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영기/ 난원영광노인복지센터장

딸이 참 예쁘다. 필자는 21녀를 두었다. 내리 아들만 둘을 낳은 뒤, 37세에 본 막내가 바로 딸이다. 딸이라는 소식에 들뜬 것은 비단 필자만이 아니었다. 필자의 집안이 워낙 딸이 귀한 터라 그 기쁨은 고스란히 집안의 경사로 이어졌다. 필자의 누나가 아들만 셋이고, 동생 역시 아들만 둘이었는데, 필자마저 아들만 둘이었다가 마지막에 가까스로 얻어 걸린 게 딸이었으니 그야말로 금지옥엽의 고명딸이다. 결국 필자는 딸 바보가 되고 말았다.

머리가 커져갈수록 은근히 거리감이 느껴지는 아들들에 비해 붙임성 있게 달려드는 딸은 내게 분명 애교 덩어리다. 집에 전화라도 걸면 아들 두 놈과의 통화는 각각 30초를 넘기 힘들다. 통화라기보다는 아비가 던지는 질문에 마지못해 답하는 투다. 재미도 없다. 허나 딸은 확연히 다르다. 묻지도 않은 말도 곧잘 해대고, 아빠를 걱정해준다며 조잘거리고, 심지어 마누라처럼 긴 잔소리까지 늘어놓는다. 딸의 애교에 놀아나는 아비의 눈엔 그런 딸이 귀엽기 그지없다. 그야말로 팔불출이다.

아들은 묻는 말에만 답을 하고, 딸은 묻지 않는 말에도 신나게 답하며, 되묻기까지 한다. 물론 개인차가 있겠지만 어려서부터 남녀의 DNA가 이렇게도 차이가 나다보니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라는 말이 생겨난 모양이다. 지금 이 순간 자식 셋 중에서 아빠!’ 라고 부르며 가장 먼저 품속으로 달려오는 아이도, 내 곁에서 가장 늦게까지 친구처럼 놀아주고 갈 아이도 딸일 터이니, 유독 더 예쁜 건 어쩔 수 없나보다.

이런 딸 바보를 지켜보는 몇몇 주변사람들은 우려가 큰가보다. 딸을 너무 예뻐하면 아들들이 서운하게 느낄 거라며 충고까지 해준다. 그 고마운 분들에게 필자는 딱 잘라 말한다. 자식들을 대하는 필자 나름의 원칙과 룰이 있다고 말이다. 내 뜻대로 안 되는 일이 자식 농사일진데, 필자의 자신감을 보고 있자니 스스로도 가소롭기 짝이 없으나 나름의 이유는 있다. 세상의 부모들 중, 열 손가락을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이 있다고 말할 사람이 그 누구랴. 부모에게 자식들은 그 사랑에 있어 방법과 방식이 다를 뿐이지, 그 귀함에 어디 한 치의 차이가 있겠는가! 먼저 필자는 오빠인 아들들에게는 막내가 딸이고, 우리 집안에서는 딸이 하나밖에 없는 까닭에 아빠가 예뻐한다고 설명했다. 다행히 두 놈들은 말귀를 빨리 알아들었다.

게다가 큰아들에게는 집안에서 중요하게 결정할 일이 생기면 가장 먼저 의논하고 의견을 말할 기회를 주었고, 허약한 체질인 둘째 아들에게는 메인 메뉴를 결정할 선택권을 부여했다. 그러다보니 아버지가 티 나게 딸을 예뻐해도 불만을 제기하는 아들은 저절로 없어졌다. 딸 바보지만, 아들 역시 금쪽같이 여기는 필자가 가정의 평화를 위해 뽑아든 리더십의 핵심이 이런 공정함이었다. 하기야 부모가 자식을 대하면서 불공정하거나 편애를 한다면, 그 집안이 콩가루가 되는 건 시간문제일 것이다. 하물며 가정에서도 이처럼 공정함의 중요성이 크게 강조되는 데, 나라와 사회를 놓고 보면 더 말해 무엇하랴!

공정(fairness)은 한 국가와 사회를 떠받치는 핵심가치이자, 국민을 끌어 모으는 힘이 된다. 자신이 살고 있는 세상이 불공정하다고 느낀다면 국민들은 국가를 불신하고 사회를 향해 불만의 목소리를 터트릴 것이다. 그런 국가는 결코 살기 좋은 나라일 수 없다.

정의는 곧 공정성을 말한다라고 이야기 한 존 롤스는 그의 저서 정의론에서 소수의 불평등자가 그 사회를 정당하다고 여긴다면 그것이 공정한 사회라고 했다그렇다. 공정한 사회란 누구나 차별받지 않고 동등한 기회를 누릴 수 있어야 한다. 대한민국에서 일어나는 갈등의 뿌리 역시 대부분 불공정에 있다. 재판이든, 선거든, 스포츠든, 시험이든 불공정하다고 느낀다면 어느 누가 그 결과에 승복하고 따르겠는가!

한국사회에서 온갖 편법과 반칙을 일삼아 온 특권층들. 예컨대 장관 후보자들만 보더라도 예의 위장전입, 부동산 투기, 탈세, 병역기피 논란에 휩싸인다. 되레 그렇지 않은 후보자를 찾기가 어려울 정도다. 세정과 군정이 무너지면 망하지 않는 나라가 없다는 데, 비리와 특혜가 판을 치고 공정해야할 언론마저 한편으로 치우친다면 이게 어디 살만한 나라인가?

집으로 퇴근하는 길. 스스로를 다잡아 본다. 딸을 예뻐하는 만큼 아들들도 더욱 사랑해야겠다. 그리고 아이들을 낳아준 아내와 필자를 태어나게 해준 함께 사는 어머니도 사랑해야겠다. 필자가 가족들로부터 공정하지 못한 사람으로 불려 진다면, 가장으로써의 권위와 리더십은 무너질 테고, 가정의 평화도 깨지니 말이다. 일개 필부도 아는 이 공정함의 중요성을 나랏일 돌보는 나리님들은 왜 모르는 척 하는 걸까.

공정한 사회야말로 대한민국 선진화의 윤리적, 실천적 인프라입니다. 저는 앞으로 우리 사회 모든 영역에서 공정한 사회라는 원칙이 확고히 준수되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 2010광복 65주년 경축사에서 했던 말이다. 그로부터 5년이 지난 오늘. 화려했던 말잔치는 그토록 요란했건만, 변한 건 왜, 아무것도 없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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