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일환/ 광주우리들병원 행정원장

2008년 개봉한 영화 헝거(Hunger)’는 스티브 매퀸의 감독 데뷔작으로 메이즈 왕립 교도소에서 단식 투쟁을 벌이다 사망한 바비 샌즈의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작품이다. 바비 샌즈는 피의 일요일에 체포되어 정치범 처우 개선을 요구하며 66일 동안 단식투쟁을 했다. 단식 중에 하원의원 보궐선거에 옥중에서 출마해 당선되었다. 그러나 철의 여인 마거릿 대처 수상은 대화를 거부하며 바비 샌즈의 죽음을 방관했다. 결국 바비 샌즈는 19815527세의 젊은 나이로 숨졌다.

영국의 자치권 회수에 저항하며 북아일랜드 시민들은 평화행진을 했다. 그러나 영국 육군 공수부대가 무차별 총격을 가하여 13명이 죽고 17명이 부상하는 피의 일요일사건이 일어났다. 1969년부터 1998년까지 30년 동안 3700여 명이 목숨을 잃었다. 바비 샌즈는 한 마리의 종달새를 가둘 수는 있다. 그러나 그 종달새의 노래까지 가둘 순 없다라고 옥중에서 한 줄의 자작시를 남겼다.

박관현은 1953년 전남 영광에서 태어나서 1978년 전남대 법대에 차석으로 입학했다. 전남대 사회조사연구회를 창립했고 들불야학의 강학으로 활동했다. 19804월 캐치플레이 민주화의 새벽기관차로 전남대 총학생회장으로 당선됐다. 19805월 서울지역 학생들은 신군부의 시국수습방안을 기대하며 해산했으나 광주지역 학생들은 시위를 계속했다. 19805월 전두환 퇴진과 민주화를 요구하는 투쟁의 중심에 박관현이 있었다.

제가 전남대학교 총학생회장 박관현이올시다. ~ 우리가 민족민주화 횃불대행진을 하는 것은 이 나라 민주주의의 꽃을 피우고, 이 횃불과 같은 열기를 우리 가슴속에 간직하면서 우리 민족의 함성을 수습하여 남북통일을 이룩하자는 뜻이며, 꺼지지 않는 횃불처럼 우리 민족의 열정을 온 누리에 밝히자는 뜻입니다.’ 1980516일 도청 앞 분수대에서 박관현은 연설하고 계엄이 확대될 경우 도청 앞으로 모이자고 약속했다.

1980518일 비상계엄이 전국으로 확대되자 박관현은 2년 동안 검거를 피해 여수·서울 등에서 피신했다. 19824월 체포되어 내란 중요 임무 종사자죄목으로 징역 5년형을 선고받고 광주교도소에 수감됐다. 광주교도소에는 배식되는 식사에 나팔꽃 씨앗이 포함되어 있었다. 재소자들은 나팔꽃 씨앗을 제거해 줄 것을 요구했다.

광주교도소에서는 인체에 무해하다고 재소자의 요구를 묵살했다. 동의보감에는 나팔꽃 씨앗이 견우자(牽牛子)라고 기록돼 있고 다량을 복용할 경우 중독이 나타난다고 했다. 박관현은 5·18 진상 규명과 재소자의 처우 개선을 요구하며 40일 동안 단식투쟁을 전개하다가 1982101229살의 젊은 나이로 숨졌다.

당신의 죽음으로 박관현 동지여 우스운 당신 한 사람의 죽음으로 만 사람이 살게 되었습니다. 노예이기를 거부하고 싸우는 인간으로 살게 되었습니다.” 박관현의 무덤 앞에 김남주 시인은 한 사람의 죽음으로라는 시를 바쳤다. 박관현은 영광군 불갑에 묻혔다가 광주 망월동 5·18 묘지로 옮겨졌다. 새벽이 지나고 잠깐 피었다가 이내 시들어 버리는 나팔꽃처럼 새벽기관차 박관현은 33년 전에 서럽게 떨어졌다. 박관현이 못다 이룬 민주화와 남북통일의 횃불이 온 누리에 밝혀지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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