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형택/ 영광문화원장, 시인

바퀴벌레!

내앞에서 식사를 같이한 후배의 아내가 소스라치게 외치는 소리에 자세를 바꿔보니 벌써 어디론가로 사라져버린 뒤였다. 후배는 주인 아주머니를 불렀고 아주머니는 무슨 영문인지도 모르고 우리가 있는 쪽으로 왔다. 바퀴벌레가 있었다고 했지만 주인 아주머니는 그럴 리가 없다는 듯 대수롭지 않게 들어 넘기고 있었다. 그럴수록 후배는 열을 올렸고 그 식당이 단골인 나는 사이에서 난처하기 짝이 없었다. 후배 말도 너무 거칠었으나 아주머니 또한 대하는 말씨가 썩 부드러운 편은 아니었다.

바다가 보이는 경관 좋은 언덕에 운치가 넘치는 깨끗한 식당이여서 나 또한 자주 드나드는 식당이다.

더 이상 길어져서는 안되겠기에 얼른 일어서서 계산대 쪽으로 아주머니를 밀고 가버렸다. 얼마냐고 묻자 아주머니께서는 나는 저분께서 돈을 내는 줄 알았더니 선생님께서 내십니까? 하면서 돈 내지 않으려고 이런 상황을 연출하는 경우도 가끔 있다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눈으로 바퀴벌레를 확인해보려고 했다면서 그동안의 연출된 이야기들을 계속 들려주고 계셨다

그만 끊고 나오려고 얼른 화제를 돌렸다

바퀴하나도 달지 않고 잘도 달려가는 바퀴벌레-아까 도망간 놈은 바퀴가 달렸습디다.“ 했더니 우리 일행도, 아주머니도 주방식구들도 모두가 박장대소 였다. 그래서 순간이나마 나올때는 웃고 나오면서 헤어질 수 있었다.

집에 오자마자 전화가 걸려왔다 그 식당 아주머니였다. 상황을 그렇게 잘 마무리 해주셔서 고맙다는 말씀이셨다. 그러면서 이런 말씀까지 토를 붙였다. 식당에서는 아까와 같은 상황에서 얼른 대처하지 못하면 입소문이 날개 돋힌 듯 퍼져 우리집은 음식에서 바퀴벌레가 나왔다고 알려져 장사를 그만두거나 문을 닫아야 된다는 말씀이셨다. 손님께서 조용히 처리하고 나가면서 살짝 귀띔을 해주시고 나가면 식당을 하나 살려주는 일이라고 하셨다. 그래서 선생님께서 오늘 우리 식당을 살려주신 은인이 되셨다고 하셨다. 조금만 이해하고 용서 아닌 용서를 베푼다면 얼마나 좋겠냐는 말씀, 대체 그럴만 하였다. 옆사람들까지 알게 해서 음식 먹는 일이 중단 되거나 이러쿵 저러쿵 상황이 커진다면 얼마나 미안하겠는가 이럴 때는 역지사지(易地思之)가 필요하지 않을까

내가 저지른 일이나 실수 때문에 너무 힘들어 하지 마세요

완벽하게 사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실수를 통해 삶이라는 학교가 우리에게 지금 가르쳐 주는 것 입니다. 감사하게 배우면 그만큼 더 성장합니다. 혜민 스님의 말씀에서 인용했던 말씀이지만 내가 식당을 나오면서 들려줬던 말입니다. 그렇게도 마음속에서 감동을 받았나 봅니다. 그날 이후에도 여러 번 전화가 왔었습니다. 그런가 하면 내 지인이 그 집에서 밥을 먹으러 갔다가 나 때문에 큰 힘을 얻었다 하더라고, 몇 번이고 입술에 침을 발라가며 기분 좋은 칭찬만 하더라는 말을 전해 들었을 땐 나 또한 기분이 좋았습니다.

우리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진중함이나 무조건 열심히 하는 것이 아니고 즐기는 것이랍니다. 유머가 있을 때 삶이 풍성해지고 여유가 생겨난답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너무 성실과 노력만을 요구해왔고 얼굴은 항상 굳어 있어 마음 또한 항상 급하게만 느껴진답니다.

「……아까 도망간 놈은 바퀴가 달렸습디다라는 한마디가 다른 손님한테서 받았던 충격과 기분 나쁨이 확 가셨던 그날 그 상황에서 그 유머가 아니었더라면 어찌 되었을까 하면서 주인아주머니를 떠올려 보았습니다.

바퀴벌레의 경험은 웬만한 사람들은 한번쯤 겪어 봤을 듯 합니다. 꼭 바퀴벌레가 아니어도 비슷한 경험이 있을 것 같아 한번 써보았습니다.

..…… 화를 내지 맙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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