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한 방식으로 토론의 힘 키우기

피라미드 토론, 설득과 합의를 배운다 

 

토론이란 결국 자신의 생각을 상대방에게 이해, 설득시키는 과정이다. 가장 간단하면서도 효과적으로 설득과 합의를 배울 수 있게 도와주는 토론 방식으로 피라미드 토론을 꼽을 수 있다. 집에서는 물론 학교에서 선생님들이 아이들을 가르칠 때도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는 토론 방식이다.

피라미드 토론은 먼저 11로 상대방과 토론해 합의를 본 후, 다시 22로 확장시켜 4명이 함께 토론을 거쳐 합의를 보고, 또다시 44, 88과 같은 식으로 토론 인원을 배로 확장시키면서 토론과 합의를 이끌어내는 방식이다. 처음에는 11로 토론을 시작했다가 점점 토론에 참여하는 사람이 많아지는 형태여서 엄밀하게 말하면 역 피라미드 모양의 토론이라 할 수 있다.

피라미드 토론은 보통 11로 시작해서 전체 인원이 절반으로 나뉠 때까지 혹은 한 팀이 8명을 넘어서지 않는 범위 안에서 계속한다. 어떤 형태로든 각 단계에서 합의를 보지 못하면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가 없기 때문에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설득과 합의를 하는 방법을 배운다. 피라미드 토론을 활용하는 방법은 다양하지만 그 중 실생활에서 보다 쉽고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가족회의 안건을 결정하는 데 피라미드 토론이 최고

피라미드 토론은 사실 인원이 적을 때보다는 인원이 많을 때 그 효과를 더 많이 기대할 수 있는 토론방식이다. 많은 인원이 한꺼번에 토론을 하면 효율성도 떨어지고, 무엇보다 토론을 하는 동안 말 한 마디 하지 못하는 아이들이 생길 수 있다. 피라미드 토론을 하면 1+1, 2+2, 4+4, 8+8과 같은 식으로 11토론부터 시작해 점차 인원수를 늘려나 가기 때문에 한 사람이라도 소외될 염려가 없다. 그래서 집에서보다는 학교나 동아리와 같은 모임에서 활용하면 더 효과적일 수 있다.

하지만 집에서도 피라미드 토론을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은 다양하다. 내가 아는 한 가족은 피라미드 토론을 통해 가족회의 안건을 결정한다.

가족은 아빠, 엄마, 큰아들, 둘째아들, 막내딸 모두 5명인데, 세 아이 모두 자기주장이 강해 가족회의 안건을 정하는 것조차 쉽지 않단다. 가족회의는 할 달에 한 번 하는데, 최소한 일주일 전에는 안건이 정해져야 심도 깊은 가족회의를 할 수 있다. 또한 가족회의 안건은 너무 많거나 적은 것 모두 좋지 않다. 평균적으로 안건이 3~4개 정도가 가장 적당하다. 그런데 활발하고 자기주장이 강한 세 아이는 각자 3~4개씩의 안건을 꺼내놓고 양보를 잘 안 해 늘 골머리를 앓았다. 한 달에 한 아이씩 돌아가면서 안건을 내놓는 방법도 써 보았고, 그 달 사회를 맡은 사람 재량으로 안건을 결정하기도 했지만 다 만족스럽지 않았다. 회의를 해도 가족들의 불만이나 갈등은 완전히 해소되지 않았다.

안건 결정을 둘러싼 갈등은 피라미드 토론을 하면서 상당 부분 해결되었다. 그 달 사회를 볼 사람을 제외한 4사람이 11로 짝을 지어 토론을 한다. 11 짝을 짓는 방법은 가위 바위 보를 해 같은 모양을 낸 사람끼리 짝을 이루거나 서로 희망하는 사람을 선택하는 방법을 많이 사용했다.

11 토론은 보통 10분간 진행한다. 각자 3개의 안건을 내 놓고 토론을 통해 그 중 3개를 최종 선택한다. 그러니까 모두 6개의 안건에서 3개를 선택하는 셈이다. 11 토론을 하는 가족 구성원은 저마다 왜 그 안건을 가족회의에 올려야 하는지 충분한 이유와 근거를 대면서 상대방을 설득해야 한다.

