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봉주/ 전남다문화가족연합센터장

-이제는 건설에서 문화정책으로의 전환이 필요하다-

갓 쓰고 구두신은 홍교(虹橋)

영광읍 도동리 영광천주교와 해룡고등학교 사이 실개천을 이어주고 있는 돌다리가 홍교다.

구름다리라고도 불렸던 홍교는 옛 5일장 장터 입구에 위치해 있었으며 조선시대 때는 나주관아를 오가는 주요 교통로이기도 했다.

도지정 문화재자료 제 190호로 지정된 홍교는 불우헌가, 상춘곡 등을 지은 조선 성종 때의 문신 정극인이 억불숭유(불교를 누르고 유교를 숭상)한 공적을 기리기 위해 왕명으로 이 다리를 놓아 주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영광을 알리는 홍보책자에는 홍교의 사진과 함께 열세장의 석재를 반원으로 이어 붙여 석재를 다룬 솜씨가 우수하고 원형이 잘 보존된 다리로써 1728년에 보수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는 친절한 설명(?)이 달려있다.

하지만 현재 홍교의 모습은 어떤가.

한쪽 구석에 아무렇게나 세워져 있는 표지판이 아니라면 이곳이 영광의 역사가 서린 유서깊은 다리였는지 분간할 수 조차도 없을 만큼 방치되어 있다.

바로 옆에 들어선 낡은 공동주택 담벼락에는 삐죽이 주둥이를 내민 하수파이프가 쉴새없이 생활하수를 쏟아내고 있다.

더 한심스러운 것은 두장의 기반석을 교체하였는데 그 기반석이 참으로 가관이다.

투박한 모양새지만 모가 없어 운치를 더하고 있는 나머지 상판과 비교하여 아래쪽 기단을 받치고 있는 두 장의 기반석은 색상마저 다른 돌을 석재공장에서 반듯하고 깔끔하게 다듬어 받쳐놓음으로써 마치 갓을 쓴 조선사람이 구두를 신고 있는 것 마냥 어색하기 짝이 없다.

그것도 멋이라고 한다면 할 말은 없지만 이 것이 우리 군의 문화재에 대한 인식이라면 글로벌화 되어가는 문화관광에 대비하기 위해서라도 하루빨리 고쳐져야 할 일이다.

고즈넉했던 불갑사

불갑사는 굳이 설명이 필요없는 우리지역의 큰 사찰이다.

인도 승 마라난타 존자가 법성에 당도하면서 최초로 세운 백제불교의 초전법륜지로 전해지고 있는 불갑사는 연실봉 등산로를 비롯하여 상사화 축제 등으로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는 영광 관광의 중심지이기도 하다.

기록에는 고려후기 수백명의 승려가 머물렀던 불교도량으로 절 땅이 10리 밖까지 이어질 만큼 규모가 대단했다고 전해진다.

그래서 였을까?

정유재란 후 중창을 시작으로 데여섯번의 중수가 이어졌는데 고려 당시의 사찰을 재현하려 했던지 얼마 전에도 대규모 중수공사를 벌였다.

절의 규모를 키우고 확대하는 것에 대해 갑론을박을 하자는 것은 아니다.

불갑사 사천왕문 입구에는 수백년된 비자나무 4그루가 있었는데 중수공사를 하면서 무참히 베어지고 말았다.

이 후 고즈넉하고 한가롭게 보였던 절의 모습은 간데없고 빽빽이 들어선 건물들이 도시의 꽉막힌 거리처럼 삭막해 보인다는 것이 출향인들에게 자주 듣는 이야기로 필자만의 느낌은 아닐 것이다.

불갑사의 기쁘고 슬픈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을 비자나무를 베어버린 연유가 큰 바람이 불면 넘어져 사찰을 덮칠 우려가 있어서라니 참으로 할 말이 없다.

나주시의 불회사라는 절에 가면 불갑사 비자나무와 같은 시대에 심어진 비자나무 수 십그루가 아직도 우뚝 서 절의 역사를 자랑하고 있다.

부처님의 자비가 불갑사의 비자나무에는 미치지 못했던 것일까.

버드나무 베어진 연꽃방죽

영광군에서는 원불교 성지 중 하나인 보은강 방죽을 관광지화 한다며 연못을 가로지르는 다리를 놓고 방죽에 연꽃을 심었다.

보은강 방죽은 원불교인들이 방언공사로 간척한 정관평 농지에 물을 대기 위해 강 하구에 만든 연못으로 공사를 끝낸 후 방죽 주변에 심었던 버드나무 수십 그루가 아름드리로 자라 방죽의 운치를 더해 주고 있었다.

그런데 얼마 전 영광군에서 이곳에 연꽃 방죽을 만들면서 방죽 주변에 있던 수십 그루의 버드나무를 베어버렸다.

방죽에 비해 가분수처럼 큰 다리도 주변경관과 어울리지 않고 어색해 보일뿐더러 자연석이 아닌 석산의 깬돌로 만든 날카로운 층계를 비집고 서있는 소나무 몇 그루가 버드나무를 대신하면서 예전 방죽의 아름다운 전경은 사라지고 말았다.

한번 베어진 나무는 다시는 복구할 수 없다.

개발을 하기 전에 사전 검토를 충분히 하지 않은 정책입안자들의 주먹구구식 정책이 돌이킬 수 없는 문화재 훼손을 불러 온 것이다.

지금은 그마저도 관리가 부실하여 연꽃방죽인지 잡초방죽인지 구분이 어려울 만큼 잡초만 무성하게 자라고 있다.

오랏줄에 묶인 부처님

불갑사 해탈교 부근 탑원이라는 곳에는 오랏줄에 묶인 부처님이 처량한 모습으로 앉아있다.

무슨 잘못을 저질렀기에 오랜 시간 포장을 뒤집어 쓴 체 오랏줄에 꽁꽁 묶여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참으로 보기 흉한 모습이다.

가수왕 조용필의 간양록이라는 노래로 유명해진 내산서원도 건물에 대한 설명은 없고 건물 축조에 공헌을 했던 인물에 대한 칭송과 성금을 낸 사람들의 이름만 장황하게 새겨져 있다.

현대의 문화는 스토리 텔링이라는 말을 무색케 하는 이런 모습들이 우리 군의 문화인식일까?

칼럼을 쓰기 위해 몇 곳만 취재를 했는데도 이런 모양이니 나머지 부분을 더 언급해서 뭣할까 하는 자괴감이 든다.

서양사람들은 도로 예정지를 가로 막고 있는 나무를 보호하기 위해 길을 돌린다고 한다.

길을 내고 경관을 꾸민다며 나무를 베어내고, 현지의 분위기를 살린다며 많은 돈을 들여 파키스탄에 까지 가서 돌을 수입해오는 수고를 아끼지 않았던 정책입안자들에게 한마디만 하고 싶다.

문화를 모르는 나라는 발전할 수 없으며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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