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숙재/ 2017국제농업박람회조직위원회운영부장

오백년 도읍지를 필마(匹馬)로 도라드니

산천(山川)은 의구(依舊)하되 인걸(人傑)은 간 듸 업다.

어즈버 태평연월(太平烟月)이 꿈이런가 하노라.

이 시조는 필자의 중학교 입시문제로 출제되었는데 야은(冶隱) 길재(吉再)’가 고려의 옛 수도(개성)에서 흥망성쇠와 인생무상을 비유적으로 노래한 것이다. 인재가 풍부하기로 소문난 고장 옥당고을에서 대학수학능력시험을 80여일 앞둔 고등학교 3학년생에게는 귀에 와 닿겠지만 대다수의 학생들은 중학교를 가는데 입시제도가 있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의아해 할 것이다.

그렇다면 농촌에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평생 농업직 공무원으로 살아가는 필자에게 지난날의 회상과 함께 현재의 숙제를 찾아보라면 나는 어떠한 노래를 불러야 좋을까? 지나온 과거를 비유적으로 유추해 봐도 당장은 농···임업인의 경제활동에 크게 영향을 미치는 부정 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일명 김영란 법)’의 적용 완화일 것이다. 김영란 법이 농수축산업에 활력을 잃지 않기를 바라는 생각밖에 떠오르지 않는 건 법 시행이 928일로 눈앞에 다가오고 있을 뿐만 아니라 엄격한 법 적용으로 국민들의 공포 심리가 농산업의 위축으로 몰고 갈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21세기 인간에 대한 최대의 재앙은 전쟁, 천재지변, 그리고 빈곤과 질병이라고 주장하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따라서 지구상에 인류가 생성된 이래 질병 퇴치와 빈곤극복에 농업의 역할은 더욱 크다고 하겠다. 농업의 역할은 식량의 안정생산, 자연환경 지속보전, 그리고 사회·문화적 전통의 유지 발전 등으로 경제와 인구 구성에서 미미하지만 선진국들이 막대한 정책지원을 하는 이유는 농업의 공익적 가치 때문이다.

이 시점에서 우리나라 베이비붐 세대(baby boomer: 우리나라는 1955~1963년 사이 출생자/고도 경제성장과 외환위기, 글로벌 금융위기 경험)의 어릴적 사회상과 농촌현실을 통하여 현재의 농업발전과 비교해 보면서 시급한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하고자 한다. 당시의 학생상()은 검정 고무신에 책을 보자기에 싸서 어깨 뒤로 두른 모습이었고 보릿고개가 있어서 학교급식은 외국 원조의 밀·옥수수가루와 분유를 이용한 죽(), 가정에서는 구황작물(救荒作物)인 조·고구마·감자와 소나무 껍질, 찔레덩굴 등을 벗겨 먹기도 하고 불을 피워 보리그스름(보리그을음)’으로 허기(虛飢)를 달래다 보니 입 주변이 검게 되어 다닌 적도 있었다.

개인적으로 잊지 못할 일들은 1967~1968년 두 해의 가뭄기간에 비가 오도록 기우제를 올리면서 몹시 화난 어른들이 산봉우리에 갓 조성한 묘지를 파헤쳐 경찰서에 불려가 조사받던 일, 물도 없는 논(이슬비로 촉촉한 정도)에서 서종(鋤種: 호미로 땅을 파서 벼 심음)작업에 참여한 경험, 광주·전남 최대의 불갑저수지가 말라서 맨손으로 물고기 잡던 기억들과 또 하나는 논에 자주 나가 김()매기를 할 때 피(특히, 생육초기/피는 잎혀가 없음)뽑기가 가장 어려웠는데 아버지께서 , 너는 눈이 매루(벼멸구) 먹었냐?’라는 소리를 듣고 뒤돌아보면 피가 보여서 제거하던 추억들이 눈에 선하게 떠오른다.

이토록 어려운 시대엔 먹을거리가 우선시 되었기에 국가의 시책도 당연히 주곡의 자급달성이었다. 이 무렵 통일벼(1971, 수량성이 높고 내병성이 강함)가 개발되어 녹색혁명을 성취하였고 1980~1990년대엔 시설재배로 계절에 관계없이 각종 농산물을 생산하는 백색혁명2000년대 농업생명공학 등은 우리나라 농업과 시장경제에 큰 영향을 끼쳤다.

돌이켜서 1960~1970년대 초등(국민)학교 시절부터 현재까지 우리나라 농산업의 발전상을 살펴보면 농업인구의 급격한 감소와 노령화에도 불구하고 국가의 발전과 함께 완만한 성장세로 지금에 이르렀구나 하는 생각이 들지만 아직도 많은 과제를 안고 있는 게 농촌의 현실이다.

최근에 귀농·귀촌·귀어자들이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으며 전남지역은 타 지역에 비하여 많은 사람들이 몰려오고 있다. 2012년부터 3년간 귀농가구 33,287호 중 30~40대 비율이 34.6%50대 가구주와 비슷한 것은 매우 긍정적인 신호이며 이러한 중차대한 시기에 농수축임산업의 비중이 점점 축소되는 현실이 매우 안타까워 시절(時節)이 하 수상(殊常)하니.’라고 해도 될까?

최근, 중국 등 주변국가와 체결한 자유무역협정(FTA)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는 수출농업시대를 열어 나가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국산 농산물의 품질경쟁력 제고를 통한 시장 차별화와 국내외 소비자의 선호에 부응할 수 있는 안전한 농산물이 생산되어야 한다. 또한 농업생산, 유통, 소비에 이르기까지 스마트 바람이 불고 있는 추세에서 ICT(정보통신기술)·BT(생명공학기술) 융복합 농업기술 개발을 통해 농업 경쟁력 제고 등 선제적 대응이 필요하다. 아울러 1차 산업인 농업이 2차산업(가공,식품제조), 3차산업(유통,판매,관광 등)까지 영역을 확대해 ‘1×2×3=6로 부가가치를 높이고 새로운 기회를 창출해야 한다.

그리고 최근에 큰 논점으로 등장한 부정 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일명 김영란 법)’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운다.’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않는 방향으로 개정되기를 간절히 염원해 본다. 법률의 근본 취지는 부정 청탁을 근절하여 우리나라가 더 잘 살고 선진국으로 도약하기 위한 조치임에도 불구하고 이를 앞세워서 오히려 우리의 농촌경제를 망가뜨릴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농어촌 현장에서 일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인건비, 자재비 등 힘들고 어려운 조건에서도 좋은 농축산물을 생산하여 품질과 가격에서 인정을 받아 성공할 것으로 희망을 갖고 사는데......‘법의 취지는 이해하지만 농산업의 근간인 농축산물과 어류 등 품목에 대한 금액을 상향 조정하는 등 관련 법 개정이 절실하다.’고 요구하고 있다.

따라서 미력하나마 지금부터라도 법의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법 규제의 틀을 바꾸는 일에 앞장서야 한다고 본다. 이를 계기로 농어촌에 기반을 둔 가족들이 희망의 보금자리에서 살아갈 수 있다는 굳은 신념과 생명의 땅, 청년이 돌아오는 전남을 위하여 고향에서부터 새로운 청년들의 일자리를 만들어낼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기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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