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생활에서 활용할 수 있는 토론의 기술

체험학습 토론- 보고, 느끼고, 판단하는 힘을 키운다

2008~2009 무렵으로 기억된다. ‘춤을 글로 배웠어요.’라는 광고가 방영된 적이 있다. 춤을 글만 읽고 배우기는 어렵다. 글로 춤을 이해하고 눈으로 춤 동작을 직접 보고, 몸으로 따라해 보아야 제대로 춤을 배울 수 있다. 춤을 글로 배워 이상하고 괴이한 모습으로 춤을 추던 CF주인공의 모습을 보고 웃었던 기억이 새롭다.

춤뿐만이 아니다. 모든 학습은 오감을 동원했을 때 그 효과가 극대화된다. 부모들이 아이들에게 체험학습 할 기회를 많이 주고 싶어 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책상 앞에 앉아 교과서와 씨름만 하는 것보다 아이와 함께 교과서에서 나온 장소를 찾아보고, 느끼고, 경험하면 책 10번을 읽었을 때보다 훨씬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 ‘백문불여일견이라는 말도 있다.

다만 체험학습이 현장을 찾고 보는 것만으로 끝나면 그 효과가 반감되기 쉽다. 현장을 체험한 후의 느낌과 생각을 함께 이야기해야 체험학습의 효과를 극대화시킬 수 있다. 그런데 많은 부모가 아이와 함께 체험학습을 했다는 것만으로 만족한다. 사실 바쁜 시간을 쪼개 아이와 체험학습을 시도했다는 것만으로도 박수를 보낼 일이지만 이왕이면 체험학습을 한 후 토론하면 보고 느낀 많은 것들이 단순한 경험으로 끝나지 않는다. 보고 느낀 것을 말과 글로 정리하면 그 경험은 사고력을 향상시키는 소중한 원동력이 된다.

 

 

말할 수 있는 만큼 세상이 보인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있다. 고등학교 시절, 경주로 수학여행을 갔을 때 석굴암을 본 적이 있다. 해 뜨기 전에 석굴암에 도착해야 부처의 이마에 햇살이 비치는 장관을 볼 수 있다며 잠도 덜 깬 상태로 비몽사몽 산을 올랐다. 하지만 고생 끝에 마주한 석굴암은 기대 이하였다.

일단 날씨가 흐려 부처 이마 위를 비추는 햇살을 보지 못해 실망이 컸다. 선생님이 석굴암의 역사적 가치와 구조가 얼마나 과학적인지를 설명했지만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빨리 숙소에 들어가 모자란 잠을 더 자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석굴암과의 첫 만남은 그렇게 허탈하게 끝났다.

두 번째 석굴암을 만난 것은 대학교 때였다. 당시 사학과를 전공하면서 석굴암 답사 여행을 갔었는데, 다시 본 석굴암은 고등학교 때 처음 보았던 석굴암과는 느낌부터 달랐다. 사실적이면서도 환상적인 조각물들이 단숨에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옷자락 하나하나가 마치 살아 숨쉬는 듯했고, 석굴암 중앙에 있는 본존불뿐만 아니라 본존불 바로 뒤에 있는 11개의 관음보살상도 가히 예술이었다.

석굴암에 녹아 있는 과학도 보였다. 한 치의 오차만 있었더라도 석굴암의 둥근 아치 모양의 천정은 그 오랜 세월을 버티지 못했을 것이다.

일본의 석굴암 재건사업으로 망가지긴 했지만 석굴암의 습도 조절 기능은 자연과 과학을 이해하지 못했다면 결코 구현할 수 없는 기능이었다.

왜 처음에는 보지 못했던 것들을 두 번째 만남에서는 볼 수 있었을까? 답은 분명하다. 아는 만큼 보이기 때문이다. 아무런 사전 지식도없이 반 강제적으로 석굴암을 보았을 때와 미리 석굴암에 대해 알아보고 이해한 상태에서 본 석굴암은 다를 수밖에 없다.

