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위원/ 여민동락공동체 대표 살림꾼

도시인을 농촌으로 보내 농업을 발전시켜라.” 미래학계의 세계적 석학인 짐 데이터(82) 미국 화와이대 교수가 답한 한국사회 미래 생존법이다. 한국의 발전 모델은 외부적 요인에 따른 의존도가 절대적이다. 해외에서 원자재를 수입해 만든 상품을 다시 해외로 수출해서 돈을 버는 구조인 탓이다.

그래서 값싼 석유 시대의 종말, 치명적인 환경 파괴, 일상화된 글로벌 경제 붕괴라는 위험사회에서 더 이상 한국 방식의 경제전략은 통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어디 짐 데이터만의 분석이랴. 식량과 에너지 안보, 생태순환형 살림과 지속가능한 경제를 고민하는 지각있는 사람들에게 농업 농촌 농민을 유일한 돌파구로 보는 건 이미 상식이 되었다.

그렇다면, 방법이 무엇일까. 지면 한계 상 삼농(三農)의 중요성에 대한 철학과 정당성까지 일일이 열거할 수는 없다. 이를 살릴 획기적 수단이 무엇이냐가 중요하다. 있긴 있느냐, 있다면 안 되는 이유는 뭐냐 등 보다 직설적이고 근본적인 접근을 해 봐야 한다. 2001년 농업인구 400만 명, 2011년 농업인구 300만 명, 10년 만에 농업인구가 100만 명이 줄었다. 각종 시책(2010~2014, 농어업인 삶의 질 향상 7대 부문 133개 과제 34.5조 지원)으로 지원한다고 했지만, 희망이 보이지 않는 건 여전하다. 그래서 등장한 게 바로 농민기본소득제다.

모든 농민에게 이것저것 따지지 말고 일정액을 현금으로 지원해서 기본소득을 보전해 주자는 얘기다. 농업의 공익성을 바탕으로 준공무원 예우를 해야 한다는 취지다. 토건 중심의 농촌 지역개발 사업이나 실효성이 의문인 보조사업, 왜곡된 직불금 사업, 그리고 대농 위주의 공장식 농업에 대한 복잡하고 무분별한 지원 정책 등 재정지출 구조를 대대적으로 개선하는 걸 전제로, 단순하고 명쾌하게 300만 농민 전체에게 월급 형식으로 돈을 주자는 뜻이다.

얼핏 들으면 황당하게 느껴질 법하다. 처음엔 필자도 그랬다. 그럴 돈이 어디 있나? 준다면 얼마를 줄 것인가? 다짜고짜 전부 돈을 준다면 도덕적 해이가 생기지 않을까? 농사도 짓지 않으면서 돈만 받아가는 사람들도 생기지 않겠나? 별의 별 논란과 의문이 넘칠 게 분명하다. 대부분은 비현실적이고 낭만적인 주장으로 폄하하기 딱 좋다.

그래서다. 새로운 상상력으로 접근하지 않으면 농민기본소득제는 합리적 정책으로 수긍하기 어렵다. 새로운 상상은 관행적 방식에 대한 뼈아픈 성찰로부터 시작된다. 김대중 정부 시절 농업정책을 총괄했던 김성훈 전 농림부 장관조차 농민기본소득제를 대안으로 제시할 정도다.

2014년 농축산식품 예산만 하더라도 135344억원, 300만 농민에게 1인당 451만원 매달 40만원 가까이 지급할 수 있다는 계산이다. 가구당 농민 2인으로 계산한다 해도 매월 농가당 80여 만 원의 월급을 받게 되는 셈이다. 지자체 차원의 농민 정책자금 5조원까지 포함한다면 기본소득 재원은 어렵지 않게 마련할 수 있다는 보고도 있다.

1%99% 다스리고, 불안이 영혼을 잠식해가고 있는 한국사회에서, 이 정도 기본소득 보전이면 해 볼만 하지 않겠는가. 한국사회 전체가 농업 농촌 농민에 주목할 법 하지 않은가. 특단의 대책 없이 특별한 성취란 있을 수 없다. 도덕적 해이나 부당 수급 등 여러 현실적 문제들은 보완하면서 시정해 가면 될 일이다. 중요한 것은, 농민들에게 월급으로 기본소득을 보장하는 새로운 상상과 전략에 대한 합의다.

농민기본소득은 농업의 재생과 부흥의 기반을 강화할 뿐만 아니라 수요부족에 신음하는 내수경제에도 갈증을 푸는 청신호가 될 것이다. 무엇보다도 구조적 실업과 일자리 창출이라는 시대적 현안을 풀어갈 기회를 마련할 수 있다. 더욱이 청년들을 농촌으로 향하게 할 가장 명쾌하고 유력한 수단이 되지 않겠는가.

‘19세기에는 노예제 폐지를! 20세기에는 보통선거를! 21세기에는 기본소득을!’ 녹색당 하승수 위원장이 얼마 전 펴낸 [나는 국가로부터 배당받을 권리가 있다]는 책에서 밝힌 선언이다. 노예제 폐지도, 모든 사람에게 투표권이 주어지는 보통선거도, 당시에는 전부 실현 불가능한 설익은 꿈에 불과했다. 마치 지금 기본소득제도 주장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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