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위원/ 여민동락 공동체 대표 살림꾼

2014416, 1년 전이다. 생지옥의 참사, 그 희대의 영상을 실시간으로 보면서 많은 이들이 이를 악물었다. 결코 잊지 않겠다고. 이런 나라에서 이대로는 살 수 없다고. 국가란 무엇이냐고. 이번만은 절대로 어물쩍 넘어갈 수 없다고. 심지어 사고 당시 행방이 묘연했던 대통령도 그랬다.

전 국민이 지켜보는 TV 앞에서 눈물을 보이며 약속했다. 어떤 일이 있어도 진실을 규명하겠노라고. 주무부처인 해수부 장관도 그랬다. 수염을 기르고 팽목항을 지키며 끝까지 함께 하겠노라고. 온갖 정치인도 그랬다. 리본달고 분향하고 분노하고 연대하고 규명하고 해결하겠다고.

학계도 그랬다. 대한민국은 세월호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고, 우리사회에 대한 근본적 성찰이 필요하다고 말이다. 세월호 참사 앞에선 그야말로 보수와 진보가 따로 없었다. 아이와 노인이 구별되지 않았다. 만인의 추앙을 받는 프란치스코 교황까지 노란리본을 차고 등장했다. 그야말로 온 국민이 아파했고, 온 국민이 분노했다. 그리고 온 국민이 열망했다. 실종자라도 전부 찾아내기를.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그 진실이라도 밝혀지기를.

2015416, 1년 후 오늘이다. 결국, 아무도 책임지지 않았다. 진실은 온데간데없다. 유가족들과 이에 동조하는 국민들의 농성만이 있을 뿐이다. 피해자들만이 단식과 도보행진으로 전국에 호소한다. 그러나 청와대 앞에선 버림받고, 광화문에서 천막치고 한뎃잠을 잔다.

어처구니가 없다. 왜 피해자인 유가족들이 싸워야 한다는 말인가. 위로받고 보호받아야 할 유가족들이 어찌 밥 굶고 행진하고 천막치고 호소해야 한다는 말인가 말이다. 국가는 어디에 있는가. 대통령은 내내 침묵하다가 남일 얘기하듯 툭툭 한마디씩 던질 뿐이다. 고관대작들은 호들갑만 떨다가 가장 먼저 뒤돌아 제자리로 복귀했다. 정치인들은 참사 1주기가 되자, 잠시 붙였다 떼어냈던 노란리본을 달고 버젓이 TV 화면에 등장했다. 보수와 진보는 갈렸고, 유가족과 국민은 나뉘었다. 심지어 성역없는 책임을 묻기 위해 만들어진 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원회는 조직과 예산을 대폭 축소시킨 시행령을 입법 예고하고 말았다.

심지어 '참말로 지긋지긋하다. 할 만큼 하지 않았는가. 이제 경제도 생각해야지?’ 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 도대체 국가란 무엇이냐고 분노하고 성찰하다가, 이제는 먹고는 살아야지, 아픈 일이지만 사고는 사고 아닌가. 국가가 망하면 안되지하기 시작한다. 경기침체와 세월호 피로감을 연결짓는 거짓논리와 선동이 먹고사는 일상 속으로 스멀스멀 침투해 버린 탓이다. 예상대로 한국사회의 얄팍하고 천박한 망각의 관행이 엄습해 가고 있다. 사악하고 잔인한 정부는 이를 부추기고 꼰대 보수는 이에 준동한다.

 이 시간에도 세월호 인양 요구와 특별법 정부 시행령 폐기를 주장하는 국민들 앞에, 보상금 액수를 너절하게 밝히며 또 다시 유가족들 가슴에 보란 듯이 대못을 박는 정부를 보라. 오로지 망각하기만을 강요하고 기다리는 정부, 유가족들을 고립시키고 국민들 사이에 이간질만을 일삼는 정부를 보라. 단 한 번이라도 자식잃은 부모의 마음으로 유가족을 품을 생각을 한 적이 있었던가.

