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서구을의 재보선 결과는 새정연에 대한, 특히 비노·호남을 향한 호남의 경고다. ‘친노’와 분당하지 않으면 다음 총선에서 뽑지 않겠다는 메시지다. 분당 요구다”
새정치민주연합(이하 새정연)의 4·29 재보선 참패는 예상된 참사다. 더 이상 잘못을 눈 감고 업어주지 않겠다는 민심의 표출이다. 민심의 경고에 귀 기울이지 않은 결과다. 리더십도 없고 노선도 선명하지 못했다. 국민을 바라보는 정치는 말로만 했다. 민심은 챙기지 않았다. 계파 이익만 챙겼다. 공천 때마다 실망을 안겼다. 그 때마다 용서하고 기회를 주었다. 새누리당의 거듭된 실정에도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다. 자업자득이다.
새정연은 60년 전통야당을 표방하고 있다. 전통적지지 기반은 물론 호남이다. 호남이 없었다면, 호남인이 투자하지 않았다면 존재할 수 없는 정당이다. 절대적지지 기반이다. 어느 정권 시기든 호남에서만은 ‘야당’이 아니고 ‘여당’의 지위와 위세를 떨쳤다. 수십 년에 걸친 호남의 ‘투자’는 결국 김대중 대통령을 통해 사실상의 정권교체라는 위업을 달성했다. 대한민국 민주주의 완성의 역사를 썼다.
김대중 대통령에 이어 바통을 물려받은 노무현 정권에 들어서면서 조금씩 눈 밖에 나기 시작했다. 호남인에 의해 후보가 되고 대권까지 거머쥔 노무현의 사람들은 호남을 ‘대주주’로 인정하지 않았다. 호남을 점차 외곽으로 몰아냈다. 인사나 예산 등에서 배려는커녕 밀어내는 모습을 보였다. ‘친노’그룹을 형성, 호남을 당의 중심축에서 밀어냈다. ‘친노’그룹 위주의 공천을 서슴지 않았다. 집권 의지 보다 계파 확산을 우선시 하는 행태를 보였다. 호남의 눈으로 보면 ‘친노의 반란’이다.
‘친노의 반란’은 천정배와 정동영, 신기남이 주도한 ‘정풍운동’을 그 시작이다. 권노갑 고문을 비롯한 원로들의 은퇴 요구다. 민주주의와 집권을 위해 역경을 헤쳐 온 호남과 ‘김대중의 사람들’을 밀어내려는 ‘쿠데타’다. 부모의 간섭이 귀찮아진 자식이 부모에게 집을 나가라고 소리치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당의 전통과 역사를 부인하겠다는 선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천·신·정’이 주도한 ‘쿠데타’를 시작으로 당권은 ‘동교동’에서 ‘친노’로 급격히 이동했다. 이들 3명의 호남 출신들에 의한 ‘쿠데타’는 결국 영남과 수도권의 ‘친노’에게 당권을 쥐어주고 말았다. 천·신·정과 ‘동교동’에서 ‘친노’로 이동한 한명숙과 이해찬 등도 결국 문재인으로 대표되는 ‘친노 본방’에 의해 변방으로 밀렸다. ‘친노’와 ‘반노·호남’으로 갈라진 당은 지기 어려운 총선과 대선에서 잇달아 졌다.
호남은 한명숙의 오만한 공천이 가져온 총선 실패도 너그러이 용서했다. 본선 경쟁력이 손학규보다 약하다는 객관적 평가를 받은 문재인의 대선 실패도 참았다. 자식이 잘 되길 바라는 부모의 심정으로. 하지만 문재인은 다시 당권을 잡고 ‘친노’위주의 당 운영 의지를 보였다. 새누리당을 견제할 유일한 정당이라는 이유로 감쌌지만 인내의 한계를 넘어섰다. ‘친노’에 의해 끌려가는 새정연은 이제 ‘자식’이 아니라는 선언이요 통보다.
문제는 이제부터다. 호남이 정치권에 보낸 ‘메시지’를 현역 국회의원들이 어떻게 받아들이고 행동하느냐다. ‘메시지’는 ‘비노·호남’과 ‘친노’의 분당 요구다. 현역 의원들에게는 받아들이기 힘든 요구다. 총선을 앞둔 모험이 두렵기 때문이다. 현재대로면 다음 총선에서 배지 달기가 수월하다. 분당하면 골치가 아파진다. 시간도 촉박하다. 광주 서구을의 결과를 보고도 정신을 못차리고 ‘메시지’를 애써 외면하려는 행태가 보인다.
호남과 동교동을 대표하는 박지원 의원부터 “분열은 패배를 가져올 뿐”이라고 분당 불가론을 주장한다. 호남의 ‘메시지’를 정치 문외한의 부당한 요구로 치부한 것이라는 인상을 준다. 다른 의원들의 속내도 박 의원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1년 후 총선은 무소속의 무더기 당선을 감히 예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