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행계약서

박 혜 숙

아직도 내게 슬픔이 우두커니 남아있어요 그날을 생각하자니 어느새 흐려진 안개 빈 밤을 오가는 날은 어디로 가야만하나 어둠의 갈 곳 모르고 외로워 헤매는 미로~ 누가 나와 같이 함께 울어줄 사람 있나요 누가 나와 같이 함께 따뜻한 동행이 될까 사랑하고 싶어요. 빈 가슴 채울 때까지 사랑하고 싶어요. 사랑 있는 날까지

이 글은 80년대 유명가수 노래의 가사이다. 제목은 동행이다. 낭만적인 음성의 남자 가수가 불러서 많은 여성들의 인기를 얻었다. 지금은 외롭지만 함께 같이 갈 누군가를 찾는다는 내용이 모든 이들에게 호감을 주었으리라.

새해의 시작 평소 알고 지내던 지인들에게 문자를 보내고 덕담과 인사를 나누는 것은 어제처럼 오늘도 함께 가자는 고백이자 애정표현일 것이다. 나이를 한 살 더 먹어갈수록 누군가를 포용하고 이해하면서 함께 가는 것이 생각보다 쉽지 않음을 느낀다. 그래서 옛말에 나이 값을 해라’ ‘나이 값을 못 한다 라는 속담들이 생겨난 듯하다. 누군가를 사랑하고 이해하고 좋은 관계를 위해서는 서로에 노력이 필요하다. 그러나 그 노력은 어느 정도 서로에게 수평적이고 인간적인 배려와 예의가 동반되었을 때 가능해진다. 언제부터인가 우리주위에는 이라는 단어가 단순한 병렬이 아닌 '슈퍼 갑, 을의 눈물, 갑 질' 이런 용어들로 사용되고 있고 이제는 낯설지가 않다. '갑을'이라는 거, 사실상 계약서상의 상대방을 지칭하는 법률용어일 뿐인데 어느 틈엔가 강자와 약자를 상징하는 권력관계 용어처럼 되어버렸다. 그냥 웃고 넘어 갈수 없는 여러 사건들이 떠오른다. 어느 백화점 사모님 사건, 우유대리점의 횡포, 아파트경비원과 입주민들과의 사건들의 뉴스 첫머리에는 그 갑과 을이라는 단어가 있었다. 주민의 성화에 못 이겨서 분신하신 분도 계셨고, 얼마 전에 택배 받는 문제 때문에 살인사건까지 벌어졌고. 경비원분들이 꼬마들한테까지 90도 인사하는 사진으로 논란거리도 되었다. 우리 지역에서 일어난 일은 아니지만 정말 안타까운 일이다. ‘세상에 이런 일이에나 나올 법한 기가 막힌 일이 우리 사회에서 버젓이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일이 발생되면 경비원분들도 상처가 크겠지만 어쩌면 그 아파트에 거주하시는 선량한 주민들도 더 큰 피해를 입게 된다. 일부 횡포를 부리는 분들 때문에 다수의 선량한 주민들도 마음에 상처를 받지 않을까? 이런 마음들이 모여서인지 작년 말 성북구의 한 아파트에서 갑을계약서 대신 동행계약서를 도입해서 화제가 되었다. 아파트 내 경비원들과의 계약서에 '갑을'이 아닌 '동행'으로 표시를 했다고 한다. 계약서 명칭 하나 바꾼다고 해서 단지 분위기가 정말 많이 달라졌을까 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호칭에서 오는 위력은 클 것이다. 이런 주민들의 마음이 전해져서 성북구는 관리 도급 계약을 체결하면서 위·수탁 계약서에 ·이라는 명칭 대신 함께 행복하자는 의미의 ·으로 체결한 것과 관련해 이를 확대, 제도화하기로 했다. 이를 위해 성북구는 산하기관을 포함해 시설의 사용, 관리에 관한 위·수탁 계약(협약), 업무 협약, 근로 계약 등에 대한 전수조사를 진행하는 한편 동행계약서 체결을 체계적으로 제도화하기 위해 동행계약서의 표준안도 마련했다. 동행계약서의 첫 사례로는 교통지도과와 성북구도시관리공단이 길음동문화복합미디어센터 건립부지의 공영주차장 관리에 대한 위·수탁 협약서를 동행(同幸)’으로 계약을 체결했다.

주민 스스로 사회적 문제에 대해 관심을 갖고, 상생하고자 하는 마음이 모여 출발한 걸음을 구청이 곁에서 호응하고 같은 방향으로 함께 걷고자 노력한데에 큰 의미가 있는 것 같다.

동행은 함께 행복하자는행복할 행자가 들어간다. 그래서 함께 걷고 더불어 행복하자는 뜻이 있다. 혹시나 누군가에서 갑을이 되어있지는 않는지 돌아보는 한해가 되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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