지난 1년 동안 단 한 번이라도 가슴으로 눈물 흘린 적 있다면, 이럴 수는 없는 법 아닌가. 참사 당일 해외순방을 떠나는 대통령에게 탈상이라도 끝나고 가지. 304명의 희생자와 그 유가족들을 보듬는 게 우선이제.” 하며 허망해 하는 국민들의 참담한 목소리를 왜 청와대만 못듣는가. 통탄할 일이다.

곰곰이 생각하면, 대한민국 국민들은 늘 농락당해왔다. 거짓역사의 희생양이 돼 왔다. 생각해 보라. 친일역사 한 번 개운하게 청산하지 못했다. 이 꼴을 보려고 민족의 지존들이 자신을 다 바쳐 항일 독립운동을 했겠는가. 독재세력도 한 번 단호하게 뿌리뽑지 못했다. 이 꼴을 보려고 감옥가고 분신 투신하며 민주화운동을 했겠는가. 마찬가지다. 부패세력 한 번 가차없이 처벌하지 못했다.

반통일 세력 한 번 보란 듯이 단죄하지 못했다. 그 결과가 바로 세월호 참사다. 그 비정상의 반복이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오늘을 만들었다. 그래서다. 단언컨대, 친일과 독재와 부패와 반통일 세력은 한통속이다. 때만 되면 경제위기로 협박해서 정의를 거스르고, 틈만 나면 종북세력 운운하며 국론을 양분한다. 그 한통속의 거짓선동과 우롱에 애먼 국민들이 두 눈 뜨고 당하고 시간만 지나면 잊어버리기 일쑤였다. 진실과 정의가 바로 선 대한민국을 위해선 한 번 쯤은 그 지독한 패악의 싹을 잘랐어야 했다. 한 번 쯤은 인정사정없이 본때를 보였어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실규명과 석고대죄의 과정없이 어설픈 화해와 용서로 매 번 그들에게 당하고 또 당하며 살아간다. 치욕스런 역사를 반복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정작 해산시켰어야 할 정당은 따로 있었다. 친일과 독재, 부패와 반통일의 본산과 잔당들이 모여 하염없이 정치와 선거의 이름으로 온갖 권력을 독식하고 역사를 타락시킨 그들을 해산시켰어야 했다. 그래서 부탁한다. 정치인들은 노란리본을 떼라. 노란리본 대신 정치로 답을 하라. 안산과 팽목항에 나타나지 마라. 청와대와 국회에서 결론을 내라. 왜 타서는 안 될 배가 출항했는지, 왜 갑자기 배가 침몰했는지, 304명 단 한 명도 구조하지 않았는지, 왜 정부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지, 왜 언론보도는 통제했는지, 왜 국정원은 계속해서 등장하는지, 대통령은 그 시간 어디에서 무얼하고 있었는지, 죄다 밝혀라. 세월호 진실규명이 오늘 우리시대 최고의 정치적 과제이고, 정치의 목표인 까닭이다.

노란리본은 국민들이 가슴에 찰 것이다. 진실규명 그 순간까지. 안전마을과 생명공동체를 위한 도보순례는 국민들이 해 나갈 것이다. 절망을 딛고 희망을 선포하며, 세월호의 진실을 위해 마을에서 싸울 것이다. 이번에는 꾸준하게, 이번에는 악착같이, 세월호의 진실을 위해 아픈 세월을 이겨갈 것이다. ‘망각을 부추기는 불의의 무리들에게 기억의 우직함으로 화답하면서, 진실은 가장 강력한 힘임을 입증하는 그 순간까지 말이다.

이미 우리는 약속했다. ‘미안하다. 결코 잊지 않겠다.’. 2014416, 침몰하는 세월호 안의 지옥을 보면서. 침몰하는 대한민국을 보면서.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우리 자신을 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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