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위원/ 여민동락 공동체 대표살림꾼

국가를 믿었다. 심지어 부패 종합선물세트인 장관과 총리 후보 인사청문회를 보면서도, 국가를 믿었다. 세상이 타락하다보니 어쩌다 휩쓸려 타락했겠지, 먼 미래를 못보고 다짜고짜 탐욕만 부리다 그랬겠지, 애써 위안했다. 그리고 제 아무리 썩었다 해도, 설마 이 땅의 모든 고관대작들이 죄다 저렇기야 하겠냐며, 국가를 믿었다. 알고 보면 얼마나 많이 배우고 얼마나 똑똑한 사람들인가.

그 잘 나고 뛰어난 이들이 책임맡은 국가다. 그러나 아니었다. 차마 눈 뜨고는 볼 수 없었던 세월호 참사를 겪고, 이제 국가를 결코 못 믿는다. 단 한 명도 살려내지 못한 국가, 그 생지옥의 광경을 실시간으로 목격한 국민이라면 더 이상 국가를 믿을 수 없다. 그렇다고, 당장 국가를 포기하진 못했다. 별 다른 방법이 없는 평민들은 어쩔 수 없이 그대로 이 땅의 국민으로 살아야 하니, 어쩔 수 없이 이 땅의 국가에게 일말의 기대를 강요당해야만 했다. 그런데 이번엔 그마저도 보란 듯이 짓밟았다.

바로 월성 핵발전소 1호기 수명연장 강행이다. 4년 전 후쿠시마 핵사고, 그 참혹한 사태를 봤으면서도 국가의 정책과 선택은 하나도 변한 게 없다. 도무지 막무가내다. 세월호도 단순 교통사고라더니, 후쿠시마 핵폭발도 기술대국 일본의 관리무능 탓이란 말인가. 국가의 그 불감증이 무섭다. 월성 1호기 수명 연장은 후쿠시마 핵사고 이후, 아마도 세계 최초의 수명연장 원전으로 기록될 것이라 한다. 이래도 국가를 믿고 안전과 생명을 맡겨야 한다는 말인가. 이래도 무슨 묘수가 있어서 그러겠지 하고 무작정 국가를 믿고 따르라는 말인가.

국가는 지금도 당장 핵발전소가 없으면 전기가 부족하다고 둘러댄다. 전력 다소비 국가인 대한민국에선 핵발전소 외에는 대안이 없는 것처럼 호도한다. 그래서 문명국가라 불리는 나라들이 저마다 폐기를 준비하고 있는 마당에, 가동 중인 23기도 모자라 건설 5, 계획 6기로 핵발전소 진흥정책을 고집하고 있다.

적어도 후쿠시마 이후 일본의 파국을 봤다면, 단계적 폐쇄를 통해 국가적 재난을 막을 대비를 해야 하는 게 아닌가. 오히려 증가하는 전력 수요, 그 중에서도 산업계 전력을 근본적으로 줄이는 방법을 고민하는 게 순서다. 그리고 이미 전 세계적으로 핵발전량을 앞서고 있는 재생에너지로의 전환, 즉 대안적인 탈핵을 서둘러야 하는 게 맞다. 아직도 재생에너지 기술은 비싸고, 핵발전 비용이 싸다고 우길 것인가.

국민을 속이지 말라. 핵발전은 결코 값싸게 얻는 경제성 있는 에너지 산업이 아니다. 핵발전이 사양산업이 되고 있는 전 세계적 흐름을 보라. 녹색당 발표에 의하면, 대한민국 신재생에너지 11개 분야 연구개발비를 모두 합쳐도 핵발전 연구개발비의 10%에도 못 미친다 한다. 개발할 수 없어서가 아니라 개발하지 않고 있다는 얘기다. 그래서다. 비용문제니 안전문제니 다 접고 생각해보자.

백 보 양보해서, 기왕에 건설한 원전이야 어쩔 수 없다 치자. 지금처럼 온갖 은폐와 부패로 공포를 조장하지 않고, 위험 관리라도 제대로 해서 수명까지는 이용한다 치자 말이다. 그러나 적어도 수명을 연장해가면서까지 핵발전소를 가동하겠다는 발상이 과연 상식적인가. 이럴진대 신규건설은 말 해 뭣하겠는가. 잘 산다는 나라 OECD 34개국 중에서 16개국은 핵발전소가 아예 없다. 5개국은 탈핵을 선언하고 폐기 절차를 밟고 있다. 이미 대한민국은 세계 5위의 핵발전소 국가다. 핵발전소 밀집도와 핵발전소 반경 30km 내 인구수는 세계 1위 총 420만 명에 달한다. 이런 상황인데도, 국가는 2035년까지 현재의 두 배로 핵발전소를 확대 하겠다 한다. 이유를 알 수가 없다.

이대로라면 끝장이다. 체르노빌, 후쿠시마만큼 파괴적인 사고가 결코 남의 나라 일이 아니다. 이미 대한민국 핵발전소 사고는 공개된 것만 해도 총 661건이다. 심지어 핵심 부품 시험성적서 허위 날조도 모자라 직원들의 개인적 조직적 비리로도 이미 신뢰를 잃은 핵발전소다. 하지만 현실은 막무가내 핵발전소 진흥책 밖에 없다.

독일처럼 국가 에너지 정책이라는 큰 틀의 변혁이 가능하다면 모르지만, 국가가 하는 품새로 봐서는 먼 나라 일일 듯하다. 그래서다. 우선 국회를 설득해서 수명연장 대신 폐쇄를 명령하는 법을 만들도록 해야 한다. 노후 핵발전소 폐쇄부터 시작하자는 뜻이다. 10년 내 고리 1호기부터 한빛 1호기까지 원전 6기가 줄줄이 수명 만기를 앞두고 있다질 않는가. 그래야 신규 건설도 중단시킬 수 있고, 재생가능에너지로의 전환도 가능할 수 있다. 핵발전소를 수출까지 해서 돈을 벌겠다고 하는 대한민국인지라 이런 일이 가당찮다고 말할지는 모르나, 30년 간 핵발전소를 막아내고 있는 삼척 주민들을 보면, 불가능한 일도 아니다.

지역에서 당장 시급한 문제는 한빛원전 1호기다. 이제는 더 이상 지역자원시설세 몇 푼에 길들여질 일이 결코 아니다. 지금부터 10년이다. 주민들이 깨어 연대해야 한다. 대안은 만들지 않고 당장 돈에만 눈먼 국가와 고관대작들에게 당하고 살 일이 아니다.

82, 처음 원전 부지로 선정된 이후 끈질긴 저항 끝에 98년 정부의 포기 선언을 끌어냈고, 세계 최초로 원전 백지화 기념비까지 세웠다는 삼척 시민들을 스승으로 삼자. 2005년 핵폐기장도 막아내고, 다시 2012년 한국에서 최초로 주민투표를 통해 원전 반대를 정부에 통지하며 30년 째 싸우고 있는 삼척을 배우자. 후쿠시마와 세월호를 겪은 우리, 안전마을과 생명공동체를 만드는 일이 이 시대 최선의 저항이고 대안이다.

여민동락공동체에 살림을 차리려고 문의하는 도시인들이, 후쿠시마 핵사고 이후 빠짐없이 하는 질문이 있다. “영광원전과 얼마나 떨어져 있어요?” 이렇듯 핵발전소에 대한 공포는 이미 지역적이고 세계적이다. 영광은 원전 수명연장, 그 임박한 미래에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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