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희/ 여민동락 살림꾼

5년 만에 만난 선배가 대뜸 그랬다. “나는 마을주의자가 싫어.” 오래간만에 만난 자리에서 마을주의자가 싫다니? 당황스러웠지만 그의 이력을 알기에 짐작은 갔다.

그는 90년대 후반, 대학을 졸업하고 노동운동을 하겠다며 전자제품 하청업체 공장에 취직, 노동현장에 투신한 마지막 세대다. 동료 3명과 함께 들어갔으나 다 떠나고 혼자 남았다. 노동운동에 대한 막연한 동경은 현실의 잔인한 장벽앞에서 허망하게 무너져 내렸다. 떠난 이들은 뒤도 돌아보지 않았고 남은 이는 독기를 품고 버텼다. 그는 그렇게 밑바닥에서부터 올라가 어엿한 산별노조의 중간 간부가 되었다.

비정규 불안정 노동의 현장에서 언제 닥칠지 모르는 해고의 불안감을 안고 살아가야 하는 혹독한 일터. 임금체불을 밥 먹듯 하는 악덕 기업주와의 싸움, 정부청사로 법원으로 쫓아다니며 부당해고에 항의하던 아스팔트 위 불면의 밤들을 보낸 그의 눈에 마을운동은 한가해보였으리라. ‘관계’ ‘공동체같은 담론들은 세상을 바꾸는 전복의 언어가 아니라 불합리한 자본주의 체제 유지를 돕는 수용의 언어라고 여겼을 것이다.

이처럼 완고한 오해는 마을운동, 마을주의자에 대한 왜곡된 이해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그것이 다는 아니다. 자본주의 위기 극복의 대안으로 마을이 부상하면서 전국적으로 마을만들기 붐이 일어났다. 파이는 커졌지만 마을만들기를 외부 자원 유치와 결부된 마을개발로 협소화시키는 경향이 나타났다. 국가 지원과 외부 자원에 의존하다보니 행정의 언어가 마을의 언어를 대체한다. 주민들은 배제되거나 들러리로 전락하고 주민의 목소리보다는 행정의 요구를 우선시한다. 성과주의와 한탕주의적 사고에 매몰되다보니 마을만들기 사업이 주민들간 갈등을 초래하고 마을의 관계력과 자치력을 훼손하는 결과를 초래하기도 한다. 마을 만들기를 한답시고 오히려 마을을 해체하는 어이없는 상황에 속수무책인 경우가 허다하다. 이것은 마을운동이 아니다.

경제인류학자 칼 폴라니는 토지, 노동, 화폐는 상품이 될 수 없다고 했다. 자본주의가 토지, 노동, 화폐를 상품으로 만든 대가로 사람들간의 연결망은 단절되고 공동체는 해체됐다. 이제 무한경쟁으로 끊어진 사람들간의 연결망을 다시 잇고 호혜와 연대, 협동의 원리로 사회를 재구성하고 구체제를 극복해야 한다. 저항과 참여를 넘어 풀뿌리 마을 단위에서 자립과 자치의 민주주의를 실현해야 한다. 주민들 스스로의 힘으로 존엄하고 자주적인 삶이 지속가능하도록 만드는 것, 마을운동의 사명은 여기에 있다. 이럴때만이 마을은 구체적인 내 삶의 현장을 변화시키고 나아가 한국사회를 바꾸는 진보의 언어, 변혁의 언어가 될 것이다.

국가의 진보와 개조없이 마을의 완성은 없다. 분배 정의의 확립과 평등의 확산은 마을 단위에서 실현할 수 있는 과제가 아니다. 이것은 국가 경영의 철학 문제이자 정책 실현의 문제다. 세상은 엉망진창인데 마을만 유독 장밋빛일 수는 없다. 마을은 평화로운데 노동 현장이 전쟁터라면 이것도 모순이다. 마을살이가 국가경영과 무관하지 않은 이유이며 마을운동이 그들만의 유토피아라는 문맥에 갇혀서는 안되는 이유다. 반대로 풀뿌리 마을자치의 활성화와 공동체의 부활이 없다면 국가의 진보는 사상누각이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로 촉발된 촛불혁명의 종착지는 마땅히 마을이어야 한다. 촛불은 국민 개개인의 삶터에서 동네 자치와 민주주의의 불꽃으로 타올라야 한다.

여민동락공동체가 설립 10년을 맞았다. 우여곡절은 많았지만 잘 버텼다. 앞으로 10, 마을주의자가 싫다는 선배의 푸념을 들으며 여민동락의 길을 생각한다. 다시 뜻을 바로 세우고 묵묵하게 나아가야 한다. 여민동락 10주년 슬로건처럼, 세상을 품고 마을로, 마을을 품고 세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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