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길/ 사단법인 희망도레미, 사전의료의향서 지원단장

가을, 아름다운 단풍의 계절이다. 영광의 불갑사나 담양 백양사 단풍만이 아니라 주변의 산과 들이 온통 아름답다. 꽃피고 새들 노래하는 봄철엔 모든 사람이 시인이 되고 낙엽이 지는 가을에는 철학자가 된다는 말이 있다. 심미적 감상을 풍요롭게 하는 좋은 계절이라는 뜻이리라.

당연한 이야기지만 단풍을 포함한 낙엽은 그 자체로 생명현상의 마지막 모습이다. 일몰 직전의 저녁노을이 황홀하고 아름다운 것처럼 마무리로서의 단풍 또한 그렇게 아름답다. 아름다운 마무리 - 대자연의 조화이자 신의 섭리에 다름 아닐 것이다.

인간에게 자연 현상은 삶의 모델이고 교훈이다. 우리의 삶도 아름답고 품위 있게 마무리 할 수 있다는, 그런 삶을 살아야 한다는 가르침을 단풍을 통해 일러주는 것은 아닐까. 다만 우리에게는 눈에 보이는 색상이며 모양으로서의 아름다움이 아닌, 인간적 덕성이나 이웃과 세상을 위해 남기는 가치로서의 그것을 주문함일 것이다.

요즘의 절기처럼 인생의 가을이 깊어지면, 자신의 단풍이나 석양을 어떤 모습으로 세상에 드러내고 마무리할지 생각해 볼 일이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오래오래 사는 것이 사람들의 소원이겠으나, 그렇다고 노랗거나 붉게 물들어가는 인생길의 잎사귀에 푸른색을 덧칠해서 수명을 늘릴 수는 없는 일 아니겠는가.

내생명이 최후 단계에 이르면, 심폐소생술이나 인위적 영양공급 등의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받지 않겠다는 의사표시인 사전의료의향서양식을 무료로 공급하기 시작한 지 한 해가 가까워지고 있다. 전국적으로 많은 분들이 홈페이지를 통해 양식을 인쇄해서 활용하거나 전화(02-393-9987)로 요청한다. 그 의료적, 법률적, 사회적 성격에 대한 문의도 이어지고 있다.

너 나 없이 언젠가는 마주해야 할 최후의 길에서 의미 없는 연명시술로 고통 받는 일은 없어야 하겠다. 가정과 사회의 부담을 줄이면서 존엄한 마무리를 할 수 있도록 건강할 때 미리 사전의료의향서를 작성해두자. 그 필요성과 작성방법, 보관과 활용에 관한 이야기는 사전의료의향서 지원단의 홈페이지(www.hope9988.com)에서 읽을 수 있다.

사전의료의향서를 작성하고 나면 주변의 사람들은 물론 밤하늘의 달과 별도 한층 소중하고 아름답게 느껴진다고 한다. 하물며 깊어가는 가을, 곳곳의 단풍은 얼마나 아름다울 것인가. ‘사전의료의향서를 써두면, 100세 장수시대에 우리 사회의 많은 장노년층이 일상의 삶을 보다 품위 있게 살아갈 수 있으리라 믿는다. 봄의 시인처럼, 가을의 철학자처럼.

저작권자 © 영광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