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형택/ 영광문화원장

선생님!

어저께 서울서 여그 내려오는 버스를 타러가서 아무한테도 안물어보고 내가 영광이라고 써진 버스를 찾아서 타고 왔단말요. 지난번까지만 해도 아들이 따라와서 버스를 찾아주어야 탔는데 이번부터는 내가 찾을 수 있다고 했더니 아들 며느리 손자까지 나서서 영광을 직접 써보라고 하지 않겠소 딱 써부렀지라우 모두가 박수를 치면서 우리 할머니 최고라고! 우리 어머니 따봉! 이라고 막 외쳐대는 소리를 들으며, 버스터미널을 갔지라우 다른날 같으면 아들이나 며느리가 버스타는 곳 까지 따라오는 불편을 겪었지만 이번에는 나만 내려주고 주차걱정 없이 바로 갔었지라우 버스안에 앉아서도 그놈의 .이라는 글자를 눈 ᄈᆞ지게 쳐다보고 손바닥에다 써보고 유리창에도 써보고 지랄 방정을 떨었지라우

심봉사 눈뜨는 대목보다 더 가슴벅찬 눈뜸이었다는 흥곡 할머니의 이야기를 들어주다가 공부시간도 한 20여분 흘러부렀다. ‘영광이라는 두글자를 가르쳐드리려고 20여명의 까막눈 어머니들에게 몇 번의 반복과 몇날의 반복을 했었던가

내가 가르치고 있는 한글반 어머니반의 구성은 다른곳의 학습단체보다 더 특별한 조직이였다

우선 문자 이해득이면서 60대를 넘은 어머니들이며 거기다가 2-3명 빼고 모두가 장애를 입은 사람들로 되어있다. 전동차를 타고 오시는 분, 휠체어로 오시는 분이 있는가하면 도우미가 없으면 혼자서는 거동이 불편하신 분까지 정말 다양하다. 그래서 공부시간에도 내가 직접 그분들의 앞에까지 찾아가서 지도하고 확인해야하기 때문에 불편은 이루 말할것이 없는 실정이다.

5년이 지난 지금 겨우 학습훈련이 이루어져 지금은 그래도 제법 학습 분위기가 감도는 모습이다 매주 화요일이면 비가오나 눈이오나 불편하신 몸으로 잊지않고 찾아오시는 분들 가까운 거리도 아니고 어떤분은 백수의 바닷가 마을에서 어떤분은 묘량 대마 불갑등지의 산골마을에서, 버스타고 내려서 불편한 다리끌고 찾아오시는 모습을 보면 나는 어떤 이유나 핑계로도 빠져서는 안되게 되어있다.

어디 그 뿐인가! 나보다 훨신 먼저 오셔 내가 들어가면 박수를 치고 손목을 잡고 난리법석이 아니였다. 눈물이 핑 돌 순간도 있었다. 2-3시간을 온힘 다해 가르치고나도 당장은 피곤하거나 지침을 못느끼는 것은 그분들한테서 느끼는 한맺힘과 그 한맺힘을 풀어주고 있다는 가슴 뿌듯함에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은 이미 이 세상을 떠나신 내 어머니와 아버지도 까막눈이셨고 그 까막눈으로 인하여 한 맺히던 어머니 아버지의 설움을 정말 정말 많이도 봐왔기 때문에 지금까지 장애협 한글반 교실을 가는 일 만큼은 그만 둘 수가 없는 일이다.

국어교사 30여년 그만두고 마지막 봉사의 일자리 내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제일 잘한일이라고 생각하면서 한자한자 우리글을 가르치면서 아직도 이나라에 문맹이 존재하고있다는 아쉬움 속에서 이제 정부차원이 아니라 지자체의 차원에서 적극 나서서 하루빨리 지역내의 현황을 파악해서 장기적인 안목으로 대처해야할 일이라 생각한다.

다행히도 우리 지역내에서도 종교단체나 사회단체 주관으로 몇군데서 이뤄지고 있지만 자체 계획으로 하고있는 실정에서 어려움이 산재해있다고들 한다. 잘사는 나라 남을 돕는나라, 국민소득 몇 번째의 나라 등 자랑 스런 이름표들이 많이 있지만 문맹이 아직도 존재하는 나라라고 일컬어지면 IT강국에서의 무슨 체면이 서겠는가

그것도 그것이지만 돌아 가시기전에 내 이름 떳떳하게 읽고, 쓰고 여행지의 입간판들 자신 있게 읽으면서 사시다가 눈감으실 수 있도록 해야 하지 않겠는가

먹고살기 어렵던 시대 가족들의 허기진 배를 해결하기 급급하시다가 배움의 기회 놓쳐버리고 본인들은 까막눈으로 남아버린 우리 어머니 아버지들이시다. 이제 먹고살기 문제가 해결되었으니 이제 우리들이 앞장서서 어머니 아버지들의 까막눈을 해결하는데 온 힘을 다해야 되지 않을까

오늘도 화요일, 까막눈의 한으로 나를 기다리는 장애협복지관을 가면서 흥얼 노래를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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