어떤 형태로든 강압적으로 무력을 사용하면 그 사람이 낸 안건은 자동 탈락이다. 예컨대 엄마가 아이들보다 더 나이가 많고, 평소 아이들을 위해 많은 신경을 쓴다는 점을 빌미로 이번에는 엄마 말대로 하자.

엄마가 어련히 알아서 꼭 필요한 안건을 올렸을까와 같이 엄마라는 힘을 행사한다면 반칙이다. 큰형이 둘째에게 너 편하게 살려면 내 말 들어라.”와 같이 말하면서 은근히 압력을 넣는 것도 당연히 부정행위다.

거꾸로 나이가 적고 상대적으로 약한 사람이 이번에는 무조건 내 안건이 돼야 해.”라며 무조건 우기거나 떼를 써도 안 된다. 어디까지나 논리와 근거로 상대방을 설득해야 한다. 그러려면 왜냐하면예컨대를 많이 사용해야 한다.

이번 가족회의 안건으로 일주일에 두 번 이상 가족 모두 식사 함께하기를 제안합니다. 왜냐하면 서로 너무 바빠 한 집에 살면서도 얼굴마주치기가 힘들어요. 주말에도 아빠는 골프나 다른 약속이 많아 가족이 모두 모인 적이 거의 없어요. 최소한 일주일에 두 번은 함께 식사를 할 수 있도록 규칙을 만들었으면 좋겠어요. 예를 들어 토요일, 일요일은 무조건 식사를 함께 한다든지, 아니면 주중에 요일을 정해 한 번, 주말에 한 번, 이런 식으로요.”

각자 왜냐하면예컨대로 왜 자신이 그런 안건을 냈는지를 설명하면 다른 사람들을 설득하기가 수월하다. 우선 11토론으로 6개의 안건 중 중요하다고 합의한 순서로 3개를 골랐다면 22토론을 시작한다. 2명이 한 팀이 되어 나머지 한 팀과 11토론을 할 때와 똑같은 방법으로 각 팀의 안건을 설득하고 최종적으로 가족회의에 올릴 안건 3개를 합의한다.

피라미드 토론 방식으로 안건을 결정한 뒤로부터 더 이상 안건을 둘러싼 불만은 불거지지 않았다. 그 가족은 무엇보다 피라미드 토론을 하면서 우선순위를 결정하고, 자기의 주장을 논리적으로 설득력 있게 전달하는 능력이 향상된 것이 큰 보람이라고 한다. 또한 일단 처음에는 의견이 달랐어도 토론을 통해 합의한 내용을 인정하고 그 다음 단계 토론에 갔을 때 한 마음이 되어 팀의 의견을 말하는 연습을 한 것도 가족에게 큰 도움이 되었다고 한다.

이처럼 피라미드 토론은 인원이 최소 4명만 돼도 충분히 할 수 있다.

설득과 합의를 배울 수 있는 기회가 두 단계로 끝난다는 점이 아쉽지만 다른 관점에서 보면 인원이 적을 때의 장점도 많다. 피라미드 토론은 단계가 올라갈수록 모두가 골고루 발언하기는 어렵다. 그래서 최종 단계에 가까워질수록 그 팀의 대표자가 팀원을 대신해 팀의 의견을 이야기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이에 비해 인원이 적을 때는 구성원 개개인이 발언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아 좀 더 설득과 합의 과정을 현실감 있게 경험할 수 있다. 따라서 집에서도 가족회의를 할 때나 다른 합의가 필요할 때 피라미드 토론 방식을 활용하면 좋다.

 

 

피라미드 토론, 수업 후 마무리하는 데 효과 만점

나는 피라미드 토론 방식을 수업시간에 많이 활용했다. 50분 수업이라면 35~40분가량 수업하고 나머지 10~15분을 피라미드 토론을 하는데 쓰곤 했다. 문답식 수업도 즐겨 했지만 피라미드 토론을 했을 때 학생들의 참여도가 더 좋았다. 아무래도 선생님께 질문을 하거나 질문에 답하는 것은 부담스러운 반면, 학생들끼리 피라미드 토론을 하는 것은 부담도 덜하고 재미도 있었기 때문인 듯싶다.

