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위원/ 여민동락 공동체 대표 살림꾼, 영광신문 편집위원

요새 역사교과서 논란만 뜬금없는 게 아니다. 언론에서 제대로 알려주지 않고 있는 또 하나의 뜬금없는 박근혜식 폭거가 있다. 바로 국민 삶에 직결되는 복지 축소. 중앙정부가 지방자치단체의 권한을 축소하고 복지시책도 핍박하는 망측한 일을 거침없이 추진하고 있다. 17개 광역자치단체장 앞으로 지방자치단체 유사 중복 사회보장사업 정비 지침을 보낸 지 벌써 두 달이 지났다. 2016년부터 전국 지자체가 자체적으로 실시하고 있는 복지시책 중 대략 25.4%에 해당하는 사업을 전면 금지하란다.

중앙정부 사업과 비슷하거나 겹치고 혹은 별 성과가 없는 사업이라고 엄포를 놨다. 해당사업의 예산은 1조원이며, 이용자는 전국 646만명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대표적인 사업으로는 저소득층 지원사업이 466개로 가장 많고, 노인복지사업과 장애인복지사업이 230, 복지시설 지원사업 160, 지역주민사업 156개 사업 등이다. 노인들에게 제공되는 장수수당과 노인일자리, 집수리, 장애인활동지원, 소년소녀가장 대학입학금 지원, 보육교사 처우 개선 사업 등 사회복지 전 분야에 망라돼 있다.

만일 중앙정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지방자치단체가 신규복지 사업을 강행하면 그 복지시책에 드는 비용만큼 벌금을 주겠다는 시행령도 개정 중이다. 지자체 교부세를 깎겠다는 심보다. 이미 실제 많은 지자체들이 자체적으로 시행하려는 복지사업이 보건복지부와 협의과정에서 반려 혹은 협의라는 이름으로 몇 달 째 보류 중이다. 보통 일이 아니다. 도무지 어떻게 이런 발상과 집행이 가능한지 납득할 수가 없다.

우선, 복지축소를 떠나 지방자치에 대한 기본인식이 잘못됐다. 이미 정착돼 가는 자치를 왜 통치적 수단으로 억압하려 하는가. 중앙정부의 국가복지와 달리 지역실정과 시민적 합의에 바탕해 지자체가 정책적으로 결단한 일은 존중하고 인정해야 마땅한 일이다. 지방자치제 도입 이후 지자체별로 고유한 실정에 맞게 사회복지를 발전시켜온 사실은 국민적 상식이다. 이미 복지거버넌스가 정착단계에 이르러 지역복지라는 이름으로 민과 관이 협력해서 지역복지계획을 수립해온지도 10년이 지났다. 모두 다 중앙정부와 보건복지부가 복지자치의 방향과 지역복지의 구상을 전국적으로 전면화 해 왔다는 얘기다.

지금까지 해 왔던 바대로 국가는 복지국가의 큰 틀을 설계하고, 지방정부는 지역맞춤형 복지사업을 발굴하고 추진하면 될 일이다. 오히려 그 방향과 구상에 내실을 다지고, 실질적인 자치를 이룰 수 있도록 독려하고 격려했어야 옳았다. 비효율과 중복 유사에 대한 판단과 구조조정도 지자체의 몫이다. 중복이라 해도 더 높은 복지를 위해 필요한 일이 있을 수 있고, 유사라 해도 주민들의 의사와 재정여건에 맞춰 삶의 질 차원에서 지역사회에서 판단한 결과일 수 있다. 그리고 중복 유사의 대부분은 중앙정부의 복지부족을 보충하는 사업이 대부분이라는 사실도 알아야 한다. 그런데 이를 일괄적으로 평점을 매겨 지자체에 통보하고 교부세로 통제하겠다는 발상이야말로 유신시대로의 회귀이자 자치시대에 대한 부정 아닌가. 무엇보다도 법에도 없는 일을 하려는 게 문제다. 헌법, 지방자치법, 사회보장기본법, 사회보장급여법 등 대부분의 복지 관련법과 충돌한다. 헌법과 지방자치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지자체 복지권한을 위배하는 처사이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 지자체와 지방의회가 헌법과 법률 그리고 조례에 근거하고, 시민과 행정이 거버넌스를 통해 만들어 가는 지역맞춤형 복지사업을 어떤 근거로 축소하라 폐지하라 할 수 있다는 말인가. 나아가 지자체에 묻고 의논하는 과정도 빠졌다. 복지현장도 소외시켰다. 지자체 뿐만 아니라 사회복지계가 이구동성으로 반대하는 이유다. 박근혜 정부가 하는 일이 매번 이렇게 일방적이다. 생뚱맞은 역사교과서 논쟁 탓에 시끄러운 종편에 지쳐가고 있는 마당인데, 이제는 자치도 부정하고 복지도 공격한다.

국민이 피곤하다. 마냥 당하고만 살 수는 없는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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