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희/ 여민동락 살림꾼

영광이 시끄럽다. 고준위 핵 폐기물 처리 문제 때문이다. 월성 원전은 2019, 영광 한빛 원전과 고리 원전은 2024, 울진 한울 원전은 2037, 신월성 원전은 2038년에 고준위 핵 폐기물 저장이 포화상태에 이른다. 지난달 확정된 고준위핵폐기물 관리 기본계획에 따르면, 정부는 포화상태에 이르는 고준위 핵 폐기물을 핵 발전소 부지 내에 임시저장시설을 확충해 한시적으로관리한다는 방침이다. 부안 방폐장 건설 무산 이후 마땅한 대안이 없자 고준위 핵 폐기물을 핵 발전소 안에 묻겠다는 말이다. 궁여지책이다.

지역주민들은 즉각 반발했다. 고준위 핵 폐기물은 반감기가 무려 10만년 이상이나 되어 악마의 물질로 불린다. 이 위험천만한 물질을 주민들의 동의도 없이 묻겠다는데 가만히 있을 수 있겠는가. 지역사회의 반대에 부딪쳐 저장시설 건설은 일시 중단되었지만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다. 현재 가동중인 핵 발전소는 지금 이 시간에도 핵 폐기물을 만들어내고 있다. 핵 폐기물이 생산되는 한, 이것은 이 땅 어딘가에 묻어 대대손손 관리해야 한다. 호모 사피엔스가 대략 20만년전에서 7~8만년 사이에 출현했으니 ‘10만년은 현생 인류가 진화한 시간과 맞먹는 어마어마한 기간이다.

근본적인 문제는 핵 폐기물 저장 여부가 아니다. 언제까지 안방의 시한폭탄과도 같은 핵 발전소에 의존하는 불안한 삶을 살 것인가.

2011년 후쿠시마 원전 폭발 이후 세계적인 탈핵 도미노현상이 이어졌다. 독일이 탈핵을 선언하며 7기의 핵 발전소를 즉각 가동 중단하자 스위스, 이탈리아, 핀란드가 잇따라 핵 발전소 폐쇄를 결정했다. 반면 한국의 시계는 거꾸로 돌아갔다. 오히려 노후한 핵 발전소의 무리한 수명 연장과 신규 핵 발전소 추가 건설을 밀어붙였다. 더구나 지금 건설 중이거나 계획 중인 핵 발전소만 해도 11기나 된다. 기존의 시설에서도 지난 30년 동안 400번이 넘는 고장 사고가 있었고, 노후한 시설의 수명을 무리하게 연장해 돌이킬 수 없는 위험을 초래할 지경에 이르렀다. 한국의 핵 밀집도는 세계 1위다. 핵 발전소 반경 30km400만 명이 넘는 인구가 살고 있다.

독일 찬핵 진영의 대표 주자였던 앙겔라 메르켈 전 총리는 2011년 핵 폐기를 선언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에게 안전보다 더 중요한 가치는 없다.” 독일이 국가적으로 탈핵을 선언하게 된 배경에는 체르노빌 참사 이후 이어져 온 시민들의 핵 발전소 반대 운동이 있었다.

독일에서 핵 발전소를 뛰어넘는 대안을 만들기 위한 노력은 인구 2500명에 불과한 남부 슈바르츠발트 지대의 작은 마을 '쇠나우'에서 촉발됐다. 쇠나우 마을의 주민들은 체르노빌 참사 이후 '원자력 없는 미래를 위한 학부모 모임'을 결성하고, 핵 발전이 아닌 녹색 전력 공급을 위한 주민투표를 시행했다. 그 결과 쇠나우는 지역 주민이 주주로 참여하는 '녹색 전력 회사'를 지역의 전력 공급업체로 결정했다. 재생가능에너지를 통해 전력을 공급하는 녹색 전력 회사10만호가 넘는 개인과 기업에 녹색 전력을 공급하고 있다. 언론은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에서 쇠나우의 '전력 반란'이 승리했다"고 칭송했다.

핵 발전소의 과감한 폐기와 지속가능에너지 체계로의 전환이 가능하다는 것은 2022년까지 모든 핵 시설 폐쇄를 결정한 독일이 잘 보여주고 있다. 우리도 핵 발전 중심주의에서 벗어나 생태적 가치로의 전환을 서둘러야 한다. 2025년 한빛원전 1호기가 수명 만료되는 시점을 시작으로 영광도 탈핵 청정지역으로 탈바꿈하기 위한 과감한 결단을 해야 한다. 핵 발전의 위험성과 지속불가능성으로 봤을 때, 더 이상 탈핵이냐, 아니냐를 따지는 것은 무의미하다. 탈핵은 그 자체로 '대안'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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