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공동체의 역사와 배경

농어촌이 인간의 참다운 행복의 터전이 되기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저소득과 중노동의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그 바탕위에 마을공동체의 다양한 문화를 부활시켜야 한다.

마을공동체는 주민개인의 자유와 권리가 존중되며, 상호 대등한 관계속에서 마을에 관한 일을 주민이 결정하고 추진하는 주민 자율공동체이다.

영광 묘량의 여민동락과 같이 전국적으로 대안적 삶을 꿈꾸는 다양한 형태의 마을공동체들이 운영되면서 그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영광에서도 또 다른 여민동락을 희망한다. <편집자주>

 

 

들어가며

우리 선조들은 마을을 중심으로 공동체를 이루며 살아왔다. 마을사람들이 서로 돕고 나누며 더불어 살아가고자 하는 공동체 문화는 우리 전통사회가 농경사회 엿기에 자연스럽게 이루어 졌다. 농사는 혼자 짓기에 무척 힘든 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온 마을 사람들이 서로 품을 나누고 힘을 합쳐 공동으로 농사를 지으며 살아왔다.

마을마다 두레를 짜서 바쁜 농사철이 되면 힘든 모내기와 김매기를 해냈다. 두레를 나갈 때면 풍물을 앞세워 길놀이를 하고, 노래를 부르면서 일을 하고, 들밥도 푸짐하게 차려 함께 먹었다. 저녁에 일을 마치고 돌아오면서 다시 한바탕 놀이를 즐기며 하루의 고단을 풀었다.

우리 선조들은 농사일에만 서로 뜻을 모으고 일손을 나눈 것은 아니다. 혼례나 장례를 치르는 일, 옷감 짜는 일, 논이나 소를 장만하는 일도 이웃과 힘을 합쳤다.

마을의 길 닦기나 다리놓기, 우물청소 같은 일도 같이하면서 공동체로 생활했다.

두레와 품앗이로 고된 농사일을 함께하고 계모임을 통해 재산을 늘리고, 향도를 통해 관혼상제를 치르는 따뜻하고 넉넉한 마을 공동체 정신으로 아름답고 정겨운 고향을 지켜왔다.

그런데 안타갑게도 오늘날엔 이런 정겨운 공동체 문화를 찾아보기 힘들어 졌다.

마을공동체는 이미 흘러가버린 과거의 문화가 아니다. 수천년부터 오늘날까지 계속해서 이어오고 있으며, 우리의 후손들에게 이어져야 할 소중한 자산이요 보물이다. 서로 나누고 돕는 마을공동체 정신은 시간이 지나도 사회가 변해도 우리들의 삶을 풍요롭게 만들어줄 버팀목이 될 것이다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우리 선조들은 다양한 방법으로 공동체생활을 즐겼다 

 

다함께 풍년과 건강을 비는 마을제사 동제

마을사람들이 다 함께 한마음 한뜻으로 정성껏 제사를 지내는 마을 제사를 동제하고 한다. 동제에서 모시는 신의 이름을 붙여 당산제’ ‘산신제’ ‘용산제’ ‘장승제등으로 부르고 있다.

동제에서는 마을사람들 모두 건강하고 행복하게 지내기를 빈다. 농촌에서는 주로 풍년을 기원하고 어촌에서는 고기를 많이 잡게 해달라고 빈다.

동제는 지역에 따라 조금씩 다르지만 어느 마을에서든 저마다 하는 일이 잘되고 마을이 평안하기를 빌고 있다. 그래서 동제를 잘 치를 수 있도록 마을사람들 모두 나쁜 일을 삼가고, 힘을 모아 제사비용을 마련하고 음식도 만든다. 동제는 자연스럽게 협동심과 단결력을 기르면서 모두가 하나라는 공동체 의식을 쌓게 된다. 또 동제는 한데 어우러져 노래 부르고 춤추고 즐기면서 마을의 전통 문화를 보존하고 계승하는 자리이다. 

 

모정에서 열리는 한해 농사계획 두레 회의

모정은 양반들이 이용하는 정자와 달리 농부나 일꾼을 위해 마을에서 공동으로 만들었다.

모정은 농부들의 좋은 쉼터이면서 두레회의가 열리는 곳이기도 하다. 두레회의가 열릴 때면 두레에서 일할 남자들이 모여 농사계획을 세우고 품삸을 정했다. 두레군은 보통 한집에서 한명꼴로 나왔고, 일할 남자가 없는 집에서는 두레군 대신 품삸을 냈다.

두레에서 일을 게을리 하거나 아침에 늦게 나오는 두레꾼들에게는 벌을 주기도 했다. 막걸리를 꽹과리에 가득 부어 마시게 하거니 송아지따비라고 해서 송아지 뒤를 졸졸 쫓아다니게 햇다. 사람들의 놀림거리를 만들어서 창피를 주기 위함이다.

