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연/ 영광군향리학회원

전생 일을 알고자 하는가, 금생에 받은 그것이다. 내생 일을 알고자 하는가. 금생에 하는 그것이다.” (欲知前生事 今生受者是 欲知來生事 今生作者是)

선생님의 선망 부모님께 절을 올리고, 선생님께 절을 올리고, 인로왕, 아미타부처님, 석가모니 부처님께 날마다 향 사르고 절하며 금강경을 독송한지 오늘로 49일이 되었습니다.

선생님!!

그동안 얼마나 고향을 그리워하시면서 하루하루를 보내셨는지요? 의사선생이 말한 그 5년이 지나도 고향에 갈 희망을 갖고 계셨을 선생님, 그러나 결국 고향을 향한 그리움을 포기하고야 말았을 선생님, 그 절망감에 삶의 끈을 놓아버렸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무너집니다. 어떻게 사죄를 받아야 할런지요?

영광에서 뇌경색으로 쓰러지신 후 대전의 아드님 댁을 방문했을 때 저를 보자마자 방문을 잠그고 가방을 챙기시며 영광에 같이 가자고 온몸으로 말씀하셨는데 저 혼자 몰래 빠져나오면서 얼마나 울었는지 모릅니다. 선생님이 이승을 떠나가시던 날은 온종일 눈보라가 치더니만 이제는 만물이 생동하는 따뜻한 봄이 되었습니다. 지금은 선생님의 가르침이 온 대지에 새싹이 파릇파릇 돋아나듯 저의 온몸 마디마디 선생님 생각뿐입니다.

선생님께서는 불교을 믿는 저에게 헤르만 헷세의 󰡔싯타르다󰡕 책을 주시면서 3번을 연속해서 읽고 서양인이 바라보는 불교는 어떤지 잘 알아두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동국대학교 총장이셨던 백성욱 선생님의 가르침을 받고자 금강산 지장암으로 찾아갔던 이야기도 들려주셨습니다. 그 밖에도 불교에 관한 이런 저런 이야기로 참으로 많은 가르침을 주셨지요.

선생님!

어느 따스한 봄날 물무산에 오르시면서 저에게 세 분의 이야기를 해주셨습니다. 상가집 심부름과 공사장 지게 품을 팔며 한 푼 두 푼 모아 바지 앞 춤에 넣고 다니다 아이들을 위해 아낌없이 내놓았다는 영광의 명물 야든이, 예수님께서 한 장자의 집을 다음 날 찾아가겠다고 약속해놓고 아침 일찍 거지 차림으로 방문했는데 장자는 예수님을 몰라보고 쫓아버렸다는 이야기, 절 입구 마을의 두부장수 딸이 이웃 사내와 정을 통해 아기를 갖게 되었는데 아이의 아빠가 백은선사라고 둘러대는 바람에 졸지에 파계승이 되어 멸시와 비난을 받으면서도 - 그렇습니까?” 한 마디만 하였다는 일본의 임제종을 중흥시킨 대선승 백은선사(백은선사1685-1768)이야기가 잊혀지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제야 이 세분이 바로 선생님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영광이 나를 써먹지 않는다고 서운해 하셨죠! 또한 종교 성지인 이곳 영광에서 태어나 불교 전문학교를 졸업하고, 해방후 영광 민립중학교 남녀 중학교 교감으로 계시면서 교회 학생들과 청년들을 가르치고 부모님의 뒤를 이어 영광읍교회가 오늘날 영광의 큰 교회가 되는 초석이 되셨죠. 그 뒤 소태산 대종사의 아드님이신 박길진총장님과 일본 동양대학에서 같이 동문수학한 뒤 동국대학교 철학과 교수로 계시면서 동양철학을 가르치셨습니다. 그리고 전남대학교 철학과와 공자학회를 창설하여 후학을 가르치시고 원광대학교와 영산대학교에서 마지막 강의를 하셨습니다.

이제는 선생님의 모습도 쩌렁쩌렁한 목소리의 가르침도 받을 수 없지만 선생님의 크신 가르침, 남겨진 책과 써놓으신 글을 하나하나 새기면서 살아가겠습니다.

해마다 꽃은 서로 같건만(年年歲歲花相以)

해마다 사람은 같지 않네(歲歲年年人不同)

 

 

一切有爲法 如夢幻泡影 如露亦如電 應作如是觀

일체 현상계의 모든 생멸법은 꿈과 같고 환상과 같고 물거품과 같고 그림자와 같으며 이슬과 같고 번개와 같으니 응당 이렇게 관할지어다

당나라 류희이(劉希夷)가 지은 유명한 시와 금강경 사구게의 마지막 구절입니다. 이곳에서 살고 있는 저희들도 생명이 다하면 죽겠지만 우리의 고향 영광은 영원하겠지요?

이제는 과거의 아픈 이념의 갈등을 떠나 선생님께서 그토록 갈망하시고 못다 이룬 고향의 시인들의 생가복원, 문학동네 건설 등 통일문학을 선도하는 영광군이 될 것입니다. 선생님께서 가마미 해수욕장을 재발견하시어 호남 최고의 여름 휴양처로 만들었듯이 선생님의 정신을 이어받고자 합니다.

다시 뵙고 싶은 선생님!

부처님의 첫 번째 제자 가섭존자가 지금도 운남(雲南)의 계족산(鷄足山)에서 선정에 들어 있다고 믿고 있듯이, 선생님께서도 야든이와 함께 칠산 바다로 지는 석양을 바라보며 영원토록 저희들을 지켜봐주시고 가르쳐 주실 것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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