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일근/ 언론인

지방선거 공천이 지역민을 내편, 네 편으로 가른다. 공천 폐지 없는 국민화합은 공염불이다

지난 50. 너무 길었다. 고통스러웠다. 어떻게 보냈는지 모르겠다. 세상은 우리가 원하는 데로 되는 것이 없었다. 와중에 선거 한다고 부산스러웠다. 되돌아본다. 생때같은 자식들 잃은 가족들의 슬픔을 외면하지는 않았는지. 그 처절한 울음소리에 귀를 막지는 않았는지. 무책임한 관피아와 정치인들을 감시해야 할 눈을 감지는 않았는지. 나라를 개조해야 한다고 크게 소리쳐야 할 입을 닫고 있지는 않았는지.

그래도 내일을 향한 발걸음을, 삶을 멈출 수는 없다는 핑계로 세월을 세월호 참사 이전으로 돌릴 수는 없다. 돌려서도 안 된다. 똑같은 참사가 우리, 아니 나를 기다리고 있다. 어영부영 잊고, 어물어물 넘기면 안 된다. 내가 차가운 물속, 콘크리트 더미, 넘실거리는 불꽃의 제물이 될 수 있다. 입을 닫고, 귀를 막고, 기억 상실증에 빠지면 우리의 자식들을 참화로 몰아넣을게 뻔하다.

지방자치의 주역들을 선출하는 선거도 끝났다. 오직 당선만을 위해 수단 방법 가리지 않고 내편, 네편 갈라져 싸웠다. 선거 이후에는 서로 말도 섞지 않겠다는 듯 으르렁거렸다. 없는 말도 지어냈다. 비방과 흑색선전이 난무했다. 윤리, 도덕, 미풍양속, 심지어 법까지도 당선이란 목표 앞에서는 무시됐다. 때문에 지역사회는 갈라지고 찢겼다. 몇 명의 지방자치 주역을 선출하느라 이웃 간, 집안간, 친구간, 심지어 친척간 까지도 갈라져 반목하고 갈등한다.

모세의 기적이 일어난 것도 아닌데 쫙 갈라진다. 인구가 작은 지역일수록 심하다. 그리고 4년 후 설욕을 벼른다. 김동길 교수 말씀대로 이게 뭡니까? 주민들끼리 잘해보자고, 잘해보라고 실시한 지방자치가 지역사회를 갈등과 분열로 몰아넣고 있다. 실시 의도는 좋은데 그 병폐는 날로 심각성을 더해가고 있다. 약이 아무리 좋아도 부작용이 심하면 먹지 않아야한다. 지방자치도 마찬가지다. 폐지를 주장하는 목소리도 만만치 않은 이유다.

지방자치는 풀뿌리 민주주의다. 우리 일을 우리끼리 상의해서 처리할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가. 그런데 시작부터 중앙 정치권이 그 목덜미를 쥐고 쥐락펴락 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했다. 정당 공천제다. 현실적으로 특정 정당에 몰표를 주는 정치 지형이다. 공천을 받지 못하면 선출되기 어렵다. 말로만, 제도만 지방자치다. 실제로는 중앙정치가 지배하는 구조다. 특정 정당 소속 국회의원이 노릇 하게 돼있다.

그래도 지방자치를 포기할 수는 없다. 지방자치의 포기는 완전한 민주주의의 포기다. 치유해야 한다. 다행히 정당 공천 폐지가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 지난 대통령 선거에서 여야 후보들도 폐지를 공약했다. 박 대통령과 새누리당이 공약을 뒤집었다. 새정치민주연합도 슬쩍 편승했다. 지방 권력까지 새누리당에 내줄 수 없어서라고 했다. 당의 기반이 무너질 수 있기 때문이라는 명분도 내세웠다. 속 보인다. 실은 지방 권력을 쥐락펴락하는 달콤한 맛을 버리기가 아쉬워서다.

따져보자. 호남에서는 새정치 연합, 영남에서는 새누리당 공천만 받으면 당선 가능성이 크다. 지방선거 입지자들은 공천에 목을 맬 밖에. 국회의원 눈치 보고, 모시는 데 최선을 다한다. 지역 일꾼들이 중앙정치의 하수인으로 전락한 현실이다. 지역민 대다수, 당원이든 아니든 특정 정당을 선호한다. 공천 못 받은 입지자는 무소속 출마 외에는 길이 없다. 그러면 공천자들은 그들을 당()을 싫어하고 반대하는 부류로 몰아간다. 내편, 네편으로 가른다. 갈등을 조장한다.

이게 뭡니까? 중앙정치가 지방권력을 내려놓아야 한다. 그 전에 국민 화합을 외치는 것은 대국민 사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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