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봉주/ 전남다문확가족지원센터연합회장

일본 천황(日王)의 인간선언

2차 세계대전, 일본의 무조건 항복으로 일본에 진주한 점령군 사령관 맥아더는 본격적으로 일본을 개조하기 시작했다.

당시 중립국이자 농업국가였던 스위스를 본 떠 동양의 스위스를 만들겠다며 야심차게 추진했던 맥아더의 계획은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하면서 물거품이 되고 말지만 그의 일본 개조 프로그램은 일본인들의 획일화된 의식의 변화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일본개조의 첫 번째 작업은 히로이토 천황의 인간선언이었다.

194611, 히로이토 천황(天皇)이 맥아더의 손에 이끌려 인간선언을 하게 된다.

인간인 왕이 국민 앞에 나와 자신이 인간임을 선언한 당연한 내용이었으나 당시 패전으로 허탈감에 빠져 있던 일본국민들에게 엄청난 혼란을 몰고 온 대 사건이었다.

태양신 아마테라스의 후손이며 만세일계(萬世一系)로 추앙을 받아 온 덴노가 노타이 차림에 헐렁한 군복을 걸친 외국인 쇼군 앞에서 굴욕적으로 공표한 인간선언은 일본인들의 마지막 남은 전의(戰意)마저 깡그리 무너뜨리고 말았기 때문이다.

1854, 미국의 페리 제독에 의해 강제로 개항을 한 일본은 이후 한바츠를 중심으로 연대한 하급 부시들이 권력을 쟁취하면서 군군주의로 치닫게 되는데 자신들의 권력을 지키기 위한 국민통치의 한 수단으로써 일왕의 신격화 교육을 시작했다.

군국주의 군부는 전국 어디에서든 똑 같은 내용의 단일화된 교육을 통해 왕을 신격화하는데성공을 하였으며 종국에는 덴노 헤이카, 반자이를 외치며 목숨을 초개처럼 버리는 카미가제가 만들어 지기까지 국민들의 오도된 충성을 유도할 수 있었다.

전세가 기울었는데도 본토사수를 외치며 마지막까지 목숨을 바쳐 덴노를 지키겠다고 맹세하는 일본인들의 악바리 근성이 획일화된 교육에서 비롯됐음을 간파한 맥아더는 일왕으로 하여금 스스로 인간임을 선언케 하고 군군주의의 선전수단이자 세뇌교재였던 단일 교과서를 폐지해 버린다.

일본인들이 그 때까지 신으로 받들었던 덴노가 죽음 앞에 평등한 인간이라는 것을 몰랐을 리는 없었다.

단지 군부의 의도된 획일화 교육을 통해 어느 틈엔가 그들의 마음속에는 덴노가 신으로 자리를 잡아가면서 일본서기나 고사기 등의 설화집을 역사적 사실로 받아들이게 되었던 것이다.

편협하고 단일화된 교육이 무의식의 본능에 따라 행동하는 개미나 벌처럼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정신세계를 획일화하고 집단화 시킬 수 있는 지를 보여주는 좋은 예가 아닐 수 없다.

민주국가는 다양한 의견이 상존하는 사회

프랑스에는 한 사람의 대통령과 56백만 명의 왕이 사는 나라라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인류 역사상 최초의 시민혁명을 통해 왕정을 타도하고 시민국가를 수립했을 만큼 국민 개개인의 시민의식이나 개성이 강한 민족적 특성을 비유한 말일 수도 있겠지만 그만큼 다양한 의견들이 분출되고 또 수용되는 다양성의 나라라는 의미라고도 하겠다.

반만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우리나라의 역사가 세계 어느나라의 역사에 견주어 봐도 뒤떨어지지 않을 만큼 자랑스럽고 유구하다는 것은 우리 국민 어느 누구도 부인하지 않는 사실이다.

그러나 그 자랑스러운 역사를 놓고 요즘 정치권에서 뜨거운 논쟁을 벌이는 모습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하나의 역사를 두고서 올바른 역사교육을 주장하는 여당이 교과서의 국정화를 추진하는 반면 검인정 교과서를 주장하는 야당이 장외투쟁으로 나가는 등 정치권이 극한 대립을 하고 있는 가운데 국론마저 두 갈래로 나뉘어져 있는 상황이다.

정치권은 물론 역사학계에서도 심한 대립각을 보이고 있는 근현대사는 다양한 시각의 기록이 남아있는 가까운 역사이기 때문에 역사를 바라보는 개개인의 시각차는 물론 당시의 환경이나 처했던 여건에 따라 서로 다른 견해를 갖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교과서를 국정화함으로써 자칫 자신들의 숨기고 싶은 역사를 호도하려 한다는 의혹을 산다거나, 근현대사의 주역들을 죄악시하며 좌편향적인 교육을 주장하는 것 역시 국가발전을 위한 좋은 선택이 아님을 우리는 명심해야 할 일이다.

우리 국민의식은 선진국 수준

우리 국민의 의식수준은 선진국 수준에 결코 뒤지지 않는다.

2-30대의 젊은 층을 대상으로 한 역대 대통령 선호도 조사에서 5.16 군사쿠테타를 일으키고 유신독재를 했다며 재야세력으로부터 비판을 받고 있는 박정희 전 대통령이 항상 수위를 차지하고 있다거나, 목함지뢰 사건으로 촉발된 북한의 전시상황 선포에도 불구하고 1980년 서울 불바다 협박사건 때처럼 부화뇌동하지 않음으로써 정부로 하여금 대북 협상력을 높이는데 큰 힘을 실어 주었을 만큼 우리 국민의 의식은 대단히 성숙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국정교과서로 국민의식을 획일화 시킨다거나 이념편향교육을 통한 선전선동에 이용하기 보다는 다양한 의견을 한데 모아 최선을 도출해 내는 정치권의 노력이 더 필요하다고 하겠다.

2차대전에서 패망한 일본인들의 의식개조를 위해 맥아더가 시도한 첫 번째 작업이 일본의 단일 교과서 폐지였다는 것을 우리는 타산지석으로 삼을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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