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희/ 여민동락 살림꾼

때 이른 더위가 찾아온 한낮의 여민동락. 흥겨운 아코디언 음악과 노랫소리가 울려 퍼진다. 귀에 익숙한 뽕짝음악에 맞춰 한 판 잔치 마당이 열렸다. 대한노인회 영광군지회의 아코디언 공연 자원봉사다. 무려 17킬로그램의 무게에 달하는 악기를 직접 메고, 어르신들 앞에서 연주 기량을 뽐내는 자원봉사자들도 모두 어르신들이다. 시니어 악단의 지휘자는 83(1934년생)로 최고령자다.

그는 공연이 진행되는 40여분 동안 국민 MC 유재석 뺨치는 진행 솜씨로 동년배 어르신 관객들의 호응을 유도한다. 이 악단은 한 달에 대여섯 군데의 복지시설을 다니며 연주 봉사를 한다고 한다. 건강이 허락하는 만큼 스스로의 힘으로 기량을 닦고, 인생의 황혼기를 봉사하는 삶으로 보낼 수 있어 행복하다고 했다.

우리 사회에서 대체로 노인들은 존재가 아니라 문제로 취급된다. 그들은 고집이 세고 말이 통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꼰대취급을 당하기 일쑤다. 심지어 어버이연합사태처럼 삶의 연륜과 지혜로 후세대를 포용하고 이끌어야 할 노인들이 오히려 사회적 갈등과 세대 간 대결의 진원지 노릇을 하기도 한다. 전쟁과 권위주의 시대를 겪으면서 폭압에 순응하는 삶을 살아온 노인들은 무력감과 패배주의로 인해 꼰대적 성향을 갖게 된다. ‘꼰대에 대한 심리사회적 배경을 탐색하다보면 한국의 노인들은 나쁜 분들이 아니라 아픈 분들이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이들에게는 징헌 놈의 시상을 온몸 다해 살아왔으니 그만하면 잘 살았다는 삶에 대한 긍정적 평가가 절실하다.

일제강점기, 한국전쟁, 경제개발시기 등 현대사의 굴곡과 함께 하며 죽을 힘을 다해 버텨낸 한국 노인들의 삶은 여전히 팍팍하다. 한국의 65세 이상 노인빈곤율은 49.6%OECD 34개 국가 중 1위다. 두 명중의 한 명이 빈곤 노인이다. 게다가 한국 노인 10명 중의 4명은 우울증을 알고 있다.

노인 자살율은 세계 1위로 OECD 국가 평균 10배다. 나이 80이 넘어서도 폐지를 주워야 사는 나라에서 ‘100세 시대의 행복은 공허한 구호에 불과하다. 노인 빈곤과 고독사는 갈수록 증대하는데 사회보장체계는 노년의 불평등을 완화하는데 큰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신체능력 상실과 관계망의 축소 등 노년에 맞이하는 도전들은 누구에게나 공통적이다. 그러나 물질적, 문화적 자원이 상대적으로 더 취약한 노인들에게 그 영향은 더 뚜렷하고 해롭게 나타난다. 게다가 사회적으로도 노인을 존엄하게 대우하기보다는 부양하고 책임져야 할 대상으로 취급하는 분위기가 팽배하다.

80대의 시니어 악단처럼 인생 종반전을 사랑과 나눔의 정이 넘치는 2의 전성기로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정치적으로 소외되지 않고 경제적으로 빈곤하지 않으며, 적당한 일자리와 문화 생활도 보장되는 노년의 삶은 금상첨화일 것이다. 사회적 존재로서 노인의 정체성을 되찾고 존엄한 노후를 위해서는 우선 사회경제적 조건이 보장되어야 한다. 빈곤과 불평등이 노년의 삶을 규정할 수 없도록 적극적인 정책 대응이 필요하다. 또한 기능적 접근을 넘어서 노화와 죽음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고 건강한 노년의 양식을 형성하는 데로 나아가야 한다.

호모 헌드레드시대, 어떻게 늙어갈 것인가는 개인적인 문제이면서 동시에 사회적인 문제다. 젊었을 때부터 나이듦에 대한 진지한 고민과 준비가 필요하다. 노인의 삶이란 늙었을 때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어쩌면 젊었을 때 예견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늙는다는 것은 미래에 갑자기 일어나는 변화가 아니라, ‘지금 이 순간이 차곡차곡 쌓여가는 과정일테니 말이다. 노인을 문제가 아닌 존재, ‘꼰대가 아닌 꽃대로 대하는 인식의 전환이야말로 100세 시대를 맞는 첫걸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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