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자들의 기묘한 행동(5)-쇼펜하우어

영광 백수 출신/ 광주교육대 교수/ 철학박사

쇼펜하우어가 헤겔의 강의 시간대에 자신의 강의를 개설하였다가, 오히려 청강생이 헤겔에로 몰리는 바람에 한 학기 만에 대학교 강의를 포기하였다는 일화는 너무나 유명하다. 그러나 쇼펜하우어는 그 같은 실패를 자기 자신의 탓이 아니라 밤에는 늑대로 변하는, 다른 철학교수들의 그릇된 증오와 지나친 시기심 탓으로 돌린다. 물론 동료들은 그를 증오하거나 시기하지 않았으며, 그에 대해 도대체 알려고 조차 하지 않았지만 말이다.

그럼에도 쇼펜하우어는 그의 동료들이 자신에게 나쁜 짓을 할 것이라고 생각하여, 항상 의심스러운 눈으로 주위를 경계했다. 이발사가 면도칼로 자신의 목을 벨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에 이발사에게 면도를 시키지도 않았으며, 불이 날까봐 2층에서 자지도 않았다. 또 잠잘 때에는 권총에 탄환을 넣어 침대 옆에 두고 잤다. 누군가 그에게 가까이 다가가기만 해도 폭력을 휘둘렀다. 언젠가는 바느질하는 어떤 얌전한 여자가 수다를 떨어 그를 방해했다고, 그녀를 바닥에 내동댕이친 적도 있었다. 그 일로 인해 그녀는 평생 불구로 지내게 되었고, 쇼펜하우어 자신도 평생 보상의 의무를 지게 되어 두고두고 자책감과 경제적인 부담으로 괴로워했다. 또 집의 가장 은밀한 곳에 값나가는 물건을 숨겨두었다. 금화(金貨-금으로 만든 돈. 황금과 적은 양의 구리를 섞어 만든 화폐)는 잉크병 속에 넣었고, 지폐는 침대 밑에 숨겼다. 그는 출판업자들이 그의 책을 보급시키는데 최선을 다하지 않는다고 비난하며, 끊임없이 다투었다.

지독한 에고이스트(이기주의자)이자 지친 줄 모르는 욕망에 사로잡혀 있던 쇼펜하우어가 미워하는 첫 번째 대상은 철학교수들이었다. 그 가운데에서도 신랄한 인신공격의 대상은 바로 헤겔이었다. 그에게 헤겔의 학설은 정신병자의 수다로 여겨졌고, 헤겔 자신은 사기꾼이자 정신이 썩어빠진 추악한 남자였다. 피히테(독일의 관념론 철학자, <독일 국민에게 고함>이라는 연설로 유명)에 대해서도 헤겔 못지않게 나쁘게 평한다. 피히테의 말 역시 궤변이며, ‘요술쟁이의 주문일 따름이었다. 반면에 자기 자신이야말로 철학의 숨은 황제이며, 더 나아가 철학적 종교의 창시자이기까지 하다. 쇼펜하우어는 자신을 따르는 몇 명 추종자들을 사도라거나 복음사가라고까지 불렀다.

대학교수 다음으로 쇼펜하우어가 경멸한 대상은 여성이었다. 그는 어머니와의 소원(疏遠)한 관계로 인하여 여자를 인간적 불행의 근원으로 생각하였다. 그에 의하면, 여자들의 특징이란 미치광이에 가까운 낭비벽과 본능적인 교활함, 그리고 뿌리 뽑기 어려운 거짓말 습관이다. 여자란 어린이와 남자 사이의 중간 단계에 속해있다. 그리하여 성적 충동으로 이성이 흐려진 남자들만이 키가 작고 어깨가 좁으며 엉덩이가 크고 다리가 짧은 이 여자라는 존재를, 아름답다고 말한다. 여자들은 음악에 대해서도, 시에 대해서도, 조형미술에 대해서도 아무런 참된 감정이나 이해력이 없다. 만일 그들이 그런 능력이 있는 것처럼 행동한다면, 그것은 남자들의 마음을 끌려는 의도로 꾸민 흉내일 뿐이다.”라고 말한다.

아무튼 그는 일생을 독신으로 살았다. 그러나 그가 이탈리아 여행 시에 다르시니아라는 여성과 깊이 사귄 적이 있으며, 사창가에서 창녀들과 어울리기도 했다고 전해진다. 어쨌든 쇼펜하우어는 널리 명성을 얻고자 하는 강렬한 바람과 그에 미치지 못하는 세상 사람들의 평가 사이에서 고뇌하였다. 스스로 천재라고 자화자찬하였던 그는 곧이어 세계와 인간에 대한 멸시와 염세주의를 드러내고 만다. 결국 인간에 대한 쇼펜하우어의 경멸은 그의 염세주의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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