다.

장애를 가진 아들이 자신으로 인해 정부의 복지혜택을 받을 수 없다는 생각이 그로 하여금 자살이라는 극단의 선택을 할 수 밖에 없게 만들었던 것이다.

아버지가 죽어야만 아들이 살 수 있는 참담한 비극이 세계 경제대국 10위라고 자랑하는 대한민국에서 발생한 사건이었다.

마지막 집세와 공과금입니다

우리 사회를 또 한 번 충격에 빠뜨린 사건이 있었다.

이른바 송파구 세모녀 자살사건이다.

주인 아주머니께

죄송합니다.

마지막 집세와 공과금입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집세 70만원이 든 봉투와 함께 발견된 송파구 세모녀의 유서 내용이다.

러시아 소치에서 벌어지고 있는 동계올림픽 금메달소식으로 온 나라가 들떠 있던 날, 세 모녀는 모진 생을 접었다.

세상의 그 무엇이 귀한 생명을 포기해야 할 만큼 세 모녀를 힘겹게 했을까?

출입문과 창문 틈을 테이프로 꼭꼭 막고 방안에 번개탄을 피워 생을 마감했던 그들은 어쩌면 죽어서도 희망없는 이 세상과는 단절을 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반지하 단칸방에서 살던 세모녀, 61살의 어머니인 박씨와 36, 33살의 신용불량자인 두 딸, 박씨 가족은 IMF 이전만 해도 한국의 중산층으로 괜찮게 살았다고 한다.

하지만 남편의 사업이 어려워진데다 엎친데 겹친 격으로 방광암에 걸린 남편이 12년 전 암치료비로 막대한 빚만 남긴 채 세상을 떠난 후로 그들의 고단한 삶이 시작되었다.

주변사람들은 두 딸이 신용불량자가 된 것도 이 때 카드를 만들어 치료비로 사용한 것을 갚지 못했기 때문일 거라고 짐작하고 있다.

그렇게 어려운 삶을 영위하면서도 8년 동안 집세 한번 밀리지 않고 열심히 살아 보려고 발버둥 쳤던 세 모녀, 그들이 생을 접어야 했던 가장 큰 이유가, 그들이 싸늘한 주검이 되고 나서도 1주일이 지나서야 발견이 되었을 만큼 냉정한 세상 사람들의 무관심 때문은 아니었을까?

늘어만 가는 가족 동반자살

세상살이가 정말 힘들고 팍팍해진 걸까.

뉴스보기가 겁이 날만큼 자살소식이 끊이지 않는다.

특히 선진국 대열에 진입했다고 떠들어 대는 우리나라에서 가난을 견디지 못하고 어린 자녀까지 대동하여 가족이 동반자살은 하는 일이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는 것은 심히 수치스러운 일이라고 아니할 수 없다.

동두천시에 사는 한 30대 주부가 4살배기 아들을 안고 15층에서 투신자살을 했던 일도 있었다.

경기도 광주에서는 40대 가장이 생활고를 비관하여 두 자녀와 같이 동반자살을 했으며 서울시 강서구 화곡동 50대 부부의 동반 자살에 이어 전북 익산에서는 30대 여성이 두 자녀와 자살을 기도하여 7살 아들만 숨진 사건도 있었다.

가족을 동반하여 자살을 선택할 수밖에 없을 만큼 그들의 처지가 막다른 상황이었는 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빈곤으로 인한 가족동반 자살이 늘어간다는 것은 우리나라의 복지정책을 재검토 해볼 필요가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까다로운 복지정책

스스로 생활유지 능력이 없는 빈곤층에게 국가나 지자체가 최저생활을 보장해주는 공공부조 제도인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가 2000년부터 시행되고 있다,

그러나 빈곤층이 실제 이 제도의 혜택을 받기 위해서는 넘어야 할 난관이 너무 많은 것이 현실이다.

소득과 재산, 부양의무자 등 자격이 과도하게 까다롭다 보니 좀처럼 수급자 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물론 정부의 복지 정책에도 한계가 있게 마련이다.

정부의 복지정책을 보완하기 위해 기초 마을단위까지 전국적인 네트웤을 갖고 있는 새마을운동 같은 단체를 활용하는 것도 좋은 방법 중 하나라고 하겠다.

복지의 사각지대를 해소하기 위한 민안망의 활성화로 노동자 윤모씨나 송파구의 세 모녀 같은 불행한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기를 기원해 본다.

저작권자 © 영광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