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영/ 영광사회복귀시설장

과학사와 과학철학을 뛰어넘어 인문학, 사회과학, 예술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토마스 쿤(1962)과학혁명의 구조에서는 과학의 진보가 누적적이라는 종래의 귀납적인 과학관에서 벗어나 근본적으로 과학적 지식의 발전이 혁명적이라는 데 주목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과학의 진보는 어떤 현상이나 지식이 차츰 차츰 쌓이고 모여서 발전하는 게 아니라 이상 현상 즉 위기에 부딪혀 붕괴될 때마다 그 세계관을 달리해온 것이라는 의미이다. 이는 한 시대를 풍미하는 가치, 규범, 이론과 같은 세계관, 즉 패러다임을 의미하며 패러다임’, ‘패러다임의 전환이라는 용어는 사회에서 흔하게 사용하는 용어가 되었다.

지난 529정신보건법전부개정에 따른 정신건강증진 및 정신질환자 복지서비스 지원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어 2017530일 시행을 앞두고 있다. 정부는 새롭게 제정된 이 법률에 대하여 이전 법에서 표방하고 있는 의료모델 중심이 아닌 복지모델의 개념을 추가하여 정신질환자의 복지 혜택으로 패러다임을 전환한 것을 주요 골자로 설명하였다. 정신병원 강제입원제도를 개선하고 정신질환자에 대한 사회적 차별 완화, 전 국민에 대한 생애주기별 정신건강 증진을 목적으로 조문 또한 총 889개로 대폭 확장되었다. 특히 정신질환자를 독립적으로 일상생활을 할 수 없는 경우로 좁게 정의해 우울증 치료 한 번으로 법적 정신질환자가 되는 문제가 해소될 것이라는 예측이다.

언뜻 보기에는 모든 국민의 정신건강증진 뿐 아니라 정신질환자의 복지 혜택으로 기존 법령보다 획기적으로 패러다임이 전환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새 법안이 19대 국회 마지막 본회의를 통과한 이후 정신보건계는 그 어느 때보다 혼란한 시기를 맞고 있다.

법안의 주요한 쟁점사안이었던 정신질환자의 정신병원 강제 입원 절차 강화 조항만 놓고 봤을 때도 법안이 통과된 지 불과 1주일 만에 서울과 부산 지역에서 일어난 묻지마 살인, 폭행사건을 계기로 정신질환자 관리를 강화해야 한다는 여론이 들끓자 경찰에서는 행정입원을 적극 활용하겠다면서 일선의 혼란을 야기하였고, 이에 대해 정신장애인 당사자를 비롯한 다수의 정신장애인 단체에서는 공권력의 남용이라며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또한 정신의학계에서는 비현실적인 입원적합성 심사 조문이 정말 치료가 필요한 환자가 기회를 얻지 못할 수도 있음을 지적하며 임상의 현장을 무시한 법 제정에 큰 우려를 하고 있으나 다른 일각에서는 국민의 권리를 제한하는 경우에는 반드시 적법한 절차와 법률에 근거해야 한다는 적법절차의 논리로 팽팽히 맞서고 있다. 정신질환자의 범위를 극히 한정한 것을 두고는 경증 정신질환자 개입을 위한 제도적 장치가 미흡하다는 비판에서부터 다른 법령과의 관계에서 정신질환자 자격제한이 모호해질 것이라는 의견 등 그 세부사항을 다 열거하기에는 지면이 턱없이 부족하다.

이처럼 이번 정신보건법 전부 개정은 다학제 개입이 이루어지고 있는 정신보건계의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 단체들이 현장의 목소리를 내게 하고, 사회의 편견으로 나서기를 꺼려하던 정신질환자 당사자들을 선봉에 서게 하였다. 지금의 현상은 분명 토마스 쿤이 설명하고 있는 새로운 정상과학에 도달하기 위한 위기와 혁명의 과정에 해당된다고 하겠다. 그러나 각각의 주체들이 주장하고 있는 표면을 드러내고 그 이면을 들여다보면 이러한 현상들은 변화된 정신보건 패러다임의 모호성을 제거하기 위한 노력의 집중으로 볼 수 있으며, 인식의 확대, 이해의 누적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과정으로 해석이 가능할 것이다. , 새로운 정신보건 패러다임에 대해 다른 방향에서의 관찰과 해석을 통해 사회의 구성원들이 새롭게 공유할 수 있는 그 무엇을 도출하기 위한 과정인 것이다.

그런 까닭으로 시행을 앞둔 이 시기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게 다가온다. 전부 개정된 정신보건법이 시행되기까지 이해 당사자들 간에 더욱 치열하게 고민하고 충분히 상호작용하여 백가쟁명의 간극을 줄여나가야 할 것이다. 진정한 패러다임의 전환은 지금부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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