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주년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이 역대 최대 규모로 거행됐다. 문재인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치러진 이번 기념식에서는 불의에 항거한 5·18 민주영령의 정신을 계승하고 정의가 승리하는 대한민국의 미래를 열어나갈 의지를 표출하였다.

특히 전 정부가 반대한 님을 위한 행진곡1만여명의 참석자들이 제창하면서 민주정부의 탄생을 실감케 하였다.

이날 기념식은 대한민국의 역사가 정의와 민주주의 승리의 역사라는 공감대를 토대로 국민통합으로 나아가는 장이 되었다.

5·18 민주화운동은 517일 밤 12시를 기해 전국에 선포된 비상계엄령으로 전남대를 비롯한 전국의 대학에 휴교령이 발동되었다.

이에 반발한 전남대생 500여명이 18일 오전 10시 전남대 정문 앞에서 계엄군과 충돌이 발생하였다.

학생들의 시위에 계엄군들의 무차별 폭력이 이어졌고, 이를 지켜본 시민들이 합세하면서 1030분경 전남도청 앞에서 대규모 시위가 열려 투석전이 벌어졌다.

오후 4시경 공수부대 군인들이 금남로에 진입하여 길거리에 나온 학생들과 시민들을 곤봉으로 무차별 구타하면서 금남로가 공포의 거리로 변했다.

이 소식을 전해들은 시민들이 519일 아침에 카톨릭센터를 중심으로 시위를 시작하고 전일방송차 2대를 불 지르고 독대타도와 전두환 퇴진을 외쳤다.

이날 오후부터 공수부대원들은 진압작전에 대검을 사용하면서 450분경 광주고 앞에서 시위대에 몰린 장갑차에서 최초의 총성이 울렸다. 계엄군들의 총기 사용이 시작되면서 수많은 시민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비극이 펼쳐졌다.

5·18에는 영광의 아들 박관현이 있다. 당시 전남대 총학생회장으로 전남대 정문 집회와 전남도청 앞 시위를 주도했다.

박관현은 계엄군의 무차별 진압과 체포를 피해 숨어 지내다, 8245일 체포됐다. 체포된 박관현은 광주교도소에서 수감되어 단식투쟁으로 불의에 항거하다 1012일 새벽 215분에 유명을 달리했다.

박관현은 최후의 진술에서 저는 피끓는 젊음을 가진 대학생으로서 역사적 양심을 가지고 이 나라 모든 백성들이 갈구하는 민주주의 실현과 민족분단의 극복을 위해 작은 몸을 던졌다면서 언젠가 역사는 이 정권을 심판할 것이다고 열변을 토했다.

그는 떠났지만 그의 정신은 오늘을 말하고 있다. 5·18 정신은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지키고 있다. 대한민국의 정의가 무엇인지 가르치고 있다. 이제 영광의 아들 박관현의 부활을 연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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