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위원/ 여민동락공동체 대표 살림꾼, 영광신문 편집위원

진정한 민주주의는 중앙에 앉아있는 몇 명의 사람들에 의해 작동될 수 없다. 그것은 모든 마을의 주민들에 의해 아래로부터 작동되어야 한다.’는 평범한 진리를 설파한 사람, 인도의 비폭력 지도자 간디.

우리는 그 동안 너무 많은 권리를 정치인들에게 위임해 왔다. 정치인은 주민들의 집단의사를 대표하는 대리자다. 그런데 현실은 어떠한가. 선거에서 당선만 되고 나면, 주인들의 편에 서지 않고 자기 정당이나 계파의 이해관계에 따라서만 움직인다. 기초단위로 가면 더욱 가관이다. 정당의 정책적 정체성이나 입장이 있는 계파조차도 없다. 정치를 자영업 수준으로 타락시켜 공공성과는 무관하게 자신의 탐욕을 채우는 일을 노골적으로 한다. 그렇다고 대리인들을 쉽게 바꿀 수도 없다. 그리고 바꾼들 그리 탐탁스럽지도 않다. 이것이 중앙정치와 지방자치 과정에서 지금까지 보여 준 주인과 대리인 관계의 역설이다.

그래서다. 지방자치에서 대리인에게 위임한 권리를 점차 주민들이 스스로 되찾아야 할 때다. 물론 철학과 실력이 있는 단체장을 뽑고, 상식을 지키고 무식을 부끄러워 할 줄 아는 풀뿌리 의원을 잘 식별해 내는 선거도 중요하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지방자치와 정치가 정상화될 수는 없다. 주민력을 키워 자치의 중심에 정치의 주인인 주민이 직접 참여하는 게 근본을 푸는 열쇠다. 자치는 주민들 스스로 결정하고 스스로 필요한 일들을 할 수 있는 기회와 능력, 권한을 가질 수 있게 하는 것을 말한다. 주민이 질서를 세우고 정치가 이에 따르게 하는 게 자치라면, 정치가 규칙을 만들고 주민을 이에 동원하는 게 통치다. 지방토호에게 점령당한 지방자치, 그 자치를 빙자한 통치체제의 관행을 주민력의 성장을 통해 진정한 자치로 전환해내야 한다. 권력을 나누는 분권을 넘어 스스로가 권력이 되는 자립, 그것이 바로 스스로의 시대곧 자치의 근본이자 기본이기 때문이다.

주민력의 중심에 마을리더가 있다. 그 마을리더가 곧 마을권력이다. 이장 통장 주민자치위원 부녀회장 노인회장 번영회장 복지위원 등은 빼놓을 수 없는 마을권력이라 할 수 있다. 지금까지는 행정조직의 하부 세포처럼 인식되어왔음을 부인할 수 없다. 행정서비스의 단순 대행업자 혹은 각종 선거조직의 조직책 정도로 오해받는 경우가 많았다. 이제는 지역사회에서 의미있는 권위를 찾아야 한다. 정치적 대리인들에게 모든 의사결정을 위임할 게 아니다. 마을에서 풀뿌리 민주주의 농사를 잘 지어가는 게 자치다. 그 자치의 핵심주체가 마을권력이다. 마을권력을 튼튼하고 건강하게 세워야 주민력이 자연스레 살아난다. 주민력의 성장은 마을권력의 권위와 수준과 비례하기 마련인 까닭이다. 그래서 누구나 다 마을의 리더가 될 수 있지만, 아무나 마을의 리더가 되어서는 안 된다. 마을의 대표들이 권위를 키우고, 전문성을 높이고, 마을활동가로서 품격과 만족도를 올리기 위한 일명 마을학교같은 학습조직이 필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학습하지 않는 공동체는 타락하기 마련이다. 마을에 학습조직을 만들고 주민들과 마을대표들이 끊임없이 토론과 배움을 가까이 할 때 주민력의 성장과 축적이 가능하다. 그 성장과 축적이 직업 정치에 농락당하고 있는 위임과 대리의 맹점을 보완하고 대체할 희망이 될 것이다.

건강한 마을권력이 펼치는 자치의 방식은 당연히 직접민주주의. 국가 차원의 대의민주주의와 지방과 마을 차원의 직접민주주의가 함께 돌아가는 하이브리드 구조를 갖추자. 유럽의 여러 정치경제학자들이 직접 민주주의와 경제성장의 상관관계는 물론 직접 민주주의와 행복도를 통계적으로 분석했다. 놀랍게도 직접 민주주의가 발달하고 자치가 성장한 지역, 주민력이 활발하게 작동한 마을일수록 경제성장률도 높고 주민들의 행복도도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직접민주주의, 마을이니까 가능하다. 마을마다 대동회를 열어 마을과 관련된 의제를 공론화하고 바람직한 정책방향과 실천과제들을 발굴해서 지방의회와 함께 정책으로 만들어가자. 직접민주주의 텃밭농사로 성장하는 주민력! 그것이 곧 대리인의 무한권력을 회수하여 주인의 존엄을 위한 찾는 마을자치의 방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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