개인적으로는 아는 만큼 보인다.’라는 말보다 말할 수 있는 만큼 세상이 보인다.’는 말을 선호한다. 둘 다 비슷한 의미이지만 인식을 전제로 한 것이어서 말할 수 있는 만큼 보인다.’는 것은 아는 만큼 보인다.’보다 한 걸음 더 나간 것으로 이해해도 무방하다. 굳이 말할 수 있는 만큼 보인다.’는 것을 강조하는 이유는 토론은 결국 말로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아는 데서(인식) 그치지 않고, 그것을 말로 하는 과정에서 인식은 더욱 구체화되어 체험학습을 하는데도, 이후 토론을 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

말할 수 있으려면 준비부터 해야 한다. 우선 가능한 한 체험학습을 언제, 어디로 떠날 것인가부터 토론으로 결정하는 것이 좋다. 일방적으로 부모가 좋다고 생각하는 장소를 선정하는 것보다 아이와의 토론을 통해 장소를 합의하면 사전준비를 신명나게 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체험학습의 효과도 크다.

체험학습은 꼭 역사적 장소를 다녀오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함께 천연염색을 해본다든지, 함께 요리를 해보거나 축구공을 만드는 것 모두 체험학습이 될 수 있다.

기본적인 체험학습의 일정이 결정되면 그 다음부터는 본격적으로 사전 준비를 시작할 차례다. 사전 준비를 얼마나 체계적으로 철저히 하느냐에 따라 체험학습의 승패가 달라진다. 요즘에는 인터넷과 SNS가 발달해 아이도 얼마든지 필요한 정보를 구할 수 있다. 이때 부모는 별도로 체험학습에 필요한 자료를 찾아본다.

각자 자료를 찾아본 다음에는 대화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 최대한 아이에게 말할 수 있는 시간을 많이 주고, 아이가 미처 준비하지 못한 내용에 한해서 부모가 조사한 내용을 보탠다. 질문을 통해 아이 스스로 부족한 부분을 깨닫고 추가로 준비하게 해주면 더 좋다. 예컨대 석굴암 체험학습을 할 때 아이가 관음상을 빼놓았다면 가운데 있는 불상 뒤에도 보살상들이 있던데, 그 보살상들은 어떤 의미일까?”와 같이 질문해 호기심을 불러일으켜 주는 정도면 충분하다. 너무 세세하게 지적하면 체험학습을 떠나기도 전에 아이가 피로해하며 의욕을 상실할 수도 있다.

마지막으로 전문가와 대화를 할 수 있으면 금상첨화다. 부모가 아이보다는 아무래도 인식 수준이 높겠지만 처음 해보는 것이라면 아이와 큰 차이가 없을 수도 있다. 비슷한 수준의 아이들끼리 공부를 하거나 토론을 하면 실력이 잘 늘지 않는다. 확실히 인식수준이 높은 전문가와 대화를 해보면 체험학습의 질이 한층 더 좋아진다.

전문가라 하면 너무 거창하게만 생각할 수도 있는데, 생각하기 나름이다. 예를 들어 석굴암을 가려고 했을 때 이미 석굴암을 가봤던 옆집부모나 친구도 전문가가 될 수 있다.

 

 

질문하고 질문으로 답한다

아이와 함께 체험학습을 떠나면 부모들은 하나라도 아이가 더 보고 느끼기를 원해 조바심을 내기 마련이다. 아이에게 많은 것을 알려주고 싶어 마치 강의를 하듯 지루하게 설명을 늘어놓는 부모들도 많다. 그럴수록 체험학습의 효과도 떨어지고, 체험학습에 대한 아이의 흥미도 떨어진다. 내가 아는 학부모 중 아이가 어렸을 때부터 함께 걷기여행을 했던 분이 있다. 대한민국을 한 바퀴 돌 계획으로 시간 날 때마다 배낭을 메고 걷기여행을 했다고 한다. 아빠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아들과 이런 종류의 여행을 꿈꾼다. 그렇지만 여러 가지 여건상 정작 실행에 옮기는 아빠들은 그리 많지 않다.

아빠와 아이가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함께 배낭여행을 하는 모습은 상상만 해도 흐뭇하다. 그런데 우연히 아이와 대화를 하다 아이가 아빠와의 대화를 썩 즐기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아빠는 너무 설명을 길게 해요. 한 번 설명했다 하면 30분에서 1시간은 기본이에요. 그래서 아빠랑 함께 여행을 할 때는 궁금한 것이 있어도 질문하지 않아요.”

아이 아빠도 알고 있었다. 아빠에게도 할 말은 있었다.

저도 섭섭해요. 어쩜 아이가 그렇게 아빠 마음을 몰라주는지. 어떻게든 더 알려주고 싶은 마음에 사전조사도 철저히 하고 공부도 열심히 하거든요. 그런데 지루하고 재미없다고만 하니 저도 답답해요.”

