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형택/ 영광문화원장

어두운 방 안에

바알간 숯불이 피고

외로이 늙으신 할머니가

애처로이 잦아드는 어린 목숨을 지키고 계셨다 

 

이윽고 눈속을

아버지가 약을 가지고 돌아오시었다

 

, 아버지가 눈을 헤치고 따 오신

그 붉은 산수유 열매 .... (후략)

는 김종길 시인이 지은 <성탄제>라는 의 앞부분입니다. 학창 시절 한번쯤은 익혔던 는 기억에서 사라졌으나 속의 산수유는 구례군 산동면을 뒤덮어 장관을 이루었습니다. 해마다 이맘때면 노오란 물결이 세상 사람들을 지리산 아랫마을로 불러들입니다. 필자도 이 시를 배우고 가르칠 적에는 산수유라는 나무 자체를 몰랐던 것이 사실입니다. 시속의 내용으로 봐서 노오랗게 피는 꽃 보다는 빨간 열매만 눈치 챘을 뿐 그냥 그냥 넘어갔거나 넘겼을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산수유 축제장을 가기 위해서 새벽부터 잠 설치며 서너 차례를 다녀왔습니다.

금년에도 지난 금요일에 지인들이랑 함께 다녀오면서 다시 한번 시 성탄제를 떠올리기도 했습니다. 시를 읽으면 산수유가 그렇게 흔하지는 안했겄다 하는 생각이나 지금은 온 마을을 뒤덮고 그것으로 인해서 나라 안의 곳곳에서 사람들이 모여들어 소득증대와 관광 수입 등으로 제법 짭짤하게 되었습니다. 축제장 곳곳마다 산수유로 가공한 건강식품이며 먹거리 등이 즐비하게 놓여 있었습니다. 그런가 하면 향토음식과 각종 봄나물 등도 있어 축제의 분위기를 한층 돋보이게 했습니다. 산수유 꽃길 따라 마을길을 쭉 내려오는 기분은 그것만으로도 여행길을 충족시켰습니다. 아직도 옛 돌담길 사이로 물이 흐르고 군데군데 사라져가는 삶의 흔적들을 엿 볼수 있어 시간가는 줄도 몰랐습니다. 그러던 차에 내 마음을 사로잡은 골목길을 만났습니다. 오래된 바라지 문짝에 하얀 페인트를 발라 그 위에 어쭙잖은 솜씨로 시를 쓰고 그림까지를 그려놓은 시골냄새 물씬 나는 시화 한 점이 발길을 멈추게 했습니다. 멈춘 눈길과 발길은 거기서 그치지 않고 죽 마을길을 이어서 집집마다 한점 정도 씩 내다걸었는지 마을 어귀까지 시심가득 느끼며 내려올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잘 다듬어진 재료도 아니고 세련된 글씨나 그림도 아니었지만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참신함을 느끼게 했던 것이라 지금도 잊혀지지 않습니다.

누구의 아이디어였을까? 정말 잘했구나 우리도 이렇게 해야 쓰겠구나를 생각하면서 마을을 빠져나오니 아쉬움이 더 새록새록 했습니다. 산수유 경치보다도 더 아름다운 그 고샅에서 만난 시화전은 산수유 축제를 한층 빛나게 했습니다. 그 고샅에는 그 재료들이 더 어울려 운치를 나게 했기에 망정이지 거기에 잘 다듬어진 재료들로 번드르르하게 진열했다면 이렇게 여운이 오래 남지 않았을 것입니다. 마을 사람들이 제안을 하고 마을사람들이 어울려서 쓰고 그리고 만들고 걸고를 함께 했을 모습을 상상해보니 더욱 새록새록 상상이 되어집니다.

모름지기 축제는 이렇게 되어야한다고 말들을 합니다만 어느 축제를 가나 많은 돈을 들여 연예인을 불러 노래 부르게 하고 춤추게 하고 흥청망청으로 끝내는 판인데 이 작은 생각들이 이렇게도 축제를 빛나게 하는 것을 모르고 있는가 봅니다.

다녀온 다음날 신문을 펼치니 산동면에서 산수유 문학회를 조직하고 시를 모아서 작품집까지 만들어 관광객 1750명에게 나누어주었다는 기사를 읽고 엊그제의 모습이 눈에 선했습니다.

산수유에 그치지 않고 그 산수유를 이렇게 까지 가치를 창조해내는 마을사람들이야 말로 이 시대를 살아가는 참된 문화인이 아닌가 문화를 알면 세상이 보이며 살아가는 생각이 바뀐다는데 구례군 산동면 사람들은 진즉부터 그런 삶을 살아가며 문화적 가치를 터득한 것이 아니겠는가

우리도 축제를 맞이할 때 마다 산수유 마을 사람들의 문화적인 삶의 방법을 배워온다면 손해는 아닐까 싶습니다. 꼭 시화를 제작하자는 것은 아니고 우리 실정에 맞게 우리것을 조금이나마 축제에 보태보자는 생각을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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