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일근/ 언론인

고향 시인들의 시어는 힐링을, 정치인들의 언어는 분노와 갈등을 부추긴다. 돈 버는 축제라야 세계적 축제로 발전한다

나라 안에 즐거운 일이 이렇게 많은가. 지역 마다 계절마다 축제다. 지방자치 이전과 이후가 구분 되는 대표적 시대상이다. 축제의 가장 큰 목적은 지역 경제 살리기다. 경쟁적으로 축제를 키운다. 실제 지역경제에 얼마나 도움이 되는가는 의문이다. 엊그제 끝난 영광 상사화 축제를 보자. 불과 사흘간의 축제 기간에 무려 50만 명의 관광객이 찾았단다. 믿는다. 나 자신이 직접 그 인파 속에 있었으니까.

해발 500m도 못되는 불갑산이 아침부터 저녁 까지 등산객으로 줄을 이었다. 산 밑 절 아래 축제 마당도 인산인해다. 이 정도 인파를 맞을 수 있는 축제를 치러내는 영광군 당국이 대견하다. 연극·공연·사랑의 정원 만들기·KBS 전국노래자랑 녹화·즉석 커리커쳐·서예전·수석전·분재전 등이 펼쳐졌다. 예전엔 먹거리 판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이 정도면 축제다운 축제다. 특산물 판매나 먹거리 장터를 최대한 줄인 흔적이 역력하다.

하루 종일 나름 축제를 즐겼다. 닭튀김과 오리 훈제를 대접(?) 받았다. 공짜로 맛있는 음식을 얻어먹으니 오지고 즐겁다. 마냥 흥청거리는 분위기 속에서 시()를 만났다. 정년퇴직한 정 형택 시인과 그 제자 시인들의 작품이 많은 이들의 발길을 붙잡는 틈에서다. 전시된 30여 작품을 꼼꼼히 만났다. 나이 60을 넘나드는 향토 시인들이 쏟아 낸 시어(詩語). 감동이다. 어디에 내놔도 감동을 살만 한 작품들이다.

사랑을 위해 천년이라도 기다리겠다는 정 시인의 시를 접하면서 시작된 감동과 놀라움은 아직도 가시지 않는다. 공중전화가 나에게 입 맞추려 줄지어 섰던 사람들은 다 어디로 갔느냐 묻는다. 묘에 묻힌 이들의 대화도 그려냈다. 시인들은 시공을 초월한 초능력자들이다. 문학성 뿐만 아니라 진솔하고 알찬 인생이 묻어났다. 상상력과 표현력은 내로라는 시인들과 견줄만 하다. 관객석(?)에서 자작시 낭송을 하는 이들에 홀려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천년의 사랑을 말한다는 화려한 상사화가 지천으로 피어 있는 축제 현장에서 아름다운 시어들에 감동하면서 문득 생뚱맞은 생각이 든다. 국회의원 세비를 반납하라는 대통령. 독재자의 통치라며 맞받아치는 국회의원. 그들의 입에서 나오는 언어와 시인들의 입에서 나오는 언어들을 비교해본다. 정치인들의 말은 국민을 분노와 갈등, 실망으로 몰아넣을 뿐이다. 이름 없는 시인들의 언어는 시쳇말로 힐링효과가 크다.

늦깎이 시인들이 용기를 내어 대중들과 만나는 행사의 사회를 맡은 김 성운 시인. 마침 초등학교 동창생이다. 음악과 서예, 등산과 봉사활동으로 바쁜 친구다. 사업에도 성공했다. 코앞에 70세다. 끝없이 도전하며 알차게 살아가는 모습이 존경스럽다. 함께 하는 다른 이들도 크게 다르지 않으리라. 서로 춥고 배고픈 서러움 달래주며 살던 옛적 인심이 그리웠다. 황금만능과 이기주의에 찌든 고향땅이 야속했다. 이제 아니다. 그것은 겉모습의 일부였다. 한 치만 들어가면 저런 아름다운 사람들이 펼치는 따숩고 정겨운 터전이다.

난생 처음 만난 상사화축제에서 많은 것을 얻었다. 그러면서도 기자로서 몸에 밴 습관이 도졌다. 개선해야 할 점들이 상당히 많이 보인다. 인파와 자동차의 원활한 흐름이 가장 아쉽다. 길을 넓히고 주차장을 늘이는 것은 한계가 있다. 흐름이 막히지 않는 시스템을 개발해야 한다. 컴퓨터 시뮬레이션으로 가능해 보인다. 가장 큰 아쉬움은 지역경제에 도움이 될 것 같지 않다는 점이다. 많은 인파가 거쳐 갈 뿐이다. 돈을 쓰고 싶어도 마땅히 쓸 데가 없다.

돈 버는 축제라야 발전한다. 이제 방문객이 적을 것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전국적 대표 축제로 자리 잡았다. 더 알찬 축제로 국민의 사랑을 받으려면 돈 버는 축제로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대한민국 최고 축제, 나아가 세계적 축제가 된다. 그날은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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