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자들의 기묘한 행동(1)

영광백수 출신/ 광주교육대 교수/ 철학박사

우리가 매일 마주치는 사람들 가운데에 이상한 버릇이 있거나 별난 행동을 보이는 사람들이 있다. 이것은 철학자들에게도 예외가 아닌데, 다만 철학자들의 경우 확고한 신념에서 나오는 경우가 많아 도리어 보통 사람들보다 오래 지속되는 경향을 보이기까지 한다.

먼저 어린 시절의 철학자들을 보았을 때, 모두가 모범생이거나 의젓했던 것은 아니다. 게 중에는 자주 문제를 일으키거나 말썽을 피운 경우도 많았다는 뜻이다. 맹자(기원전 372-289)인간의 본성이 착하다고 하는 성선설(性善說)을 주장한 것으로 유명한, 중국 전국 시대의 유교사상가이다. 그는 공자와 마찬가지로, 세 살 때에 아버지를 여의고 편모슬하에서 성장하였다. 그러나 공자와는 달리 말썽꾸러기였다. 특히 모방성이 강하여 주위 지방의 습속을 곧잘 흉내 냈기 때문에, 그 모친이 세 번 이사 다니며 가르쳤다고 하는 맹모삼천지교(孟母三遷之敎)가 유명하다.

기독교에서 성인(聖人)으로 추앙받는 아우구스티누스(354~430, 북아프리카 누미테아 출생)는 여섯 살 때 문법학교에 입학하였다. 그러나 공부에 취미가 없어 장난과 유희에 몰두하였다. 그러자 그의 아버지는 마다우라로 보내 철학자 아플레아우스 밑에서 공부를 하도록 했다. 그러나 가정형편이 기울어 학업을 중단한 채 고향으로 돌아오고 말았다. 이때부터 그는 불량한 친구들과 어울려 도둑질과 거짓연애 등 나쁜 일을 저지르기 시작하였던 바, 예컨대 남의 집 정원에서 배를 훔쳐 먹는 것 정도는 아무렇지도 않게 여겼다. 아버지는 다시 아들을 훌륭한 법률가로 만들기 위해, 그를 카르타고에 있는 평민학교에 입학시켰다. 그러나 여기서도 아우구스티누스는 난폭한 학생 집단과 우정을 맺었다. 그는 여자들과 연애하는 일에 매우 열심이어서, 밤이나 낮이나 그 속에 파묻혀 시간을 보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그의 말년에 젊은 시절을 회고하며, 자신의 죄를 회개한 적이 있다. 공부보다 놀기를 더 좋아한 것, 구구단 외우기에 열중하기보다는 트로이(소아시아 해협에 면하여 있는 그리스의 옛 도시. 호머의 서사시 <일리아드>로 유명함)의 화재 이야기를 더 많이 한 것 혹은 극장에 자주 간 것 등도 모두 죄라고 생각하였다. 그는 더 나아가 젖먹이 때 젖을 달라고 너무 보채며 큰 소리로 울었던 일조차 죄를 지은 것이 아닌가 하고 반문할 정도였다. 이처럼 악동으로 성장기를 보낸 그였지만, 기독교에서 가장 중요한 교리로 받아들이는 삼위일체설과, 원죄설, 구원설 등을 정초하였다.

안셀무스(1033~1109)는 열다섯 살이 되던 해에 수도원에 들어가고 싶어 했다. 그러나 롬바르디아(이탈리아의 북부, 스위스와 인접한 주)의 귀족인 그의 아버지는 아들이 수도원에 들어가는 것에 대해 강력히 반대했다. 이때 어린 안셀무스는 신앙심에서 우러나오는 꾀를 하나 생각해내었다. 그는 수도원장을 감동시켜 수도원에 들어가려는 자기의 소망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할 목적으로, 자기에게 병이 나게 해달라고 기도를 한 것이다. 그리하여 실제로 안셀무스는 심하게 앓게 되었다. 그러나 아버지의 눈치를 심하게 보았던 수도원장은 요지부동이었다. 안셀무스는 건강을 다시 회복하는 도리 밖에 없었고, 그리하여 그는 즉시 병에서 나았다.

이후 집을 떠난 안셀무스는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다 프랑스의 베크 수도원에 들어갔고, 스승의 뒤를 이어 수도원장이 되었다. 이곳에서 많은 책을 저술했으며, 제자 양성에도 힘을 쏟았다. 점차 높아진 그의 명성은 영국에까지 퍼졌고, 마침내 1093년 영국 캔터베리의 대주교로 임명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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