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자와 외모(5)-묵자와 하이데거 외

영광백수 출신/ 광주교육대 교수/ 철학박사

이번 호에서는 외모가 잘났다거나 못났다거나 하는 차원이 아니고, 어떻든 보통 사람들과는 조금 다른, 특이한 철학자들을 다뤄보고자 한다. 먼저 묵가의 시조인 묵자(墨子, 기원전 470-390년 무렵, 중국)는 성이 묵()이고 이름은 적()이다. 그런데 묵이라는 성을 갖게 된 이유가 죄인의 얼굴에 먹물로 문신을 만들었기 때문이라는 설과 묵자 자신의 피부가 대단히 검었기 때문이라는 설이 있다.

금욕주의 윤리학설을 주장한 제논(Zenon, 기원전 335-263)겉으로는 항상 엄격하고 준엄하게 행동했다. 그러나 그의 외모를 보면 매우 특이하다. 먼저 장딴지가 비록 굵기는 하였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건강한 체격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조금 야윈 편이었다. 항상 머리가 갸우뚱하게 한쪽으로 기울어지는 자세였는데, 이러한 모습은 별로 크지 않은 귀 때문에 특히 다른 사람의 눈에 잘 띄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조금 어두운 분위기를 지녔던 제논이지만, 그럼에도 사람들로부터 다정다감하고 품행이 단정하다는 칭찬을 받았다고 한다.

우리가 보통 철학자에 대하여 갖는 이미지와는 전혀 다르게도, 중세의 신학자 토마스 아퀴나스(1225-1274)는 그야말로 거대하고 위풍당당한 체격을 지니고 있었다. 그의 책상은 그가 앉아서 공부할 수 있도록 둥글게 홈을 파 놓아야 할 정도였다. 토마스 자신도 그 자신의 엄청난 체구에 대해 가끔 냉소적으로 말하곤 했다. 커다란 몸집을 가진 대부분의 사람들처럼, 토마스 역시 다른 사람들을 만나 거의 말을 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의 동료들은 그를 벙어리 황소라고 불렀다.

독일의 실존주의 철학자 하이데거의 외모에서는 시골 농부 티가 나곤 했는데, 그와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해져온다. 언젠가 비인(오스트리아의 수도)의 한 철학자가 하이데거에 대한 강연을 했다. 그는 강연을 끝내고 나서 맨 앞줄에 앉아있는 한 농부가 강연이 계속되는 동안 줄곧 다 알아듣겠다는 표정으로 열심히 쳐다보았다는 점을 상기하였다. 그리고 자신의 강연이 매우 잘되었을 것이라고 의기양양해하였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 농부는 바로 하이데거 본인이었다. 이와 관련하여, 직접 그를 만나본 고() 박종홍 교수(1903~1976)는 하이데거의 외모와 그 인격이 풍기는 분위기에 대해 이렇게 쓰고 있다.

작달막한 키에 통통한 몸집, 햇볕에 타서 검붉은 얼굴, 언뜻 보기에 농사꾼 같아 보이는 사람이 만면에 웃음을 띠며 악수를 청한다. 두툼하고 검은 손은 마치 거친 농부의 손과 같이 보였으나, 그 감촉은 의외로 부드럽고 따뜻하였다. 넥타이도 없이 걸친 윗옷의 앞자락에는 하얀 단추가 달려 있었는데, 아무리 보아도 싸구려 노동복임에 틀림없었다. 아랫도리는 스타킹으로 가뜬하게 차려 입었고, 등산화같이 생긴 구두의 끝이 뭉툭하게 두드러져 우스꽝스럽게 보였다. 마치 금방 농장에서 돌아온 농부 같았다. 만일 이 사람이 이런 차림을 하고 런던이나 파리의 거리를 걸어간다면, 그 누가 40대에 독일 프라이부르크 대학 총장을 지낸, 현대의 대표적인 철학자라고 상상이나 할 것인가? 건강하기만 한 혈색은 도저히 칠순에 가까운 노인네 같지가 않고 유난히 빛나는 눈과 큰 코, 인자한 덕성이 느껴지는 둥그스름한 턱 등은 전에 사진에서 보았던 그의 모습과 다르지 않았다. 음성은 부드럽고도 나지막한 것이 따스한 분위기가 저절로 배어 나오는 것 같았다.”

키와 마찬가지로 외모 역시 잘나고 못난 것은 그리 중요하지 않을 것이다. 다만 각박한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한번 웃어보자는 심사에서 이런 이야기도 나오지 않았을까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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