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일근/ 언론인

노무현 전 대통령 추모식에서 우리의 무너진 예의염치의 현주소를 보았다. 예절과 의리, 청렴, 무엇보다 부끄러움을 아는 벼슬아치와 정치인이 되길 바란다

나는 오늘 중국 춘추전국시대 제()나라 사상가 관중(管中)을 떠올린다. 아니 그가 강조한 예의염치(禮義廉恥)를 생각한다. 예절과 의리를 지키고 체면 차릴 줄 알며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이다. 관중은 예의염치를 나라의 근간으로 꼽았다. 이 네 가지 근본 중 한 줄이 끊어지면 기울고, 두 줄이 끊어지면 위태롭고, 세 줄이 끊어지면 엎어지며, 네 줄이 끊어지면 멸망한다고 했다. 기울면 바르게 하고, 위태로우면 안정시키고, 엎어지면 일으킬 수 있는 여지가 있으나 멸망하면 손쓸 도리가 없다고 했다.

조선도 벼슬아치들에게 예의염치를 강조했다. 조선의 맥을 이은 대한민국은 어떤가. 정치인과 벼슬아치들에게서 예절도, 의리도, 청렴도, 부끄러움도 찾아볼 수가 없다. 정치인과 벼슬아치들 치고 다산 정약용의 목민심서를 입에 올리지 않는 이가 없다. 하지만 모두 구두선(口頭禪)이다. 배려는 없다. 백성도 없다. 물고 뜯고 싸운다. 권력을 이용, 이권 챙기기의 명수들이다. 그들에게 예의염치는 겉치레일 뿐이다.

공직자들의 민낯은 세월호 참사에서 민낯을 드러냈다. 국가를 개조해야 한다는 말이 나왔을 정도니 더 말해 무엇하랴. 정치인들은? 공직자들 보다 한 수 위다. 국가 개조 하겠다고 큰소리 쳤다. 시간이 흐르자 언제 그랬냐다. 나라가 개조되면 그들 스스로 설 자리가 없어질테니 당연하다. 국민은 아랑곳 않고 당 대 당, 당내 계파간 싸움 하느라 세월 가는 줄 모른다. 이권개입 성격이 강한 로비도 게을리 할 수 없다. 예의염치가 바로서면 봄날은 간다. 그러니 국가개조가 용두사미(龍頭蛇尾) 될 밖에.

예의염치를 생각게 된 것은 노무현 전 대통령 추모식장의 모습 때문이다. 예의염치가 땅에 떨어진 행사였다. 정치권의 부끄러운 민낯이 드러났다. 고인의 추모식은 예의염치를 최대한 갖춰 치러져야 한다는 것이 상식이다. 상식은 여지없이 깨졌다. 추모식장에 예의염치는 없었다. 정치 전쟁터였다. 야유와 조롱이 난무했다. 마치 선거전을 치르는 분위기였다. 정치 하지 말라는 유언을 남긴 고인의 아들이 주인공이었다.

아버지를 죽음으로 내몰았으며 욕되게 한데 대한 울분은 이해한다.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 했다. 지나쳤다. 때와 장소가 좋지 않았다. 추모객과 정적(政敵)을 구분하지도 못했다. 추모식과 정치 집회를 분간하지도 못했다. 국민들은 눈살을 찌푸렸다. 정치적 손해를 보았다는 얘기다. 그런데 그들은 왜 야유와 조롱을 서슴지 않았을까. 정치적 목적이 있었음이 분명하다. 친노(친 노무현)의 결집이다.

조롱과 야유를 받은 여야 정치인들도 정치인답지 못했다. 조롱과 야유를 당할 일이 있으면 사과를 해야 한다. 억울하면 해명을 해야 한다. 국민으로부터 위임 받은 권력과 세비를 받는 값을 해야 마땅하다. 그것이 글의 의무다. 국민들에게 왜 이런 일이 있었는지, 앞으로 어떻게 하겠다는 말을 해야 한다. 그저 해프닝으로 넘기려는 태도는 국민을 무시하는 처사다. 여론은 전 대통령의 아들과 친노에 대한 비난이 우세하다. 하지만 김무성 등 공격을 당한 정치인들도 켕기는 구석이 있음을 우리는 안다. 도찐개찐이다. 예의염치를 찾아볼 수 없는 것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인문학 강좌가 유행이다. 물질적 가치보다 인간적 가치 추구가 절실한 시대상이다. 예의염치는 개인과 가족, 사회의 근간이기도 하다. 우리의 가정과 사회의 예의염치도 전 같지 않다. 부부간, 부모 자식 간, 이웃 간의 예의염치도 갈수록 무시되어 가는 모습이 안타깝다. 벼슬아치와 정치인들부터 예의를 바르게 갖추고, 의리로 주변을 안정시키며, 청렴으로 나라를 일으켜 세워야 한다. 무엇보다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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