이렇듯 두레회의는 마을 일을 함께하는 주민간 소통의 자리인 셈이다 

 

이웃끼리 마음을 주고받은 품앗이

품앗이는 품아이또는 품바꾸기라고도 한다. 두레가 마을 공동으로 힘을 모아 집단적으로 일하는 것과 달리 품앗이는 친척이나 가까이 사는 이웃처럼 개인적으로 친한 사람기리 서로 도움을 주고받는 것이다.

아낙네끼리 서로 도움을 주고받는 김쌈하기나 방아 찧기 뿐만 아니라 마을 남정네들이 함께 모여 퇴비를 만들거나 지붕을 고치고 집을 지을 때도 품앗이를 했다.

또 두레는 봄철 모내기나 여름철 김매기 등 농사일이 아주 바쁜 시기에 대규모로 조직되어 운영되지만, 품앗이는 계절이나 일의 종류에 관계없이 혼자 힘으로 해내기 힘든 일이 생기면 언제 어디서든 도움을 청하고 도움을 주면서 같이 일했다.

오늘날에도 품앗이 전통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동네 엄마끼리 서로 아이들을 돌보거나 공부 시키기도 하고, 자신이 가진 능력을 서로 도와주기도 한다.

함께 일하고 같이 먹는 들밥

농사일을 잘하려면 배불리 잘 먹어야 한다. 그래서 두레 김메기 할 때는 두세 시간에 한번씩 들밥을 내왔다. 다 함께 일하고 들밥을 나누어 먹으면 힘을 얻었다. 무엇보다도 들밥은 마을 아낙들이 함께 장만한데서 옛 조상들의 하나 된 마음을 읽을 수 있다. 두레패가 함께 농사일을 하듯 먹을 음식도 모두가 함께 준비한 것이다.

두레 들밥은 참과 식사로 나누는데 오전 10시께는 아침 찬, 12시쯤 정심 식사를 하고 오후에는 한두번 더 참을 먹었다. 참은 식사와 달리 술이 중심이다.

들밥으로 먹었던 음식은 아주 소박했다. 꽁보리밥과 함께 국수, 수제비, 감자국, 오니냉국, 등을 겯들였다. 참중에서 가장 중요한 술이 막걸리인데 옛날에 밥을 충분히 먹지 못했기 때문에 밥 힘 대신 술 힘에 의지해 일할 수 있었다

오랜 세월 우리 민족과 함께 했던

계는 계회또는 라고도 하는데, 여러 사람이 돈이나 곡식 등을 얼마씩 거두어 서로 경제적인 도움을 주고받거나 친목을 도모하기 위해 만들어진 모임이다. 계가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 정확치는 않지만, 삼국시대와 고려시대를 거쳐 조선시대로 내려오면서 그 종류가 아주 많아 졌다.

나이가 같은 사람들끼리 모이는 동갑계, 계를 든 사람들이 함께 농사를 짓고 거기에서 나온,s 곡식을 나누는 농계, 여럿이 함께 농기구를 사서 공동으로 쓰는 농구계, 소를 사서 함께 이용하는 우계, 돈이 많이 드는 호녜와 장례를 준비하는 혼상계, 나라에 내는 세금인 군포를 공동으로 마련하는 군포계, 설날에 차례를 지내거나 세배하러 온 사람들을 대접하는 음식을 준비하는데 쓸 돈을 장만하는 세찬계 등이 있었다.

이렇게 계를 우리 조상들이 기쁨과 슬픔, 어려움을 함께하고자 했던 상부상조의 정신을 잘 보여주고 있다. 계는 예전처럼 많지는 않지만 오늘날까지도 계속 이어지고 있다 

 

온 마을 사람들이 한데 모이는 장시

조선시대 정기적으로 사람들이 모여 물건을 사고팔던 시장을 장시라고 한다. 처음에는 15일이나 10일 만에 한번 씩 장시가 열렸는데, 점점 그 기간이 짧아지면서 대부분의 지역에서 5일마다 열리게 되었다. 그래서 5일 장시는 30-40리마다 하나씩 열렸는데 이는 장시가 열리는 곳 주변에 있는 여러 마을 사람들이 하루 동안 장을 볼 수 있을 만한 정도의 거리이다.

장시는 온갖 물건을 사고파는 곳이었다. 여러 마을 사람들이 한데 모여 서로의 소식과 갖가지 정보를 주고받는 곳이기도 하다.

또 사당패나 걸립패가 재미있는 볼거리를 펼치는 무대이기도 했다. 억울한 일을 당했거나 나라에 불만이 있을 때는 그 사연을 써서 내다 붙이는 공간이 되기도 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꼭 사야 할 물건이 없더라도 장날이 되면 구경삼아 장시에 나가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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