혹 수업시간 중 피라미드 토론을 하면 토론 기술은 늘지 몰라도 학습효과는 떨어지는 것이 아니냐고 우려하는 분들이 있을 수 있다. 수업시간을 쪼개 하는 피라미드 토론은 수업내용과 동 떨어진 것이 아니다.

수업에 집중하지 않으면 피라미드 토론 자체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오히려 학생들이 수업에 집중하고, 그만큼 수업 분위기도 좋아졌다.

수업에 피라미드 토론을 적용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우선 강의가 끝나면 학생들에게 각자 오늘 배운 내용 중 가장 중요한 내용을 3개씩 적도록 한다. 그리고 3개 내용 각각을 왜냐하면예컨대로 그 내용을 선정한 이유와 근거를 설명하도록 한다.

각자 중요한 내용을 3개씩 적는 것부터 훌륭한 토론 연습이다. 수업시간이 아무리 짧아도 수업내용이 3가지에 그칠 리가 없다. 대부분 그보다는 훨씬 많은 내용을 선생님이 강의할 것이다. 그 많은 내용 중 가장 중요한 것 3가지를 적으려면 중요한 내용과 덜 중요한 내용을 구분할 줄 알아야 한다. 전체 수업내용을 귀 기울여 듣지 않으면 중요도를 판단할 수 없다. 결과적으로 수업에 집중할 수밖에 없고, 수업내용을 듣고 중요한 것 3가지를 골라내면서 판단력이 향상된다.

이후의 과정은 기본적인 피라미드 토론 방식과 동일하다. 먼저 두 명씩 짝을 지어 11로 토론을 한다. 수업내용 중 중요한 것 3가지를 합의하는 토론이다 보니 겹치는 내용도 꽤 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수업시간에 선생님이 가르치는 내용은 주관적 가치보다는 객관적 지식이다. 가치야 개개인에 따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들이 다를 수 있지만 지식은 꼭 알아야 할 것과 상대적으로 덜 중요한 지식에 대한 판단이 엇비슷하기 때문이다.

겹치는 내용이 많다고 걱정할 것은 없다. 한두 개는 겹칠 수 있어도 세 개 모두 겹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설령 세 개 모두 겹친다고 해도 각자 그것을 중요한 내용으로 선택한 이유와 근거는 다를 수 있으므로 왜냐하면예컨대로 설명하면 된다.

하지만 피라미드 토론의 백미는 서로 다른 의견을 설득을 통해 합의를 도출해내는 데 있다. 다행히 대부분은 100% 겹치는 일이 거의 없으므로 설득과 합의를 연습할 기회는 충분하다.

앞에서도 이야기했지만 피라미드 토론은 위로 올라갈수록 구성원 전체가 다 발언을 하기는 어려운 구조다. 나의 경우 구성원 전체가 이야기하기보다는 팀의 대표가 발언하는 방식을 적용했다. 일종의 패널 토론인 셈이다.

설득과 합의의 과정이 충분한 토론을 통해 합리적으로 이루어졌다면 팀의 대표들끼리 다음 단계 토론을 한다고 해도 불만이 없다. 또한 패널들도 각 팀을 대표해 발언하는 것이니 만큼 개인적인 생각보다는 팀에서 합의한 내용을 설득력 있게 이야기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피라미드 토론은 11 토론에서 시작해 전체 학생이 둘로 나뉠 때까지 계속 된다. 그렇다 해도 한 팀이 8명을 넘지 않는 범위 안에서 하는게 좋다. 그래야 팀원들도 참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최종 단계에 서는 패널 두 명이 각 팀에서 합의된 3개의 내용으로 서로를 설득하고 최종 3개를 선정한다.

좀 더 시간을 단축하려면 모둠으로 나눠 합의한 결과를 정리해 모둠별로 발표할 수도 있다. 예컨대 전체 학생이 32명이라면 8명을 한 모둠으로 4개 모둠으로 나눈다. 각 모둠별로 피라미드 토론을 통해 합의를 본 후 각 모둠 대표 4명이 각자의 합의 내용을 발표하는 방법이다. 이방법은 보다 짧은 시간에 협의를 도출해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토론 구성원 각각이 좀 더 발언할 기회를 가질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수업시간이 허락하는 한도 내에서 두 가지 방법을 탄력적으로 활용하면 아이들의 수업 참여도도 높이면서 재미있는 수업을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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