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형택/ 영광문화원장

-2015년 전국 재난안전수기 공모작 입상 작품-

불이야! ! 불이야 불!

신나게 들녘을 쏘다니며 놀고있는 우리들의 귓전에 더욱 더 가까이 들려오던 그 외침은 분명히 누구네 집이 불에 타고 있다는 절박한 외침이었다.

가보자! 누구의 말인지는 몰라도 우리들은 모두 마을을 향하여 달리고 있었다. 마을이 점점 가까워지자 연기가 솟는 곳이 우리집 근처라는 생각이 들었고 나는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헛간에다 부엌의 재를 퍼다두고 물을 끼얹지 않았던 일이 생각나서 겁이 덜컥 났다. 아버지 어머니의 화난 모습이 떠올라 달려가기는 해도 오만가지 불안한 마음이 좁은 마을길을 가려서 몇 번씩이나 넘어지면서 집앞에 이르렀다.

온 동네 사람들이 물동이와 도구들을 들고 나와 불을 끄느라 야단들이었으나 아버지는 보이지 않았고 왜 불이 났는지 모르는 이웃집 사람들은 나에게 화재원인을 물어보느라 난리였다.

그러나 난 울먹일 뿐 말을 하지 못했다. 내가 내 죄를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온동네 사람들의 덕택으로 어느 정도 불길이 잡히자 아버지와 작은 댁 형님이 까만 모습을 지붕위에서 내보였는데 쇠스랑과 낫으로 지붕의 거적들을 파헤치며 마지막 불길을 잡고 계셨다. 나는 두려움에 벌벌 떨면서 나에게 불어 닥칠 불길보다 더 무서운 아버지의 불호령을 생각하고 있었다.

마음속으로 한번만 용서해주시면 얼마나 좋을까를 되뇌이면서도 그럴 리가 있겠느냐는 또 다른 생각이 어린 내 가슴을 미어지게 하였다.

이윽고 아버지와 작은 댁 형님께서 검둥이가 된 채 지붕에서 내려오셨다.

형택이란 놈 어디갔냐?”

아빠 저 여기 .”

난 말도 제대로 잇지 못한 채 엉엉 울기 시작했다. 그러나 평상시엔 그렇게도 무섭던 아버지이셨는데 그 상황에선 아무 말씀이 없으셨고 어머니께서는 어느 틈인지 모르게 부엌에서 음식을 준비해 가지고 술상을 차려 내 놓으셨다.

이제, 불처럼 살림도 잘 일어날 모양이다

당숙께서 아버지의 마음을 가라앉히시기 위해 하시는 말씀 같았다. 다행히도 불난 곳이 헛간채여서 살림에는 큰 피해가 없었지만 없는 살림이 걱정이 아닐 수 없었다. 헛간채는 땔감으로 아궁이를 지필적에 다 타고난 재나 부스러기들을 모아두는 곳이다. 거기에다가 부어 놓을때는 항상 허드렛물이나 오줌 등으로 불씨를 확인하고 나와야 한다. 나는 그날 그 확인 작업을 하지 않고 그냥 나왔기 때문에 불씨가 살아나서 불이 난 것이다.

잠시 후 사람들이 하나 둘씩 다들 집으로 돌아가기 시작하자 아버지한테서 들을 호된 꾸중이 더욱 걱정이 되었다.

이제 집에는 부모님과 누나 그리고 나뿐이었고 아버지께서 부르기 전에 마루에 무릎을 꿇고 앉아서 울고만 있었다. 누나도 내 옆에서 같이 벌을 서 주고 있었는데 나를 위해서라는 걸 알았고 잠시 후 아버지께서 몸을 씻고 들어오셨다.

너희들 조심성이 없어 큰일이야 내가 몇 달을 벌어야 지을 수 있는 집을 태워버리다니... 다행히도 외양간 까지 불이 붙지 않아서 천만 다행이다만하셨다.

겁에 질린 나는 아무런 꾸지람이 없자 웬일일까하며 아버지만 쳐다보았다. 나중에 알았지만 아버지께서는 내가 놀라서 혹시라도 도망가 버릴까 염려가 되셨다니 훗날 그 말씀에서 나는 자식에 대한 사랑의 뜨거움을 느낄수가 있었다.

그 때가 초등학교 5학년 때였으니 지금으로부터 50년이 지난 오늘도 나는 그때의 일을 잊지 않고 되새기는 까닭은 무엇 때문일까?

그 어려운 때 아들이 잘못하여 헛간 한 채를 태워버렸어도 아들이 없어질까 걱정되서 꾸짖지도 않으시고 오히려 나를 찾는 눈치였던 아버지가 너무나 그리워진다.

그날의 교훈으로 아내와 같이 출근길을 나설때도 아내보다 더 늦게 나가면서 가스밸브며, 전기스위치 하나에도 신경을 쓴 후 외출하는 나의 습관에 어느새 아내까지 불조심은 물론 모든 안전에 대한 것들은 다 확인해야 집을 나가는 철저한 마음이 자리 잡고 있으니 저 세상에 계신 아버지가 알고 계신다면 얼마나 좋을까

옛날에는 불이 나도 우리집만 타버리고 말았지만 지금은 아파트에 살다보니 나의 부주의 하나가 온 동네 사람들을 불행하게 할 수 있다는 무시무시한 생각을 해보면 몸서리가 쳐지곤 한다. 그러나 날이면 날마다 그 몸서리나는 화재가 일어나고만 있으니 큰일이다.

그래서 늘 아이들에게도 말 보다는 솔선수범하여 무엇보다도 불조심에 앞장서고 있는 것이다. 이것만이 아버지께서 아무 말씀도 없으셨던 50년전 그날 나의 잘못을 뉘우치는 일이라 생각해서이며 나도 그때의 아버지 만큼이나 어렵게 어렵게 마련한 집이기 때문이다.

지금은 삼남매 모두가 각자 가정을 이루고 살고 있지만 수화기를 들어 안부전화를 할적마다 아이들에게 스위치와 가스밸브의 점검을 당부하는 습관이 생활화 되어버렸고 오늘 아침에도 어김없이 수화기를 들어 내외가 다 출근하는 바쁜 일상에도 점검을 확인했었다.

아버님 전기스위치, 가스밸브 다 점검하고 나가는 중입니다

하는 며느리의 음성을 들으면 떨어져 있어도 마음이 편안하게 느껴진다.

지금 생각해보면 물 한번 끼얹지 안해 불씨가 제거되지 못해 아버지께서 몇 달을 고생하셔야 지을 수 있는 헛간채를 불 태워버렸고 그로 인해서 아버지께서는 얼마나 많은 고생을 하셨을까 생각하니 눈물이 왈칵 솟는다.

그래서 항상 마음속으로는 아버님, 아버님 때문에 온 식구가 날마다 불조심을 몸소 실천하면서 살아갑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하며 아버님께 저지른 죄를 뉘우치며 살아가고 있다.

불은 사랑과 정열이라고 하지만 화재는 상처와 잿더미만 남긴다는 의미와 50년전 활활 타오르던 헛간채의 불길을 떠올리면서 젊은 날에 지었던 이라는 시를 꺼내어 읽어본다.

 

 

활활타는 가슴

그대는 늘 청춘이다

 

 

아무 때나

아무곳에나

쏟아붓는 사랑은 아니다

 

 

보기엔 늘 사랑처럼 보이나

죽음과 허무

빈터로 남는 슬픔

그래서,

조심, 조심 노래를 부른다

 

 

순간의 실수

겸손이 아닌 사랑엔

활활타는 가슴이 아니다

비애의 눈물이다

피토하는 몸부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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