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일근/ 언론인

정몽준이 65세의 김황식에게 나이도 많으면서 뭐하러 나서느냐는 내용의 발언을 했다. 65세 이상은 나서지 말라는 뜻이다. 노인 폄훼가 분명하다. 그래도 조용하다. 정동영과는 대조적이다. 대한민국은 왜 이렇게 불공정한가

사람은 보통 하루에 25천 마디(남자)에서 3만 마디의(여자) 말을 한다고 한다. 이 정도면 모든 사람이 말을 잘 해야 한다. 이론적으로는 그렇다. 그런데 아니다. 말을 잘 하는 사람이 그렇지 못한 사람보다 많다면 말 한마디로 천냥 빚을 갚는다는 속담이 있겠는가. 말을 많이는 할 수 있어도 말을 잘 하기는 매우 어렵다. 그래서 말은 그 사람의 경쟁력이다. 사회 생활의 중요한 무기. 성능이 아주 좋은.

말하기 좋다 하고 남의 말 말을 것이/ 남의 말 내 하면 남도 내 말 하는 것이/ 말로써 말 많으니 말 말을까 하노라’. 청구영언에 수록된 시조다. 노래 속에 준엄한 경고를 담았다. 말 조심을 경고 하는 말조차 조심스럽게 한 옛 선비들의 지혜가 엿보인다. 대단히 자극적인 경구도 있다. “혀에 맞아 죽는 사람이 칼에 맞아 주는 이보다 많다는 성경 말씀이나 칼의 상처는 아물어도 말의 상처는 아물지 않는다는 몽골 속담 등이다.

정치판의 재편과 지방선거가 맞물려 말 잔치가 벌어지고 있다. 많은 직업 가운데 정치인 만큼 말에 의해 성패가 갈리는 직업도 없다. 말로 성공할 가능성 보다는 실패할 가능성이 크다. 말 실수로 가장 큰 타격을 입은 현역 정치인으로는 정동영을 꼽을 수 있다. 열리우리당 의장이던 정동영은(이하 경칭 생략) 17대 총선 직전인 20043월말 대구 지역 언론인들과의 간담회에서 말 실수를 했다. 소위 노인 폄훼 발언이다.

정치에 무관심한 젊은 유권자들에게 한마디 해달라는 요청을 받고 한 말이 두고두고 정동영의 발목을 잡고 있다. ‘미래는 20-30대의 무대다. 60-70대는 투표 안해도 괜찮다. 그분들이 미래를 결정해 놓을 필요는 없다. 무대에서 퇴장하실 분들이니까. 쉬셔도 되고. 20-30대가 나서서 미래를 결정해야 한다는 요지의 말을 했다. 젊은 세대가 원하는 정치를 실현 시키려면 젊은 세대가 적극 투표 해야한다는 내용이 분명하다. 내용상으로는 나무랄 데 없다.

문제는 노인 폄훼로 오해 받을 소지가 있었다는 점이다. 노인과 관련된 부분을 빼보자. ‘미래는 20-30대의 무대다. 20-30대가 나서서 미래를 결정해야 한다가 된다. 젊은 세대의 이해를 돕기 위해 친절(?)을 베푼 것이 본의 아니게 노인을 폄훼했다는 오해를 불렀다. ‘고려장’ ‘패륜 정당’ ‘인륜의 도마저 상실한 망언이라는 분노에 찬 발언들이 쏟아졌다. 오해를 풀기 위해 전국의 노인회관을 돌면서 사죄 했다.

뱉어버린 노인 폄훼발언은 열린우리당의 지지율을 떨어뜨렸다. 2007년 대선에서 정동영이 이명박에게 사상 최대의 표차로 패배하는 결정적 요인이 됐다. 그야말로 부주의한 말 한마디가 앞길이 구만리인 정치인 정동영의 족쇄가 됐다. 53세의 젊은 나이에 대선 후보까지 올랐던 정동영이 정치적 굴욕을 당하고 있는 직접적인 이유다. 역사는 정동영을 부주의한 말 한마디로 혹독한 대가를 치른 대표적 정치인으로 기록할 것이다.

시장 경선에 나선 정몽준이 경쟁자인 65세의 김황식 전총리에게 연세 드신 분이라고 했다. 나이가 많으니 나서지 말라는 쫑코. 김황식은 세살 많은 사람에게 할 말인가라고 응수 했다. 그것으로 끝났다. 만약 야권 유력 정치인이 경쟁자에게 나이 들었으니 나서지 마시라고 했다면? 직접 관계도 없는 여당과 언론이 2의 노인폄훼 발언이라고 벌떼 같이 나설 가능성이 크다. 아니 기회를 놓치지 않고 제2의 정동영으로 만들 것이 틀림없다.

야권은 지방선거를 앞두고 새누리당과 정몽준을 한꺼번에 보내버릴 찬스를 놓쳤다. 정몽준의 발언이야말로 딱 떨어지는노인 폄훼다. 언론은 모른체 하고 야당은 창당하느라 정신이 없다. 노인들도 조용하다. 대한민국 참 불공평하다. 70세가 노인정에서 심부름하는 군번이니 65세면 청춘인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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