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자와 권력(1)-헤라클레이토스와 장자

영광백수 출신/ 광주교육대 교수/ 철학박사

지난 호까지 철학자와 돈에 대해 알아보았다. 그렇다면 철학자와 권력의 관계는 어떠할까? 과연 철학자들은 권력 앞에서 어떻게 행동했을까? 초연한 경우도 있고, 맹렬하게 돌진한 경우도 있다. 또 이도저도 아닌, 그야말로 특이한 경우도 있다.

소아시아 연안의 에페소스에서 명문가의 자손으로 태어난 헤라클레이토스(기원전 535년 무렵-475년 무렵. 희랍의 철학자)는 친구인 헤르모도로스가 에페소스 시에서 추방당하는 것을 보고 나서는, ‘가장 쓸모 있는 인물'을 내쫓은 에페소스 시민들을 비난하기도 했다. 이후 그는 더욱더 대중을 멸시하고, 민주주의에 반대하였다. 그는 부패한 정치적 상황을 치료하는 특효약으로서, 모든 시민이 목을 매어 자살할 것을 권장하기도 하였다. 그리하여 민주주의 국가에서 정치적인 일에 열중하는 대신, 아르테미스(그리스 신화에서 가축과 여성을 수호하는 신. 영어 이름은 다이애나) 성전에서 어린아이들과의 주사위놀이를 더 즐겼다. 결국 그는 인간에 대해 넌더리를 내고, 산 속으로 들어가 풀과 잡초로 끼니를 연명해나갔다.

이것이 그의 건강을 해쳤는데, 그러한 섭생(攝生)으로 말미암아 도리어 온몸이 부어오르는 수종증(水腫症)에 걸리고 말았던 것이다. 하는 수 없이 그는 도시로 다시 돌아왔다. 그러나 의사의 치료를 거부하는 대신, 쇠똥을 몸에 발라 햇볕에 말리는 자신만의 독특한 치료법으로 몸 안의 수분을 증발시켜 보려 했다. 그 결과에 대해서는 두 가지 설이 있다. 하나는 이러한 무지막지한 치료가 그를 비참한 죽음으로 몰고 갔다는 것이다. 또 하나는 더욱 비극적인데, 무지한 개들이 쇠똥을 바르고 누워있는 헤라클레이토스를 시체인 줄 잘못 알아 모조리 먹어치웠다는 것이다.

장자(중국의 도가사상가)는 그의 아내가 죽은 뒤, 관리생활을 그만두고 여러 곳으로 떠돌아다녔다. 그는 세상의 권세나 부귀를 우습게 여겼다. 언젠가 초나라의 위왕이 장자의 명성을 듣고, 그를 재상(宰相-장관급에 해당하는 높은 관직)으로 등용하고자 하였다. 그래서 천금(千金)의 선물과 함께 대부(大夫-대략 정1품에서 종4품까지의 벼슬아치) 두 사람을 보내, 그를 초빙해오도록 했다. 대부들은 석 달을 헤맨 끝에 장자를 찾았다. 마침 그는 물가에서 낚시질을 하고 있었다. 장자는 낚싯대를 잡은 채 돌아보지도 않고, “천금이라면 대단한 돈이며, 또 재상이라고 하면 고관 중의 고관이지요. 그런데 듣자니 초나라 조정에는 죽은 지 3천 년이나 지난, 신령스런 거북이 있다지요? 왕은 그것을 비단으로 잘 싸서 종묘(宗廟-역대 임금과 왕비의 위패를 보관하던 사당)에 모셔두고, 길흉을 점친다고 합니다. 그러나 만일에 그 거북이 정말로 신령스럽다면 죽어 그 껍질로서 사람의 존경을 받겠소, 아니면 살아서 진흙 속에서 꼬리치며 살겠소?” 하고 물었다. 이에 대부가 말하기를, “그야 이를 말입니까? 흙탕물 속에서 자유로이 꼬리를 치며 사는 편이 좋겠지요!” 하였다. 이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장자는 그럼 어서 돌아가시오. 나도 살아서 흙탕물에 꼬리를 젓고 싶은 사람이오.”라고 하는 것이었다.

, 까닥 잘못하여 정변(政變)에 휩쓸린 탓으로, 몸이 죽고 난 후에 찾아오는 인간의 명예는 빈껍데기와 같이 무가치할 뿐이라는 뜻이다. 우리나라의 역사에서도 보면, 역적모의에 가담하였다가 목숨을 잃은 경우도 있고, 파당을 짓고 다니다가 억울하게 죽어간 경우도 있다. 그러므로 진정한 현자(賢者)좌로나 우로나 치우침이 없이, 그 바른 중용의 길을 따라감으로써, 스스로의 목숨을 보전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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