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봉주/ 전남다문화가족지원센터연합회장

약속을 지킨 비정한 아버지

신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사랑하는 딸을 죽일 수밖에 없었던 비정한 아버지가 있었다.

성경 사사기 11장에는 길르앗의 큰 용사 입다와 그의 무남독녀 외동딸에 얽힌 안타까운 이야기가 기록되어 전한다.

18년 동안 암몬국()의 지배를 받고 있던 이스라엘이 대규모 독립전쟁을 벌이게 되는데 장로들로부터 나라의 수장(총참모장)으로 지명을 받은 입다가 출사표를 던지며 승리를 위해 신에게 서언을 하면서부터 이 슬픈 이야기는 시작된다.

암몬자손을 저의 손에 붙이시면 내가 승리를 하고 돌아올 때 누구든지 내 집 문에서 제일먼저 나와 나를 영접하는 사람을 여호와께 돌릴 것이니 그를 번제로 드리겠나이다.”

그러나 운명의 장난이었을까

전쟁을 승리로 이끈 후 집으로 돌아오는 그를 제일먼저 뛰어나가 반긴 사람은 다름 아닌 그의 무남독녀 외동딸이었다.

입다는 옷을 찢으며 괴로워했지만 하느님과의 중한 약속을 결코 저버릴 수는 없었다.

그는 신에게 두 달의 말미를 간청한 후, 결국 딸을 죽여 하느님께 번제로 드린다.

번제란 제물의 가죽을 벗기고 각(토막)을 뜬 후 피를 제단에 뿌리고 제단 위에서 불로 태우는 유대인들의 전통 제사법이다.

번제의 절차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입다가 어떻게든 핑계거리를 만들어 약속을 저버리고 싶은 마음은 없었을까?

그러나 그는 신에 대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외동딸의 가죽을 벗기고 불에 태워야만 했다.

세간에서는 아무리 신과의 약속이라지만 인륜을 저버린 비정한 아버지의 잔인한 행동이라는 비판도 많았다.

하지만 성경은 무슨 일이 있어도 약속은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는 것을 교훈으로 일러 주고 있는 것이다.

레굴루스의 죽음의 약속

마르쿠스 아틸리우스 레굴루스는 기원전(BC) 3세기 로마의 집정관이자 장군이었다.

그는 BC 267년 로마의 집정관으로서 전쟁에 참전하였으며 브룬디시움을 공략하여 큰 공을 세우기도 했다.

1차 포에니전쟁(로마와 한니발 장군이 이끄는 카르타고의 전쟁) 중인 BC 256년 다시 집정관이 된 그는 에크노무스 해전에서 카르타고를 크게 쳐부수었으나, 그 기세를 몰아 아프리카 대륙 깊숙이 진군했다가 오히려 패하여 포로가 되고 말았다.

레굴루스를 사로잡은 카르타고군은 로마의 위세에 겁을 먹었던 터라 포로교환과 평화교섭을 위해 그에게 로마의 집정관들을 설득해 주도록 로마로 보냈다.

하지만 로마로 돌아 온 레굴루스는 원로원에 화평을 거부하도록 진언을 하고는 다시 카르타고로 돌아간다.

그가 돌아가면 죽임을 당할 것이 분명했기에 많은 원로들이 로마에 남을 것을 설득했다.

하지만 다시 돌아오겠다고 약속을 했던 그는 약속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며 카르타고로 돌아가 죽임을 당하게 된다.

죽을 것을 알면서도 적과 했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적진으로 돌아갔던 레굴루스를 미련하고 바보 같은 사람이라고 폄하할 사람도 있을까?

약속을 천금보다도 더 소중히 생각했기에 그는 로마군의 모범이 되었을 뿐 만 아니라 2000년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그의 행적이 많은 사람들에게 감명으로 남아있는 것이다.

선거공약은 유권자와의 약속

6.4 지방선거와 7.30 국회의원 재보궐선거에서도 수많은 정치공약들이 쏟아져 나왔다.

지난 201219대 총선당시 어느 할 일 없는(?) 사람이 선거에 당선된 국회의원들의 선거공약을 계산해 보았더니 상호 겹치는 부분을 빼고서라도 그 공약이 지켜지기 위해서는 우리나라 10년 치의 예산을 전부 투입해도 부족하더라는 우스갯소리를 했다.

현실이 반영되지 않은 빌공()자 공약이 난무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뒷일이야 어찌되었던 당선을 위해 일단 유권자들의 입맛에 맞는 공약을 해놓고 보자는 얄팍한 정치 꼼수가 아니라고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

공약은 유권자와의 약속이다.

자신이 없는 공약이라면 애초 세우지를 말았어야 했을 일이며 일단 대중에게 약속으로 내걸었으면 생명만큼 소중하게 지켜야 할 일이다.

장부(丈夫)의 한마디는 천금보다도 더 무겁다는 말이 있다.

그렇기에 역사가들은 약속을 지키기 위해 자식을 죽이고 자신의 목숨까지도 내어 놓을 수 있었던 입다와 레굴루스를 영웅으로 묘사했다.

하지만 말바꾸기나 방탄국회를 스스럼 없이 벌이고 있는 우리나라 정치인들을 두고 후세 사가(史家)들은 어떻게 평가를 하게 될지 심사숙고해 봐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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