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병학/ 새암푸드먼트 본부장

아이들의 웃음을 언제 들어보았는지요?

아이들의 밝고 명량하고 깨알같은 웃음을 언제적 이야기가 되었을까요?

과연 기성세대는 10년 후 아니 20년 후 그리고 그 먼 훗날까지 우리는 자랑스럽게 기억 될 수 있는 살맛나는 나라, 자랑스런 나라, 아름다운 환경이 넘치는 나라를 소중하게 남기고 가노라고 역사책에 당당하게 남길 수 있을까요?

아이들의 숫자는 점점 줄어들어 학교는 적막강산이 되어 젖내나는 아이들의 숨소리가 멎어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현상은 미래가 점점 줄어들고 축소되어 가고 있음을 알아야 하고, 줄어든 아이들이 미래사회를 지탱해야 할 몫이 가중되어 무거운 고난의 짐을 지고 휘청이게 됨을 직시 하여야 합니다.

지금 우리는 엄청난 죄를 남기고 가면서 부끄러움조차 느끼지 못하는 지독한 망각에 중독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조상들이 아름답게 물려준 자연환경을 성장과 개발이라는 미명하에 부수고 깨고 짓밟고 삽질하여 만신창이의 국토를 후손들에게 떠넘기고 그들이 살아가야 할 먼 훗날까지 가혹하고 고통스런 악성 부채를 지게하며, 그들이 짊어져야 할 폐허가 될 미래를 아무 죄의식조차 느끼지 않고 있습니다.

남을 이겨야 한다는 사고는 이웃의 배려는 없고 오직 살벌한 경쟁을 통한 나만이 최상의 결과를 얻어야 한다는 파괴적 인격관의 올가미를 씌어주고 있습니다.

이런 파괴적 시스템의 작동은 우리 아이들이 소중하게 여기고 살아야 할 그들의 세계의 나침판의 방향을 잃게 하고 있습니다.

아이들은 기계속에 터미네이터롤 키우는 과정으로 전락이 되며, 아이들의 웃음은 간곳이 없고 그늘진 얼굴엔 무거운 가방만이 양어깨를 누르고 있습니다.

컴퓨터와 스마트폰에 묻혀버린 아이들의 놀이는 개인화되고 그 개인화는 결국 폭력화되어 양심과 도덕과 원칙이 없는 사회가 되고, 인간성을 상실한 구조위에서 인격은 기계화 되어 버렸습니다.

일찍이 인도의 마하트마 간디는 나라가 망하는 징조를 일곱개로 구분하고 이런 세상을 만들면 나라는 망한다고 하였습니다.

원칙없는 정치, 노동없는 부자의 증가, 양심이 존재하지 않는 쾌락, 인격이 부재한 교육, 도덕성이 없는 경제, 인간성을 상실한 과학, 희생을 모르는 종교....

과연 우리는 이 일곱가지에서 얼마나 벗어나 있는지요.

그래서 우리 아이들의 미래, 미래를 희망있게 물려주지 않는 현실속에 일말의 양심의 가책조차 느끼지 않으며 허우적 거리고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 미래세대 들에게 과연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요?

내편과 네편 이라는 편가르기 속에 양보와 타협이 없고 이웃의 아픔은 자본의 굴기속에 귀찮은 영역으로 여기고 스스로가 담장 속에서 위리안치 되고 있습니다.

운동회를 통해 협동심을 키워왔던 우리는 도시락을 나누며 사람되는 배려심을 먼저 키웠었고 마을의 잔치와 장례식은 마을이 모두 함께 치러야 할 공동체의 텃밭 이었습니다.

물질이 사람에 앞서고 자본이 세상을 지배 하는 현실속에 파렴치하게 미래마저 우리가 저당잡아 후손들에게 물려주는 우를 범하고 있습니다.

우리 후손들은 뭘 어떻게 하라구요!

그들은 앞선세대들의 횡포속에 망가진 땅 망가진 사회를 이어받아 스스로 고통의 족쇄가 되어 눈물을 흘려야 하는지 묻고 싶을 뿐입니다.

성장이 대세라는 경제적 시각을 버리고 공존과 나눔 그리고 보존의 시스템으로 전환 하여 망가진 자연환경을 치유하고 그 치유기간이 오랜 시간이 소요되는데 미안해하고 후세들에게 철저한 반성과 사과의 메시지를 남겨야 합니다.

우리는 좀 더 불편해 지더라도 후손들을 위해 감내하여야 합니다.

우리가 불편함에 익숙할 때 환경은 가벼워지고 자연은 새싹을 틔울 준비를 할 겁니다.

네가 하지 않으면 내가 해야하고 내가 하지 않으면 후손이 불행속에 살아야 하고 그 불행은 사람사는 세상이 존재하지 않는 파괴의 잿더미가 될것임을 인식 하여야 합니다.

절대로 행복 할 수 없는 우리 후손들, 그들의 먼 훗날을 위해 여기서 스톱해야 합니다.

더 이상 우리 미래세대인 후손들에게 빚지지 않는 마음을 지금부터 시작을 하여야 하고 후손들에게 믿음을 보여야 할 때입니다.

경쟁은 유연하게 하여야 하고 탐욕의 경제를 나눔의 경제로, 일등주의 교육을 사람이 중요시 여기는 교육으로, 덩치를 키우는 종교에서 희생과 작은 공동체의 종교로, 과학은 인간을 위한 참다운 삶의 질을 향상 시키는 과학으로 나가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 후손들이 숨통이 트일겁니다.

그래도 늦었습니다. 더 늦기전에 새로운 시작을 하여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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