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희/ 여민동락 살림꾼

1년 전의 일이다. 79세 노인이 통장에 잔고 27원을 남긴 채 5평 단칸방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다섯 명의 자녀를 둔 노인은 폐결핵으로 앓고 있었지만 변변한 의료비 지원도 받지 못하고 쓸쓸한 죽음을 맞았다. 자녀가 다섯이나 되는데 아무도 시신 수습에 나서지 않아 결국 노인은 무연고 처리됐다. 살아서도 죽어서도 비참했던 노인의 운명은 충격과 슬픔을 자아냈다. 국민기초생활수급자였던 노인은 생계급여와 주거급여를 받고 있었고 기초연금까지 포함해 매달 499,290원을 수령했다. 20151인 가구 기초생활수급비는 주거급여 110,003원과 생계급여 389,285원을 합한 금액으로 총 499,288원이다. 여기에 기초연금까지 받으면 699,288원이 되어야 했지만, 노인은 기초생활수급자가 기초연금을 받으면 중복급여가 된다는 이유로 기초연금을 삭감당했다. 노인은 약 49만원 가량의 돈 중 30만원 넘는 돈을 의료비로 지출해왔고, 나머지 금액으로 하루하루를 버텼다. 복지 전문가들은 이 노인이 기초연금을 수령했다면 통장에 27원만을 남긴 채 쓸쓸한 최후를 맞지 않았을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기초연금의 제일 중요한 취지는 노인 빈곤 해소다. 하지만 기초생활수급비와의 중복 급여를 피한다는 이유로 기초연금 수급을 제한함에 따라 가난한 노인이 아예 혜택을 보지 못하는 현장의 혼란이 속출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선거 당시 기초연금 20만원 일괄지급을 약속했으나 당선 이후 말을 바꿨다. 기초생활수급 노인 40만명이 매달 25일 기초연금을 받고 다음달 20일 기초생활보장 생계급여에서 같은 금액을 삭감당했다.

기초생활수급 노인들에게 기초연금을 지급했다가 다시 빼앗는 일명 줬다 뺐는기초연금은 박근혜 정부의 공약 실종의 정치가 빚어낸 대표적인 정책 실패작이다. 기초연금만이 아니다. 3~5세 무상보육을 약속하며 누리과정을 확대했지만 예산을 지급하지 않아 보육대란을 빚었다. 고등학교 무상교육 실시는 세수 확보가 어렵다는 이유로 이행이 불투명하고, 4대 중증질환 진료비를 국가에서 전액 부담하겠다는 공약도 실행 계획이 없는 상태다.

19대 국회의 출발은 복지였다. 무상급식 논란으로 촉발된 복지 논쟁은 국회의원 선거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공약 이행 수준은 낙제점이다. 집권 여당인 새누리당의 총선 공약 이행 여부에 대한 평가를 보면 이행되지 않은 공약 560, 축소 이행되거나 평가 유보된 상태의 공약이 27, 이행된 공약은 33개다.(참여연대-뉴스타파 공동조사) 특히 복지 분야 공약은 14개 중 2개만 이행했을 뿐 나머지는 축소되거나 이행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당선을 위해 공약을 남발한 것도 문제지만 이를 책임지려는 자세와 대책을 보여주지 않은 것은 국민을 우습게 아는 처사가 아니고 무엇인가.

증세 없는 복지를 천명한 박근혜 정부는 저 부담-저 복지기조를 유지해왔다. 이는 애당초 보편적 복지 정책 확대를 약속했던 대국민 공약과는 모순될 수 밖에 없다. 복지를 확대하기 위해서는 증세를 통한 재원 마련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정책 기조와 배치되는 정책 공약은 처음부터 실행 여부가 불투명한 대국민 사기극이었다는 비난을 피할 수 없다.

이제 다음달이면 20대 국회의원 선거가 실시된다. 새누리당의 독주와 야권의 분열 등 정치권의 이합집산으로 정국은 여전히 혼탁하다. 뉴스를 보면 여의도의 공천 불협화음과 정치인들의 탈당과 입당 관련 기사들, 선거 판세를 둘러싼 온갖 정치공학적 해석들이 난무한다. 이대로라면 선거가 정책과 공약 대신 정쟁만 치열한 그들만의 리그로 전락할 가능성이 높다. 정치인들의 말 바꾸기와 책임 회피의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이 떠안는다. 선거는 정치에서 유일하게 국민이 행세를 할 수 있는 민주주의 꽃 아닌가. 이번에는 제대로 정산을 해야 한다. 또다시 공약 실종 정치를 되풀이할 수는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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