같은 부모로서 아빠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한다. 하지만 준비과정에서도 아이에게 말할 수 있는 기회를 많이 주어야 하듯이 여행을 하거나 체험학습을 할 때는 더더욱 말할 기회를 많이 주어야 한다. 부모가 말하는 시간이 많을수록 아이는 입을 닫고, 체험학습에 대한 호기심도 닫아버린다.

아이 스스로 호기심을 갖고 말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체험학습의 효과를 높이려면 사전에 미리 조사한 내용과 실제가 어떻게 다른지 비교 감상하는 것이 좋다. 그럴 수 있도록 부모는 질문을 던지기만 하면된다.

실제로 보니까 어때?”

어떤 점이 다른 것 같아?”

이런 질문을 하면 아이는 보고 느낀 것을 편하게 이야기한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질문을 할 수도 있다. 아이가 질문을 할 때도 기다렸다

는 듯이 설명 보따리를 풀어놓아서는 안 된다. 아이의 질문에 질문으로 답해야 아이가 더 많은 생각을 할 수 있다.

현재 석굴암은 사진 촬영을 할 수 없다. 플래시 조명이 석굴암을 훼손할 수도 있기 때문이라는 게 표면적인 이유다. 보통 체험학습을 할때 사진을 많이 찍는다. 사진 자체가 기록의 역할을 하고, 체험학습에서 보고, 느끼고, 배운 것을 오래 기억할 수 있게 해주기 때문에 권장할만한 사항이다. 그래서 석굴암 촬영 금지를 섭섭해 하는 사람들이 많다. 아이들도 마찬가지여서 부모에게 질문을 할 수 있다.

왜 사진을 못 찍게 하는 거예요?”

이때 알고 있는 지식을 총 동원해 답변해주느라 애쓸 필요가 없다.

글쎄, 왜 그럴까? 왜 못 찍게 하는 것 같아?”

이렇게 질문으로 답하는 것이 가장 좋다. 질문을 많이 해 아이가 말할 수 있는 시간을 많이 주면 줄수록 아이의 인식수준도 높아지고, 더불어 토론 능력도 향상된다.

 

 

토론 후 글쓰기로 마무리

체험학습을 하는 동안 아이에게 질문을 많이 하면 그 자체로도 훌륭한 토론이 된다. 하지만 아이의 토론 능력을 확실하게 키워주려면 체험학습 후 간단하게라도 토론을 하는 것이 좋다.

체험학습 토론도 기본적인 맥락은 독서토론과 같다. 크게 사실, 가치, 의지를 묻는 질문만 해도 된다. 좀 더 수준 높은 토론을 하려면 여기에 문제제기를 끌어내는 질문을 덧붙여도 좋다.

오늘 체험학습에서 본 것 중 가장 기억나는 게 뭘까?”(사실)

뭘 느꼈어?”(가치)

오늘 보고 느낀 걸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까?”(의지)

체험학습을 하면서 궁금한 건 없었니?”(문제제기)

, 아이가 대답을 할 때 왜냐하면예컨대로 대답하도록 한다.

예를 들어 아이가 석굴암을 보고 둥근 아치 모양의 천장이 제일 좋았어요.”라고 대답했다면 그렇구나, 왜 천장이 제일 좋았는지 왜냐하면으로 대답해줄래?”라고 유도한다.

왜냐하면 나사나 못으로 고정시키지도 않았는데 천장이 그대로 있는 게 신기해요.”

왜냐하면은 이유를 설명하는 것으로 자기 생각을 왜냐하면으로 풀어내는 연습을 많이 하면 논리적 설득력이 향상된다. ‘예컨대는 토론에서 중요한 증거를 말하는 것으로 예컨대를 자주 말하다보면 사실에 입각해 토론을 풀어내는 능력이 좋아진다.

토론을 마친 후에는 독서토론 때와 마찬가지로 글쓰기를 하는 것이 좋다. 앞에서도 이야기했지만 토론 후 글쓰기를 하지 않으면 반쪽짜리토론이 될 공산이 크다. 체험학습의 내용과 느낌, 생각을 간단히 정리할 수 있는 체험학습 노트를 마련해 꼭 글쓰기로 마무리하도록 한다.

 

 

요지는- 주장과 의견

왜냐하면- 이유와 근거

예컨대- 사례와 증거

그래서- 요약과 결론

저작권자 © 영광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