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의 인문학적 이야기

철학자 루트비히 포이어바흐는 인간이란 요컨대 먹는 존재이다라 하였습니다

그래서 이번호는 쌀밥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2015년 기준으로 우리국민의 1인당 1년의 쌀 소비량은 70kg 밖에 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1970년대는 1인당 쌀 소비량은 무려 140~150 kg 으로서 식생활의 절대적인 비율이 쌀이 현저하게 높은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우리의 식생활은 바뀌어도 너무 급격하게 바뀌면서 서구화 되었습니다.

서구는 지나친 육식과 정크푸드의 범람으로 비만과 성인병으로 기우뚱 거리고 있어, 슬로푸드의 천국인 한국이나 일본의 전통적인 방법의 식단에서 그 대안을 찾고자 꾸준히 노력하고 주목을 하고 있습니다.

된장과 간장 고추자의 콩으로 대변되는 발효식품과 갖은 야채의 보고인 김치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식품의 장점이며 서구가 부러워하는 건강한 대안식단입니다.

우리의 식단은 따스한 밥공기가 있으며 그 밥에는 인문학적인 문화와 이야기가 있습니다.

우리는 예전에 아침인사가 진지 잡수셨습니까?” 로 인사를 할 만큼 밥은 인정이었고 이웃에 대한 배려심이 있습니다.

지금도 우리는 밥먹읍시다!” “뭐 먹을까?” “언제 밥한번 먹지!” 하는 인사의 정겨움은 밥은 이웃이고 친구이고 최고의 인정을 표현하기 때문 입니다

그 밥이 피자로 바뀌고 햄버거로 바뀌고 또한 치킨조각으로 바뀌면서 밥의 인문학이 한국적인 정서에서 서구적인 정서로 바뀌는 모순을 스스럼없이 담고 있습니다.

우리의 밥문화의 중심에는 쌀이 있고 쌀은 우리 조상의 농경문화와 함께 삶의 격이 담겨져 있는 인문학 바로 그 자체입니다.

충북 소로리에서는 15,000년전으로 추정되는 볍씨가 출토되는 것으로 보아 우리민족과 쌀문화는 오랜역사와 더불어 식량의 근간 이었고 생명 그 자체였습니다.

우리민족은 또한 우수한 농업기술을 바탕과 특유의 부지런함은 산악지대의 척박한 땅에 다락논을 억척같이 일구고 벼를 심었으며 높은 생산성을 발휘하였습니다.

일제시대 일제와 탐관주구들에게 땅을 뺏긴뒤에 만주에 정착하여 중국인과 차별화한 농법으로 논을 풀고 품질좋은 쌀생산에 그 집념의 민족성은 쌀이 가지는 생명의 끈기와 우수한 영양을 쌀에서 얻는 지혜를 간파하였기 때문입니다.

서구적 문화와 식습관이 빠르게 자리를 잡으면서 우리 젊은이들은 쌀에 대한 흥미를 잃어가고 외면하는 현실을 보면서 쌀밥이 주는 가치와 건강한 먹거리로 없어서는 안될 중요한 식량안보 자원으로 새롭게 조명하고 우리식의 밥을 적극 권장하여야 합니다.

문제는 우리가 매스컴을 통한 부적절한 탄수화물 괴담으로부터 벗어나는 길입니다.

탄수화물의 과잉섭취가 비만의 주된 요인이라는 이런 오해로부터 쌀이 극복하는길은 우리가 지나치게 쌀의 순기능 역할의 껍질을 벗겨 하얀쌀을 선호하는데 기인합니다.

쌀눈마저 제거된 하얀쌀 만들기는 결국 위와 머리에서 느끼지 못하게 하는 과식이라는 함정에 빠지게 되고 또한 영양 불균형을 초래하여 비만과 성인병의 코스로 갈 수 밖에 없습니다.

과거에는 벼를 어떻게 정미 하였을까요?

물레방아나 디딜방아 연자방아에서 정미를 하는 쌀은 지금처럼 이렇게 하얀쌀을 만들래야 만들수가 없었고 현미상태에서 조금은 거친 밥을 먹었기에 껍질에 붙어있는 최상의 영양분과 탄수화물의 섭취가 건강을 담보 했던것입니다.

지나치게 깍아내린 쌀은 탄수화물 덩어리가 될 수밖에 없고 그 탄수화물이 지금 밀가루 소금과 더불어 건강위험의 삼백이라고 일컬어지는 기피성 식품이 되고만 아이러니가 있습니다.

어머니가 해주던 솥에서 익는 그 따스한 쌀밥... 무쇠솥뚜떵 사이로 흐르는 쌀물이 흐르는 모습은 우리 부엌의 문화였고 쌀의 인문학이 절정을 이루는 곳 이었습니다

아침 드셨는지요?”

포근한 인정이 있는 밥인사가 바로 쌀 이였기에 민족의 소중한 자산인 쌀을 더 발전 시키고 우리 농촌에서 쌀을 일구는 농부님들의 아름다운 손을 한번 더 잡아주는 추수절기입니다.

저작권자 © 영광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