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병희/ 전 홍농농협 조합장

농업협동조합의 최초 기원을 살펴보면 17세기 유럽의 최전방 군대 주둔지에서 시작되었는데 그곳까지 남편을 따라온 그 아내와 자녀들이 협동조합을 결성해 함께 생활했다고 전한다 자연히 구성원 전체의 생존과 복리가 주된 목적이었다 사실 민간 협동조합은 19세기 중반 유럽에서 조직돼 북미를 비롯한 신흥국으로 퍼져 나가면서 농업개발의 주요 수단이 됐다는 내용을 확인 할 수 있다

무엇보다 협동조합이 각광을 받는 이유는 경제적 이익을 극대화 하려는 기존의 상업적 조직으로는 농민의 복지와 농업의 경쟁력을 담보할 수 없기 때문에 다수의 구성원으로 형성된 협상력을 기반삼아 생존과 복리, 그리고 농민조직으로는 달성할 수 없는 협동조합 특유의 힘이라고 할 수 있는바 그 기반이 조합원의 자주성과 자율성에 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최근 농업협동조합법(농협법) 개정논의가 한창 진행되고 있는데 개정안의 입법예고 기간이 끝났음에도 주무부처인 농림축산식품부가 이례적으로 추가의견 수렴에 나서고 있는 상황인데 이는 개정안에 대한 반발과 이견(異見)이 적지 않다는 반증이기도하다 그런데 금번 정부의 개정안을 보면 긍정적인 면도 없지는 않지만 그 중에서 상임감사의 도입을 들 수 있다 일정 자산 규모 이상의 조합은 의무적으로 상임 감사를두되 조합원이 아닌 외부 전문가를 위촉하도록 하고 있다 지역 조합 운영의 투명성과 건전성을 뒷받침 할 것이라는 관점에서 바람직한 내용이기도하다

반면에 적지않은 농민들이 의구심을 갖는 조항도 있다 우선 농협중앙회장의 선출방식에 관한 규정이 논란의 중심에 섰다 개정안에 따르면 430조원이나 되는 자산을 관리하고 경영하는 중앙회장 선출 방식을 이사회 호선방식으로 변경한 내용이다 그 동안 지역 조합장들은 현행 대의원 방식에 의한 간선제에 대해서도 강한 불만을 가져왔건만 정부는 한술 더 떠서 이사회 호선제로 바꿔 놓았다 전국의 지역조합을 대표하는 중앙회장의 선출에 지역 조합장들이 전혀 관여하지 못하는 이상한 상황이 연출 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런 방식의 중앙회장 선출은 정부의 입김에서 벗어나기 어렵다는 우려가 심화되고 있는 대목이다.

다음 문제는 비상임조합장의 업무집행권의 제한이다 비상입조합장 제도는 자산규모 2500억원 이상인 조합의 경우 전문경영인 (상임이사)으로 하여금 경영에 책임을 지도록해 조합의 합리적 경영과 건전성을 확보한다는 취지에서 2009년 도입됐다 다만 비상임조합장은 신용사업 및 보험(공제)사업을 제외한 사업의 일부를 집행하도록 해 조합장이 조합의 업무를 관장할 수 있었다 업무관여를 가급적 줄이겠다는 취지이지만 농민들의 주장과는 정말 상이한 탁상공론이 아닐 수 없다.

조합업무에 문외한이 조합장으로 당선되는일은 사실상 드물다 오히려 자신이 조합원으로 있으면서 몸소 터득한 정보와 경험, 문제의식 등은 어쩌면 대체가 불가능하다 또한 조합장은 조합원들과의 구김살 없는 의사소통 창구다. 조합장을 조합의 경영에서 떼어놓은채 조합의 얼굴마담이나 하도록 하는 것은 지역사회에서 농협이 가진 위상에 걸맞지 않다고 본다 따라서 비상임 조합장이라도 조합의 업무에 직접 관여하고 책임질 수 있는 길을 터놓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금번 농협법 개정안을 보면서 시장주의라는 미명아래 농협인의 자율성과 자주성을 축소하고 정부의 통제를 강화 하려는 의도가 있다고 봐지는 대목이다 당초 협동조합이 최전방 군인 가족들의 생계와 복리를 위해서 자생적으로 결성되었다는 기원을 생각해보면 지역 조합장들의 주장에 힘이 실린다. 앞으로 농림축산식품부는 농민과 농협인의 자율성과 자주성을 보장하는 차원에서 심각하게 받아들여 신중한 검토를 건의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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