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위원/ 여민동락 공동체 대표 살림꾼

지방선거가 딱 두 달 남았다. 우리 군도 이미 후끈하다. 당연히 군수를 누구로 뽑을 것인지가 가장 큰 관심사다. 항간에 무슨 무슨 대형병원 간의 대결이 될 것이라는 촌스런 소문이 나돌고 있긴 하지만, 영광 의사협회장 선거가 아닌 이상 헛소문이길 바랄 뿐이다. 정치(政治)의 참뜻이 과연 무엇인가. ()자는 바를 정()자와 매로 톡톡 친다는()자가 합쳐진 글자다. 바르게 어우러져서 매질한다는 의미다. ()자는 물론 다스릴 자다. 이는 곧 나라를 바르게 다스려야 한다는 뜻이다. 그래서 정치다운 정치를 위해서는 선거를 통해 정의롭고 유능한 사람의 진출은 돕고, 불의하고 무능한 사람은 쳐 내야한다.

나는 이런 군수를 뽑고 싶다. 첫째, 진정한 자치주의자여야 한다. 중앙정치의 인질이 되어 국회의원의 뒤꽁무니나 따라다니는 직업정치인은 솎아내야 한다. 정책과 제도를 만들고 집행할 때 주민에게 뜻을 여쭙고 상의하고 부탁하는 일을 최우선으로 삼는 군수가 필요하다. 직업정치인들만의 무대에서 결정되는 정책이란 자치를 빙자한 통치에 불과하다. ‘주민이 질서를 만들면, 행정은 이에 따른다.’ 이것이 자치의 근본이다. 경청하는 정치야말로 실종된 자치를 복원하고 주민을 주인으로 세우는 방법이다. 주민들이 직접 광장에 모여 정책과 제도를 만드는 직접민주주의, 자치는 이렇듯 민주주의를 통해 완성될 수 있다.

둘째, ()적 가치를 중히 여기는 삼농(三農)주의자여야 한다. 이른바 농업 농촌 농민을 존엄하게 예우하는 군수여야 한다는 뜻이다. 영광군은 엄연히 농민이 농업을 근간으로 살림을 유지하는 농촌이다. 산천과 강토를 다 갈아엎어 공장을 지을 수는 없다. 본래부터 농토를 지켜왔던 원주민들의 경제와 복리에 대해 살필 줄 알고, 귀농귀촌의 대이동이 시작된 도시난민들의 행렬을 품을 대책을 갖고 있는 군수여야 한다. 소농 고령농 여성농 가족농이 큰 욕심 없이 농사지어 빚내지 않고 더불어 살 수 있으며, 나라에 엎드려 손 벌리지 않고도 복지와 평화를 누릴 수 있는 영광군의 설계도를 갖고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셋째, 반핵 탈핵 평화주의자여야 한다. 생명평화의 가치를 존중하고 핵발전소에 대한 단호한 철학과 소신이 있는 군수여야 한다. 영광군은 오래전부터 이미 핵발전소의 포로다. 후쿠시마 핵폭발의 예에서 보듯 안전한 핵발전소란 없다. 당장의 뾰족한 대안은 없다할지라도 핵발전소의 위험으로부터 영광을 해방시킬 중장기적 폐기전략을 주민과 함께 만들어 갈 신념의 정치인이 간절하다.

넷째, 경쟁보다는 협동으로 서로 도우며 살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진 협동주의자여야 한다. 사회적경제 위주의 경제생태계를 살려갈 협동의 철학으로 사회적기업, 협동조합, 마을기업을 두루 직조해가며 피폐한 지역의 살림을 살찌워나갈 경제노선을 가진 사람이 군정을 맡길 바란다. 대형 산업단지 유치도 훌륭하고, 주력산업 중심의 브랜드를 키우는 것도 간과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주민들이 큰 돈 들이지 않고 실패의 위험도 최소화하면서도 공공성과 공익성을 갖춰가며 골목살림을 해결해 나갈 사회적경제에 주목해야 지역의 미래가 있다. 정치의 근간이 풀뿌리 민주주의라면, 경제의 근간이 바로 사회적경제, 이른바 협동경제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섯째, 저마다 지금 발 딛고 서 있는 공동체의 가능성을 믿는 마을주의자여야 한다. 국가에서 마을로, 개인에서 공동체로, ‘중심에서 관계중심으로의 전환이 모색되고 있는 시대다. 이웃이 이웃을 서로 살피고 돕고 살리는 마을의 복원과 재생만이 주민의 행복을 보장할 수 있다. 해맑은 아이부터 백발의 어르신까지 모두가 행복한 영광군을 꿈꾼다면, 그 해답은 마을공동체에 있다. 작은 시골학교를 살리는 데 마을의 명운을 걸어야 하고, 면 단위의 변방일지라도 공공건물 곳곳마다 도서관을 가꿔 책을 가깝게 여기게 해 사람을 키워야 한다. 도로를 뻥 뚫는 비용의 지출보다 자전거 길을 다듬는 생태적 투자를 아끼지 않는 노선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건물만을 지어주는 경로당 신축 대신 경로당을 마을의 복지문화센터로 전환해 마을의 원로들과 젊은이와 아이들이 함께 모여 마을의 대소사를 논하는 민주주의 공회당의 구실을 튼실히 해 갈 수 있도록 사람과 활동을 지원하는 군수여야 한다. 그래서 마을주의자는 당연히 생태주의자다. 마을주의자는 당연히 보편적 복지주의자다.

모든 국민은 투표하는 순간에만 주인이다. 투표가 끝나자마자 다시 노예가 된다.’했다. 프랑스 계몽 사상가인 루소의 말이다. 이번에도 그리되지 말라는 법이 없다. 후보들이 선거 때는 무슨 말인들 못하겠는가. 그래서다. 후보가 지금까지 살아온 과정을 세심히 살펴야 한다. 돈과 권력을 좇아 기회주의적으로 산 인물인지 주민을 섬기고 정의와 유능함을 갖춘 참사람인지 역사를 봐야 한다. 다른 후보를 비방하면서 자신을 드높이려는 후보보다, 다른 후보의 장단점과는 무관하게 자신이 얼마나 실적실력을 갖고 있는지를 다정하게 논증하는 후보를 주목해야 한다. 나는 그런 참 좋은 후보를 만나서 동행하고 싶다.

더 좋은 영광군을 원하는가. 그러면 유권자인 주민이 똑똑하고 깐깐해야 한다. 다짜고짜 찍으면, 투표가 끝나자마자 주민은 다시 노예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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