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봉주/ 전남다문화가족지원센터연합회장

-우리에겐 이보다 더 많은 숫자가 있다.- 

 

전선(戰船) 12

今臣戰船尙有拾貳(금신전선상유12)

임진왜란 당시, 명량해전을 목전에 둔 이순신이 선조에게 보낸 저 유명한 장계다.

모함을 받은 이순신이 백의종군하던 무렵, 원균은 무모한 부산포 공격을 감행하다 일본 수군에게 대패하면서 패잔선 12척만 남긴 체 적에게 목이 잘리고 만다.

다시 삼도 수군통제사로 복귀한 이순신에게 조선의 수군은 이제 없는 것과 같다. 패잔병들을 추스려서 육군으로 편입하여 전투를 계속하라는 선조의 명령이 내려진다.

이에 대해 이순신은지금 신에겐 아직도 12척의 전선이 있습니다. 죽음을 다하여 나가 싸우면 사세를 돌이킬 수 있는 여지가 있습니다. (중략) 비록 아군의 전선은 몇 안되지만 변변치 못한 신이 죽지 않는 한 왜군은 우리나라를 감히 업신여기지 못할 것입니다라고 명을 거두어 달라는 장계를 올린다.

결국 이순신은 페잔선 12척을 거느리고 수군을 재편하여 명랑해전에서 330여척의 일본 수군을 상대로 중과부적인 혈전을 치르면서 해전사에 길이 남을 대승을 거두게 된다.

그리고 이순신은 12척의 신화와 함께 풍전등화의 조국을 구했다.

13

쌀은 13알이었어. 13알이었지. 그때 한 끼라도 제대로 먹었다면 나는 난을 일으키지도 않았을 거야. 가난한 농삿군 주중팔은 있어도 대명황제 주원장은 없었겠지.”

명나라를 세운 주원장이 배가 고팠던 어린시절을 회고하며 했던 말이다.

원나라 말기, 가뭄과 기근으로 백성들은 굶어 죽어가고 있었으나 부패한 임금과 조정의 관리들은 밤낮으로 주색에 빠져 잔치비용을 마련하기 위한 세금을 올리는 데에만 열을 올리고 있었다.

사람들은 배가 고파 고향을 등지고 처처에 굶어 죽은 시체들이 즐비한데도 세금납부를 거역하는 사람들은 죽이라는 명령까지 내린다.

마지막 남은 볍씨자루마저 빼앗긴 주원장의 어머니는 굶어 죽고 아버지는 어머니 곁에서 목을 매달고 만다.

배고픔에 시달리던 어린 주원장이 어쩔 수 없이 절간에 노예로 팔려 가게 되는데 형이 마지막 남은 음식이라며 들려주었던 죽 그릇에 들었던 쌀알이 딱 13세알이었던 것이다.

이 후 폭정과 배고픔을 견디지 못한 백성들이 전국에서 들고 일어났으며 주원장도 한 무리의 의병에 가담하게 된다.

그리고 갖은 고난과 역경을 이겨내고 전국을 평정하면서 결국 대명제국을 세우게 된다.

평생 13알의 쌀알을 맘속에 품고 있었던 주원장은 배고픈 백성을 위해 많은 선정을 베풀었다고 전해진다.

발주나 맹약의 19

내가 이 모든 고난을 극복하고 대업을 이룰 수 있게 하소서.

나와 함께 고난의 대업에 참가한 모든 병사를 기억하소서.

내가 이 후에 나의 맹세를 저버린다면 이 흙탕물처럼 나를 죽이소서.

징기스칸이 의형제인 자무카와의 전쟁에서 처참하게 패배한 후 마지막 남은 19명의 부하와 함께 발주나 호수에서 흙탕물을 들어 올려 서약을 하고 같이 나누어 마시며 했던 맹약이다.

부족장이던 아버지가 친구의 배신으로 독살을 당한 후 설상가상으로 인근 부족인 옹칸과 의형제를 맺은 자무카까지 배신을 하면서 부족전쟁에서 참패를 한 테무친이 19명의 부하와 함께 쫓기며 마지막으로 도착한 곳이 발주나 호수였다.

함께 했던 19명은 각기 살길을 찾아 떠나라는 테무친의 명령에도 불구하고 같이 죽겠다며 끝까지 쫓아 온 부하들이었다.

그들은 발주나라는 호수에 도착하여 호수의 진흙탕 물을 두 손에 받쳐 들고 충성을 맹세하며 그 물을 마신다.

19명 중에는 테무친의 친족은 친동생 카사르와 벨구데이 단 두 명 뿐이었으며 나머지는 출신종족과 계급, 종교가 모두 달랐다고 한다.

19명이 행한 이 날의 맹약은 훗날 아시아에서 유럽에 이르는 역사상 가장 큰 제국을 건설하는 몽골제국의 모태가 되었으며 스스로 칸이 된 테무친은 이 맹약에서처럼 인종과 종교를 구별하지 않는 정치를 펴게 된다.

 

 

우리를 기다리는 위대한 숫자

위대한 숫자 1213, 19는 우연히 만들어진 숫자가 아니다.

갖은 고난과 역경 속에서도 좌절하지 않고 다시 일어섰던 불굴의 패기와 강한 의지가 가 있었기에 그들은 위대한 역사를 장식할 수 있었으며 후세 사람들에 의해 영웅으로 추앙을 받고 있는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우리에게는 위의 세 가지 숫자보다도 더 많은 숫자가 우리 앞에 놓여 있다.

1부터 100, 그리고 억에서 조까지 너무 많은 숫자가 앞으로 영웅이 될 사람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자살율이 가장 높다고 한다.

나름대로의 변명이야 있을 수 있겠지만 삶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자살을 택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것은 참으로 바보스럽고 안타까운 일이다.

급격한 산업화를 거치면서 그에 따른 부작용일 수도 있겠으나 우리 앞에는 숫자 12, 13, 19뿐 아니라 더 많은 숫자의 가족과 친지, 그리고 친구가 있다는 것은 큰 행복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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