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일근/ 언론인

태조 이성계가 무학 대사에게 돼지 같이 보인다고 했다. 방하착(放下着). 내려놓으면 편해진다는 불가의 가르침이다. 대통령이 아닌 군주의 모습 그대로다.

태조 이성계가 무학 대사에게 돼지 같이 보인다고 했다. 무학 대사는 태조에게 부처님 같이 보인다고 맞받았다. 선입견을 갖지 말라는 무학 대사의 준엄한 꾸지람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증세 없는 복지를 주장했다. 유승민은 증세 없는 복지는 없다고 했다. 여론은 유승민의 손을 들어줬다. 유승민은 합리적 보수의 아이콘으로 떠올랐다. 유승민은 야당과 국회법을 합의 처리했다. 국회 정상화의 신호탄이었다. 소위 민생법안 처리의 물꼬가 트였다.

대통령은 야당을 향해 발목을 잡는다고 수차례 비난했다. 야당의 합의를 끌어낼 여건이 조성됐다. 대통령이 유승민을 격려할 것으로 알았다. 상황은 정반대로 흘렀다. 국회법에 대해서는 거부권을 행사했다. 유승민을 배신자로 낙인찍었다. 다음 선거에서 낙선시켜달라고 했다. 정치가 실종된 정치판에 활력을 불러온 유승민에게 상은커녕 벌을 내린 것이다. 대반전이다. 결국 유승민은 사퇴했다.

여의도는 다시 얼어붙었다. 정치 실종이다. 대통령 개인이 느낀 배신감이 정치를 말살한 결과다. 정치가 ‘3라고는 해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민주주의를 하는 상위 20위권이라는 평가도 받았다. 이제는 아니다. 대통령이 국회를 개무시했다. 의원들은 대통령의 한 마디에 얼어붙었다. 사법부에 미치는 대통령의 영향력도 막강하다. 3권 분립이 원칙인 민주주의 국가의 행태는 아니다.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종언을 고했다.

진부하지만 헌법 제1조를 보자. 대한민국은 민주주의공화국이며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국민이 주인임을 강조하고 있다. 국회의원은 주인인 국민으로부터 권력을 위임받아 행사할 수 있다는 것을 명시하고 있다. 물론 대통령도 국민으로부터 위임 받은 권력을 행사할 수 있다. 하지만 어디에도 대통령이 국회와 의원들을 억압하고 통제할 수 있는 권력이 있다는 대목은 없다.

민주주의에 관한 대통령의 인식 부족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다른 민주 국가에 비해 제왕적권력을 갖고 있다고 하나 법의 테두리 안에 있다. 국회의원을 장기판 졸로 취급할 정도의 권력은 아니다. 국회의원을 로 취급하며 막말을 하는 것은 국민을 모독한 것이나 같다. 더욱 다음 선거에서 낙선시켜달라고 까지 했다. 사전 선거운동이다. 현재의 권력으로 부족하니 더 큰 권력을 달라고 하는 주문일 수 있다.

대통령의 제왕적 권력과 단임제에 관한 개헌 필요성은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집권당인 새누리당 내에서도 마찬가지다. 이재오도, 김무성도 개헌의 필요성을 말했다. 물론 박 대통령은 일축했다. 정치인의 정치적 소신을 억누르는 것은 민주주의 국가에서 있을 수도, 있어서도 안 된다. 민주화의 길이 아직 요원한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대통령이 민주화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태조 이성계는 돼지 눈에는 돼지만 보인다는 무학 대사의 무엄한말을 웃으면서 받아들였다. 그리고 역성혁명에 성공, 500년 역사의 기틀을 다졌다. 제왕도 들어야 할 말은 들어야 한다는 역사의 가르침이다. 언론의 대통령을 향한 고언(苦言)은 많다. 인사와 소통이 주다. 반응은 들었는지 안 들었는지 모를 정도다. 모든 것을 혼자 지고 가겠다는 모습이다. “아니 되옵니다고 읍소하는 신하(?)들 조차 배제한다. 대통령이 아닌 군주의 모습 그대로다.

방하착(放下着). 내려놓으면 편해진다는 불가의 가르침이다. 박 대통령의 성공이 대한민국의 성공이다. 다 내려놓고 돼지 같다는 말까지 받아들여 신냉전(新冷戰) 체제의 위기를 넘어 통일의 초석을 다지는 대통령이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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