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위원/ 여민동락 공동체 대표 살림꾼

농민에게 월급을 주자? 농민에게 기본소득을 보장하자? 이미 몇 년 전부터 여기저기서 논의되는 정책이자 화제였다. 낯설긴 하나 묘하게 관심이 간다. 농민월급제라는 이름으로 이미 화성, 순천, 나주, 임실 등에서 시행하고 있고, 점차 확산되는 추세라고도 한다.

엄밀히 말하면, 월급이 아니라 무이자 대출금이라 해야 옳겠다. 농민들이 매달 일정액을 지방자치단체나 농협을 통해 월급 형식으로 받은 뒤 연말에 갚는 제도니 말이다. 당연히 대출금 이자는 지자체에서 부담한다. 월급은 통상 농가들의 주머니 사정이 좋지 않은 봄부터 가을까지 지급한다.

미리 받아 쓴 돈은 벼 수매 때 생기는 돈으로 연말에 갚는 방식이다. 이자 부담없이 농자재나 생필품을 수시로 살 수 있고 자녀 학자금에도 보탤 수 있다. 매달 주는 월급의 상한선도 지자체별로 영농규모에 따라 30만원부터 300만원까지 다양하다. 가을에 출하할 농산물을 담보로 예상 매입가격 대비 50%에서 70% 수준 정도를 매월 분할로 받는다는 얘기다.

지금은 벼 재배 대상 농가에서 다른 작물을 재배하는 채소 과수로 확대하고 있는 중이다. 완벽하진 않지만 한 단계 진화한 정책이라 생각한다. 대상자 제한이 까다롭지 않다면야, 최소한 빚내지 않고 안정적으로 농사를 지을 수 있다는 취지에서 말이다. 이렇게 해서라도 농촌을 떠나는 농민들이 줄고, 농촌으로 돌아오는 청년들이 늘 수 있는 길이 열릴 수만 있다면 좋은 일이다. 농민월급제! 이렇다면 영광군도 한 번 쯤 고려해 볼 과제가 아니겠는가.

나는 한국농업에 대해 위기의식이 아주 크다. 오늘의 현실을 보면, 10년 뒤 농촌의 미래만 생각해도 끔찍하다. 정부가 뭔가 대책을 갖고 있겠지, 그래서 다시 농업판 세월호처럼 가만히 있으라하면, 그야말로 죄악이다.

이대로라면, 한국농업은 죽는다. 과연 무차별적인 자유무역협정으로 농업을 지킬 것인가. 정권마다 이름표를 새로 만든 농업선진화방안창조농업으로 농업을 살릴 것인가. 과연 사람이 살고 농민이 평화로운 농촌이 가능하기나 할 것인가. 내가 과문한 탓인지, 대한민국 농정 최고 담당자들이 기존의 방식으로 농업을 자신있게 살릴 수 있다고 말하는 걸 못봤다.

농가 소득보전과 농촌복지 차원의 숱한 정책지원금을 제 아무리 쏟아 부은들, 현장에선 눈먼 돈취급인 탓이다. 그 돈으로 농사짓기 좋아지고, 농민의 생활이 나아지고, 농촌의 재생과 부흥이 목전에 왔다는 얘길 들어본 바가 없다. 통계를 보면 적나라하다. 농가의 농업소득은 고작 연 평균 1000만 원 선이라 한다. 심지어 60%의 농민은 그조차 안 된다 하니 말해 뭣하겠는가.

농업과 농민에 대한 근본 철학이 바뀌지 않으니 만날 같은 말 뿐이다. 농업 생산력을 향상하라. 부가가치를 제고하라. 국가경쟁력을 창출하라. 말이야 맞지만, 모두 허망한 구호에 불과하다. 이런 식이라 전남의 어느 면사무소 입구에는 ‘1억 농부니 뭐니 로또식 표어를 붙여 놓는 촌극을 연출하기까지 한다. 한심하기 짝이 없다. 언제까지 실패한 방식으로 한국농업을 망칠 것인가.

기계화, 화학화, 규모화 방식은 공업이지 농업이 아니다. 그런 식의 공업적 방식의 농업을 농업 선진화첨단 융복합 6차 산업화니 하면서 대기업화 하겠다는 발상 자체가 관행적이고 과거적이다. 이와는 달리 국민기초식량보장법 제정하라. 식량자급률 50% 확보하라. 농지 공개념 강화하라. 농촌공동체 리더 30만 명을 육성하라. 농민기본소득을 보장하라. 전부 진보정당의 주장이다. 다른 정책은 논외로 하더라도, 나는 농업 농촌 농민 정책만큼은 진보정당이 옳다고 본다. 지금부터라도 전향적 접근이 필요하다.

얼마나 수많은 농()주의자들이 설파했으랴만, 농자천하지대본! 그저 현판에만 새길 문구가 아니다. 농업이야말로 국가기간산업의 핵심이라는 말이다. 국가의 기간산업이란 게 뭔가. 말 그대로 국가경제의 사활, 국민의 생존권 보호에 근본적이고 중대하게 영향을 끼치는 산업이다. 마치 교육과 주거, 보건의료와 복지, 교통과 에너지 등 국가가 직접 책임을 맡아야 할 공공영역을 말한다.

수익성을 넘어 공익성을 우선으로 지키고 살려야 할 안보문제라는 뜻이다. 그런 면에서 농민월급제는 하나의 단계적 출발이다. 이제 무이자 대출금 성격인 농민월급제를 넘어, 모든 농민들을 대상으로 한 농민기본소득 보장까지 나아가야 한다. 농민기본소득, 다음 번 칼럼에서 덧붙여 다룰 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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