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훈/ 전 사)한농연 영광군연합회장, 대추귀말자연학교장

이세돌 9단이 인공지능 알파고에게 패한 사건의 전모

지난 1주일 지구라는 행성은 바둑계의 신성 이세돌 9단과 인공지능의 지존 알파고와의 싸움에 정신 줄을 놓고 있었다. 결과는 4:1, 이세돌 9단의 패배로 끝났지만 우리 인간에게 던지는 인공지능 알파고의 도전 메시지는 어마어마한 것이었다. 그 메시지의 핵심은 왜 이 9단은 인공지능에게 패할 수밖에 없었는가라는 질문이었을 것이다. 왜 졌을까? 그에 대한 답은 방대한 데이터를 근거로 오로지 이기는 방법만 학습해온 알파고의 정보량을 인간의 두뇌가 따라가지 못한 결과였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결국 인간의 뇌는 정보량의 많고 적음으로 판단되는 분야에서 앞으로 인공지능에게 자리를 내 줄 수밖에 없다는 것을 대내외에 확인시켜주는 장이었다. 참으로 어이없기도 했으며 허탈하기도 했다. 한편 내심 우리의 미래가 어두울 것이란 불안감에 몸을 떨기도 했을 것이다. 이처럼 인공지능이란 새롭고 강력한 도전이 우리 인간들 앞에 새로운 종족으로 자라 인간의 자리를 내놓으라고 외치고 있음을 처절히 깨닫는 한 주였다.

졌지만 이세돌 9단이 재평가되는 이유

이세돌 9단은 장렬히 전사했다고 표현될 정도로 무참하게(?) 인공지능지존 알파고에게 짓밟혔다. 그러나 그렇게 패한 이 9단은 졌지만 새롭게 평가되고 있다. 그 평가의 근본 줄기는 겸손과 정직함과 최선을 다하는 도전정신 등 인간이라면 갖추어야할 기본 소양을 지닌 인간다움이었다. 이것은 그가 비록 패했지만 아름다운 패자가 될 수 있게 한 인문학적 소양인 것이다.

최선을 다했지만 졌을 때 이를 담담히 받아들이는 용기가 아름다웠으며, 수많은 수 싸움 속에서 고민과 고민이 교차되면서 드러나는 인간의 연약한 모습을 보면서 우리자신의 자화상을 보는 안타까움을 함께 누렸으며, 어렵고 힘든 싸움을 통해 가까스로 한판을 이겼을 때 좋아하는 표정 뒤에 겸손을 잃지 않으려는 평정심이 돋보였다. 마지막 판에서는 불리한 흑돌을 쥐고 도전을 택한 그의 도전정신이 우리 안에 숨어버린 부끄러움을 깨우쳤다. 최선을 다했지만 역부족으로 마지막 판을 질 때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무려 5시간이라는 엄청난 시간 속에 인간이 내놓을 수 있는 최고의 정신력을 통해 집념과 끈기라는 인간정신을 만날 수 있었다.

농업농촌 안에서 인문학적 소양은 새롭게 평가되어야 한다

이세돌 9단이 보여준 인문학적 소양은 어떻게 길러진 것일까? 그는 전라남도 신안군 비금도 섬마을 출신이다. 그가 어린 시절을 보낸 비금도는 천혜의 아름다움을 지닌 신안군의 대표 섬 중의 하나로 유년시절 감성적인 자양분을 충분히 받았을 것이다. 또한 자연환경을 통해 겸손과 배려와 인내와 끈기를 경험하는 기회를 가졌을 것이 틀림없다. 한편 천재바둑 기사로 각광을 받았겠지만 승부의 세계를 통해 체득한 자신의 유한함을 인식할 줄 아는 지혜는 이세돌에게 더욱 인간다움을 간직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이런 모든 인간다움은 결코 물질의 많고 적음과 이기고 짐에 오로지 승리만이 전부라는 인식 외에 다른 관심이 없는 물질위주의 가치관에서는 도저히 찾아볼 수 없는 것들이다. 그간 잃어버린 보물을 다시 찾은 기분이랄까? 우리에게 사라져 버린 이런 인간다움을 이세돌 9단을 통해 재발견했다는 점에서 이번 인공지능의 대표 알파고와의 바둑대결은 인문학의 재발견을 우리사회에 촉구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하겠다.

그렇다면 그런 소양이 왜 중요하다고 평가되는 것일까? 그건 인공지능이 아무리 전지전능한 힘을 가졌다고 할지라도 인간이 아닌 이상 가질 수 없는 인간만이 소유한 특허와 같은 것이 바로 인간다움이란 것을 알고 이에 대해 자부심을 가질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현대를 살면서 이런 인간다움이 별반 가치없는 것으로 치부되어왔었지만 인간지혜의 총아인 인공지능 앞에서 인간이 처절히 무력해진 상황을 목도하게 되었고 이런 와중에서 건질 수 있는 유일한 것이 이런 창의성과 정서와 감정이란 인간다움이었음을 자각하게 된 것이다. 이런 것들만이 인간이 기계의 종속에서 벋어날 수 있으며 우월성을 가질 수 있는 방편임을 발견한 것이 이번 대국을 통해 건진 크나큰 수확이라 하겠다.

이런 인간다움의 회복이 농업농촌의 재발견과 어떻게 연계된다는 걸까? 인간성의 발달은 인간의 일차적 본성을 깨우고 감성을 가다듬고 관계의 회복을 경험할 수 있는 농업농촌의 자연생태와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다. 인간다움이 중화학공업이나 서비스산업을 퉁해 자라며 키워질 수 있겠는가? 이런 산업 역시 인간의 지식과 지혜를 통해 창출된 또 하나의 인공지능 알파고가 아니겠는가? 결국 가장 일차적이지만 가장 인간의 원초성과 만날 수 있는 농업농촌만이 이런 인간다움을 키우고 보존하고 재생산할 수 있는 보급자리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 농업이라는 업으로 농촌다움을 비하해왔던 우리의 교만과 무지를 반성하고 창조주의 장초원형이 가장 많이 남아있는 농촌 안에서 인간다움을 재발견하는 인문학의 새로운 태동을 기대한다.

영광군민들이여! 이런 자연생태가 살아 숨쉬는 농촌에 발을 붙이고 숨결을 나누며 서로에게 필요가 되어주는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이 얼마나 아름답고 귀한 일인가? 이제 우리 모두 자부심과 함께 우리가 가진 것을 토대로 새로운 출발의 그루터기가 되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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